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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란에 이 신문 박광주 논설위원이 쓴 <'코리안 룰렛'>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인류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는 여러가지로 대답할 수 있지만 ‘승리를 위한 투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심리학적 분석이다. 승부가 있기 때문에 행위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물론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끼게 된다.
오락적 요소가 있으면서도 쟁취 목표가 있다는 점은 도박도 마찬가지다. 사행심과 연관된 불건전 행위로서의 갬블링(gambling)이든, 비즈니스 개념의 게이밍(gaming)이든 이기기 위한 투쟁이 개입돼 흥미를 유발한다는 측면에서 스포츠와 일맥상통한다. 행위 방식과 쟁취 대상물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도박의 쟁취 목표는 통상 재물이다. 그런데 도박 행위에 내걸리는 것이 인간의 목숨이라면…? 관전자라면 재물을 위한 다툼과는 견줄 수 없는 ‘성악(性惡)의 스릴’을 즐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도박행위의 당사자인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자의든 타의든 목숨을 건 도박을 즐긴다면 그것은 정신이상이다.
목숨을 건 대표적인 도박은 러시안 룰렛이다. 이 게임은 1979년 개봉된 미국 영화 ‘디어 헌터(The Deer Hunter)’의 한 장면으로 등장한 이후 널리 알려졌다. 회전식 연발 권총에 실탄을 한발 넣고 탄창을 돌린 뒤 2명 이상이 차례로 총구를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 승부를 겨루는 방식이다. 상상만 해도 섬뜩하다.
최근 한 군사평론가가 미군의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와 관련, 노무현 정부가 전시작통권의 조기 환수에 나서는 것은 국민의 목숨을 내건 러시안 룰렛이라고 비난의 목청을 높였다.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채 무력에 의한 한반도 통일노선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 북한이고, 이에 대한 억지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한미연합군 체제인데 대책없는 전시작통권 환수는 연합군 체제의 붕괴를 초래, 4800만 한국민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시키게 된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현 정부는 자주국방이라는 명분을 따내기 위해 국민의 목숨을 볼모로 한 무책임한 ‘코리안 룰렛’을 벌이며 스릴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좀 과도한 비유에 과대한 해석이다 싶으면서도 객쩍다고만 치부하기도 주저된다. 여당 의원들조차 얼마전 현 정부의 안보정책 전반이 “아슬아슬하다”고 하지 않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