• 중앙일보 30일자 오피니언면 '중앙시평'란에 칼럼니스트 변상근씨가 쓴 <'3중 재앙' 걱정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미국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윤광웅 국방부 장관에게 보낸 서신이 지난 주말 세찬 회오리를 불러일으켰다. 분명한 사실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의 2009년 이양과 미군 주둔 비용의 공평한 분담 요구 등 두 가지다. 그러나 편지의 형식과 배경을 놓고 이런저런 해석과 해명이 꼬리를 물고 있다.

    '한국에 대한 압박용' '협상지렛대'라는 긴박한 관측들이 나돌자 국방부는 일방적 통고가 아니며 윤 장관의 서신에 대한 답신이라고 진화에 부심했다. 방위비 추가 부담의 논란이 거세지자 청와대 측이 나서 분담 요구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전작권 환수와 직접 연관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정치권에서 '안보 정쟁'으로 비화하자 다시 정부 당국자가 나서 "미국이 정치적으로 의도를 갖고 뭘 겨냥해서 보내온 것이 아니라 동맹 현안에 관한 입장을 주고받은 것"이라고 의미를 깎아내렸다. '럼즈펠드 회오리'가 몇 차례 해명을 거듭하면서 '찻잔 속의 태풍'으로 꼬리를 내린 것이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양국 간 입장 차이가 좁혀지기 어려울 정도로 현격하다는 사실이다. 동맹의 중대사가 격의 없는 대화가 아니고 장관 간에 서신 형식으로 왔다갔다 하는 현실 또한 놀랍다. 해명에 부산한 당국자들의 다급한 모습에서 참여정부의 홍보 수준과 한.미동맹의 불안을 읽기는 어렵지 않다.

    형식이야 어떻든 전작권 2009년 이양은 내용상 통고다. '전작권 이양은 기정사실이나 일정에 맞춰 서둘러서는 안 되고 한국군 능력이 갖춰졌을 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올 2월까지 미국 측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불과 몇 달 새에 이것이 조기 이양 쪽으로 급물살을 탄 것은 분명 큰 사건이다.

    전작권을 언제 어떻게 넘겨받느냐는 고도로 전문적인 문제다. '자주 대 사대'로 편을 가르고 여론에 물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자주 포퓰리즘으로 접근되고 '정치에 악용'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심사가 뒤틀린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금이라도 단독 행사가 가능하다니 2012년까지 기다릴 게 뭐 있겠느냐'식의 되받아치기로도 들린다.

    미군 주둔 비용의 공평한 분담이 새로운 요구가 아니라는 설명도 설득력이 없다. 늘 해 온 요구라 해도 전작권 환수로 연합방위체제가 공동방위체제로 바뀌기 때문에 공평한 분담은 전작권 환수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2012년 환수를 목표로 자주국방 전력을 확보하겠다던 우리 당국의 계획이 근저에서부터 휘청하면서 동맹 잃고, 세금 부담 늘고, 안보까지 불안해지는 3중의 재앙 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전작권이 환수되고 한.미동맹이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로 유연화할수록 중요한 것은 유사시 '안보 신용'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장사정포 등 '비대칭무기'의 위협 앞에 우리는 거의 무방비상태다. 연합사가 해체되면 유사시 미 증원군의 즉각 파병 근거도 없어진다. 이를 문서로 다시 보장받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첨단 전력이 막강한 미군이 한국군의 지휘통제를 받으며 지원역할에 머무는 일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미군이 지원에 몸을 사리면 한.미 연합군사력은 치명적인 불구가 된다.

    그래서 전작권의 조기 환수는 잘해서 '속 빈 강정', 최악의 경우 '안보 쪽박'을 찰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미국과 일본이 '군사일체화'로 치달으면서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도 달라지고 있다. '북한은 남침할 의도도 능력도 없다' '주한미군은 나가라 해도 저들 이익 때문에 못 나간다'는 한가한 가설만 믿다가는 언제고 '안보 IMF' 사태를 불러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북핵 문제가 장기화하고 북한의 돌출행동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기조 변화는 돌다리 두드리기로 접근해야 한다. 전작권은 환수 그 자체보다 환수 이후 한.미 군사력 네트워크를 통한 효율적 관리가 생명이다. 따라서 이양 및 환수와 그 후속 조치는 양국관계가 원만하고 동맹이 돈독할 때 합의함이 바람직하다. '애정 없는 동거' 속의 합의는 후환을 남기게 마련이다. 현재의 노무현-부시 정부 관계로 보아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