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7일자 오피니언면 '데스크 시각'란에 이 신문 최영범 정치부장이 쓴 <더 길게 느껴지는 ‘남은 1년 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소장파 참모들, 특히 ‘386 세대’ 참모들의 문제 해결 방식은 참으로 공격적이다. 중재나 조정보다는 싸움에 가까운 격렬한 토론을 통해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며 해법을 찾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항상 감정적 앙금이란 부작용이 남고 노 대통령의 입에서 ‘통합’ ‘화합’이란 말이 나오면 어색하고 생경하게 들린다.

    노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으로 정부 요직을 지냈던 한 인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과거 정권에서는 사회 갈등을 정부가 직접 나서서 조정해 시민 사회가 스스로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생기지 않았다. 이해 당사자들이 스스로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자생력이 생겨야 한다. 그래서 더 싸우도록 둬야 한다.”

    듣는 순간 인식의 ‘대범함’과 문제 의식에 대해 귀를 의심했었지만 그후 정부가 보여준 사회적 갈등 해결방식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갈등의 사전 해결보다는 사후 처리에 초점이 맞춰진, 기회비용이 높은 ‘갈등 학습론’ 이었다.

    이런 공격적인 해법은 노 대통령의 어록에 그대로 녹아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14일 국가 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 자리에서 “국민이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다 극복할 수 있다. 싸움 좀 해도 괜찮다”고 했다.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싸움 좀 해도 괜찮다’는 인식은 386 등 상당수 청와대 소장파 참모들에게서 그대로 투영돼 나타난다.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회의때 (386) 비서(관) 들의 발언 태도나 업무 태도는 상하관계를 무시하고 논리나 입장을 강조하기 일쑤”라며 “회의 때 행정관이 수석이나 비서관의 말에 반박하고, 입장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일도 많았다”고 이들의 ‘공격성’을 지적했다. 이 때문에 부처파견 공무원들은 당혹스러워했다고 한다. 부처로 복귀한 한 국장급 인사도 “처음 청와대에 근무했을 때 몇달 동안 ‘386 문화’에 적응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며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또 청와대 수석을 지낸 한 인사는 “386들이 결론을 먼저 내리고 공격적으로 회의를 하는 통에 적응이 되질 않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공격성은 같은 식구인 청와대 수석뿐만 아니라 정부내 장·차관급 인사, 외국 주재 대사, 정부 기관장 등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발휘’됐다는 게 곤욕을 치렀던 당사자들의 증언이다. 이쯤 되면 생산적 토론이라기보다는 노 대통령 말처럼 ‘싸움’에 가깝다. 전직 고위관료 출신인 한 인사는 “젊은 비서들의 이런 태도는 위(대통령을 지칭함)에서 주문받은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며 “조직 문화를 활성화하고 토론을 살리기 위한 의도라고 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관료는 “철저한 사상투쟁을 벌이는 운동권의 토론 문화가 그대로 청와대에 옮아온 것 같았다”고도 했다.

    갈등 해결은 싸움을 통한 상대방 굴복이 아닌,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설득이어야 한다. 그래야 끝이 좋다. 과거사 청산이나, 국토균형 발전, 대미자주 등과 같은 현 정부 대표적 정책이 아무리 명분과 원칙이 뛰어나더라도 국민과 반대론자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 ‘싸움’은 하지하책 (下之下策) 에 불과하다. 손자병법에도 “싸우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이라고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측근들의 공격적이며 전투적인 국정운영 방식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더 굳어질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최근 “책임있는 대통령이 되게 해달라” “할 일은 해야 한다”며 집권후반기의 결심을 다잡고 있다. 남은 1년 반이 지난 3년 반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