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6일 사설 <한나라, ‘자주(自主) 주문(呪文)’에 겁먹고 야당 본분(本分) 버리는가> 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은 25일 긴급의원총회에서 한국 요구대로 전시 작전통제권 단독행사를 받아들이자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졌는데도 등록세 취득세 인하 대책을 논의하는 걸로 회의를 끝냈다. 전시 작통권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나흘 전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전작권 문제에 대해 한·미 대통령에게 공개 질의서를 보내자는 한가한 얘기만 주고받았다. 한나라당은 사실 전작권 단독행사를 논의는 하되 그 시기를 뒤로 늦출 것을 요구할 것인지, 아니면 논의를 중단하거나 차기 정부로 넘길 것을 요구할 것인지에 대한 당론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전시 작통권 정국에서 한나라당은 정권을 견제해야 하는 제1야당, 정권을 되찾겠다는 수권 정당, 국민 안전과 국가 안보를 걱정하는 책임정당으로서의 의욕과 능력과 결의의 어느 하나도 보여주지 못했다. 웰빙정당의 축 처진 모습뿐이다.

    한나라당이 만일 “전작권 문제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면 더 할 말이 없다. 전작권 단독행사는 한미 연합사 해체로 이어지고 한미 연합사 해체는 한미동맹의 뿌리와 거기 기대고 있는 이 나라의 전쟁 억지력을 결정적으로 허무는 것이다. 이 국가적 핵심 문제에 이 정권과 생각이 같다면 야당할 필요가 없다.

    그게 아니라 이 정권은 선동정치에서 잘 먹히는 자주(自主)라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데 잘못하다가는 그 반대편의 칼날을 쥐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라면 야당으로서의 능력 부족, 국가 대안 세력으로서의 무능을 폭로하는 것밖에 안 되는 것이다. 국민은 그런 패배 의식에 젖어 있는 정당에 내일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버림받은 이 정권의 처지를 자신들의 집권 가능성과 동일시하면서 “집권하면 그때 가서 미국과 다시 담판하면 된다”고 생각한 결과라면 국민을 너무 우습게 아는 처사다. 전작권 문제 재협상은 되돌리기도 어렵고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우리가 감당할 불이익은 계산하기조차 어렵다. 국민들은 그런 국가적 손실을 보면서도 몸을 사리는 한나라당에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대한민국의 제1야당, 언필칭 수권 정당이란 한나라당이 백발이 성성한 국군 원로들이 삼복의 땡볕 아래로 행진하는 건국 이래 초유의 사태를 보고서도 뒷짐지고 있는 모습에서 국민이 무엇을 느끼겠는가를 바로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