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7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사법시험 17회생들은 노무현 대통령 집권 후 관운(官運)이 뻗쳤다. 노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장에 파격적으로 사시 동기생인 전효숙 헌재 재판관을 내정했다. 헌재에서는 조대현 재판관과 장관급인 서상홍 사무처장이 17회이고, 이번에 재판관으로 지명된 김종대 창원지법원장도 동기이다. 헌법기관을 사법시험 특정 횟수가 이렇게 장악한 사례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듯하다.

    검찰에서도 17회 동기생이 수뇌부인 검찰총장(정상명)과 대검차장(임승관)을 맡고 있다. 동기생이 검찰총장이 되면 일괄 사표를 내던 관행도 17회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배려가 작용했을 것이다. 대법원에도 17회생 대법관이 안대희, 김능환 두 사람이 있다.

    노 대통령은 이달 초 교육인적자원부를 방문해 “교육이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사회가 학벌(學閥) 위주의 연고(緣故) 중심 사회이기 때문이고,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연고가 학벌”이라며 학벌 타파를 강조했다. 이처럼 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학벌 타파를 외치고는, 학벌보다 더 공고한 사시 17회 ‘시벌(試閥)’을 만들었다.

    법조계에서 사시 횟수는 학벌 이상의 연고성을 지니고 있다. 서열을 중시하는 법조계 풍토에서 사시 17회의 요직 진출이 두드러지면서 17회 위 아래 횟수의 인재들이 한(恨)을 품고 현업을 떠나고 있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는 17회의 요직 독점 행태를 5·16군사정변을 주도한 육사 8기나, 12·12쿠데타의 핵심인 육사 11기에 견주는 말까지 나온다. 노 대통령은 법조계의 이런 불만을 알고도 밀어붙이는 걸까.

    대통령이 인재를 널리 구하지 않고, 좁은 인재 풀에서 사람을 쓰는 폐쇄적 연고주의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이번 헌재 인사이다. 노 대통령은 학벌주의를 비판할 자격을 이미 잃었다.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해야 하고 견제와 균형이 생명인 사법부와 검찰에서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사시 동기생들을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민주주의 기본원리인 3권 분립에도 어긋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