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레프트’를 표방한 친노 진보지식인들이 노무현 정권이 진보개혁 세력 전체를 커다란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는 진단을 해 눈길을 끌고 있다.

    노 정부 출범 이후 각종 위원회에 참여한 지식인을 중심으로 대안적 진보를 표방해 온 중도좌파 지식인들의 모임 ‘좋은정책포럼(공동대표 임혁백, 김형기)’ 소속 지식인들은 8일 오후 2시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민주정부의 위기와 진보개혁세력의 진로’를 주제로 토론의 장을 연다.

    위기의 진보개혁세력에 관한 성찰과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인 이날 토론회에 앞서 노 정부의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지낸 김형기, 김호기, 임혁백, 정해구 등 발제자들은 주제 발표문을 통해 노 정부의 무능과 정책실패를 지적하며 “지금이 진보개혁 세력의 자기성찰이 필요할 때”라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5.31 지방선거에서의 열린우리당의 참패와 한나라당의 압승, 민주노동당의 부진은 진보개혁세력에 대위기가 닥쳐왔음을 말해준다”고 운을 뗀 뒤 “민주노동당은 일부 비현실적인 강력 정책과 집회시위 위주의 정치활동으로 침체의 늪에 빠져 있으며 민주노총 전교조를 비롯한 노동운동은 이념적 편향과 전투주의,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고립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또 “깊은 성찰과 획기적 전환이 없다면 진보개혁 세력은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며 “민주 정부를 지속하고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사회적 다수가 되기 위해서는 냉철한 자기 성찰과 획기적인 자기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보세력 3중 위기에 봉착”

    고려대 임혁백 교수는 ‘지속 가능한 진보를 위한 한국정치의 과제’라는 발제문을 내고 진보개혁세력의 앞길을 제시했다. 임 교수는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이 민주화, 세계화, 탈냉전에 대한 보수의 대응 실패로 반사적 이익을 얻어 정치적 다수를 형성하게 됐다”며 “그러나 1997년 정권교체와 연속된 집권에도 불구하고 ‘좋은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정체성, 통치능력, 한반도 평화관리 등에서 3중의 위기에 봉착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진보개혁세력이 양극화 해소와 세계화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딜레마에 처했으며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념적 정체성의 혼란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당 정 분리로 집권여당이 무기력해지고 당과 유리된 위임적 대통령이 됐으며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데도 실패하는 등 수권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국민들이 보수를 선택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지적했다. 남북문제에서도 진보개혁세력은 민족공조와 국제공조의 균형을 잡는 데 실패함으로써 탈냉전 이후 보수에 대해 확고한 우위를 보이던 분야에서마저 비교우위를 상실했다고 진단했다.

    김호기 “개혁세력, 신자유주의 해답 제시못해 국민신뢰 상실”

    시대적 패러다임을 미처 깨닫지 못해 진보세력에 위기가 봉착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이념구도의 변화와 개혁세력의 과제’라는 주제를 통해 “현재의 시대정신은 ‘지속 가능한 세계화’”라고 전제한 뒤 “민주화를 주도해온 개혁세력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해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으며 이에 국민들은 개혁세력의 역량에 의구심을 품게 됐다”며 “결국 개혁세력에 대한 실망은 여당의 참패와 한나라당의 싹쓸이로 끝난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적나라하게 반영됐다”고 지적했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참여정부는 국민의 실생활과 긴밀히 연결된 경제정책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고 사회갈등 조정도 실패했으며 이제 지지자들과 여당과도 일정 부분 분리됨으로써 ‘공중에 뜬 정부’가 돼버렸다”며 “민주세력은 이제 ‘운동’을 넘어서 대안을 제시하고 책임질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보수세력이 보낸 트로이의 목마”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는 ‘저항과 투쟁을 넘어선 성찰과 전환’을 주제로 시민사회운동의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했다. 박 대표는 “노 대통령은 민주세력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으며 보수세력이 보낸 트로이의 목마라고 비하될 정도로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배반하는 정책을 일관했다”며 “우애와 협력의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지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열린당 김부겸 의원, 민노당 노회찬 의원, 최원식 세교연구소장, 서울대 송호근 교수,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이 토론자로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