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 없이 장관 지명 … 野 "분열 노린 정치"與 김병기 논란 겹치며 이슈 덮기 포석 지적도환율·경제 위기에서 임명한 '보수 진영 인사'
  • ▲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29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29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통합 인사'가 야당의 혼란과 분란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국민의힘 현직 당협위원장을 장관 후보로 지명한 직후 국민의힘은 전격적으로 제명 절차에 들어가면서 정치권의 관심은 인사 논란으로 번졌다. 통합 인사라는 이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사전 협의 없이 단행된 야권 인사 지명은 분열의 씨앗을 뿌렸다. 아울러 정치권에서는 이번 보수 인사 지명이 정부·여당발 악재를 희석하기 위한 정치적 포석이라는 분석마저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힘 원외당협협의회는 29일 성명서를 통해 "국민의힘 현직 당협위원장을 국무위원으로 영입하는 이재명 정부의 행태는 보수 진영의 분열을 노린 저급한 정치로 인재 영입이나 탕평, 통합의 정치로 미화될 수 없다"며 "이재명 정권은 상대 진영의 내부를 흔드는 꼼수정치를 즉각 중단하고 국민 앞에서 당당히 경쟁하는 책임정치에 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전날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이혜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을 발탁했다. 이규연 대통령홍보소통수석비서관은 28일 이 대통령이 이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에 대해 "통합의 힘도, 실용의 힘도 더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한나라당·새누리당·미래통합당에서 3선을 지냈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서울 중·성동을 국민의힘 후보로도 출마했고, 최근까지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을 당협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국민의힘은 같은 날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여권 장관 후보 지명을 수용한 점과 당과의 사전 협의가 없었던 점을 문제 삼아 이 후보자에 대한 제명 조치를 결정했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 후보자는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이재명 정부의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함으로써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을 남기고 국민과 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 행위를 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인사가 사전에 어떤 공유나 소통도 없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는 물론, 해당 지역 당협도 지명 발표 이후에야 관련 내용을 알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과 이 후보자의 협잡은 정당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태로 결코 묵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통합 인사'라는 설명과 달리 인사 과정에서 야당과의 소통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야당 인사를 기용하려면 최소한의 사전 설명과 조율이 있었어야 했다는 것이 국민의힘의 지적이다. 
  • ▲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29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29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성진 기자
    현직 당협위원장이던 이 후보자의 '정치적 위치'도 논란을 키웠다. 야당 조직을 관리하는 인사를 행정부 핵심 요직에 지명한 선택은 정치적 파장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데도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됐다. 야당과의 사전 조율 없이 통합을 선언한 방식 자체가 정치적 해석을 낳는 이유다.

    지명 직후 제명으로 이어진 결과는 인사 판단의 정무성을 다시 부각시켰다. 통합을 명분으로 한 인사 카드가 야당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온 만큼, 인사 설계 단계에서 정치적 파장을 충분히 고려했는지가 쟁점 사항이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29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서 "진영을 분열시키고 저열한 인간을 데려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썼다가 버리는 정권의 무도함에 치를 떨 뿐"이라며 "영혼을 팔고 자리를 구걸하는 저열한 인간을 데려다가 자리를 줘 놓고 그것을 탕평이라고 볼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인사를 단순한 인사 논란으로 보지 않고 있다. 야당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가 여권에 불리한 국면에서 정치적 의제를 전환하려는 선택이라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명 시점이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던 국면과 겹친다는 점이 이러한 해석의 근거로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이 후보자 지명 후 정치권의 관심은 김 원내대표 이슈에서 '인사 논란'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정책 과제나 입법 현안보다 지명 경위와 인사 절차가 먼저 부각됐고, 인사 검증의 초점도 후보자의 정책 전문성보다 정치적 맥락과 인사 방식에 맞춰졌다.

    야당에서는 이를 두고 김병기 논란으로 쏠리던 국민의 시선을 '인사 공방'으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이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최근 김병기 원내대표 논란 등 여권의 악재를 피해가기 위한 꼼수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며 "이번 인사가 누구 아이디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현명한 꼼수는 아니었음도 결국 드러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 ▲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무제한토론 종결 동의 투표 중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종현 기자
    ▲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무제한토론 종결 동의 투표 중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종현 기자
    야권은 이번 인사가 최근 '환율 불안'과 '경기 둔화' 논란이 이어지는 경제 국면과도 맞물려 있다고 보고 있다. 야당 인사를 기용하는 방식으로 향후 경제 성과 부진의 책임을 정치권 전반으로 분산시키려는 포석 아니냐는 것이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결국 이 대통령이 내놓은 한국 경제 해법은 구조 개혁도, 재정준칙도 아닌 실패의 책임을 희석하고 비판을 무력화하려는 물타기 인사"라며 "이번 선택은 협치도, 통합도 아니다. 현금 살포로 경제가 파탄 나더라도 '야당 출신 장관도 함께했다'는 면죄부를 만들려는 정치적 계산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김근식 국민의힘 송파병당협위원장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단순히 당을 정치적으로 와해시키는 공작 플러스(Plus) 이재명 정부의 경제 정책의 실패를 염두에 두고 총알받이로 쓰는 것"이라며 "민주당 인사들은 탕평으로 포장을 하지만 본질은 다 아실 것이다. 정치적 공작이자 이혜훈을 희생양으로 하는 총알받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해석은 인사의 방식과 시점을 함께 놓고 제기됐다. 통합을 강조한 발표와 달리 야당과의 사전 소통은 없었고, 지명 직후 야당의 제명으로 갈등이 증폭됐다. 결과적으로 경제 이슈는 뒤로 밀리고 정치권 갈등이 전면에 부각됐다. 야당에서는 이를 두고 인사가 경제 실패 논쟁을 정치 공방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정권 초반 장관급 인사는 국정 운영 방향과 정치적 메시지를 동시에 담는다. 특히 통합과 협치를 강조해 온 정부라면 인사 과정에서의 절차와 소통 방식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례가 인사의 명분과 방식이 어긋나면 어떠한 정치적 파장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라고 지적한다.

    국민의힘은 향후 열릴 인사청문회 대응 기조를 정리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청문회에서 지명 경위와 사전 소통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후보자 개인의 자질을 넘어, 인사 결정 과정과 그 정치적 맥락을 집중적으로 따지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이 후보자는 전날 입장문을 통해 "정치적 색깔로 누구든 불이익 주지 않고 적임자는 어느 쪽에서 왔든지 상관없이 기용한다는 이 대통령의 방침에 깊이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제와 민생 문제 해결은 본래 정파나 이념을 떠나 누구든지 협력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저의 오랜 소신"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