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납북 고교생 김영남씨의 일본인 부인 요코다 메구미씨가 김씨의 증언과 달리 현재까지 생존해 김정일 아들의 가정교사로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니시오카 쓰토무 ‘일본인 납북자 구출회’ 상임부회장은 17일 자유북한방송에 출연해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가 김정일 아들 중 한 명의 가정교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런 사실은 지난 2004년쯤 복수의 소식통을 통해 들었다”고 밝혔다.

    니시오카씨는 “김정일의 사생활을 담당하고 있는 부부장급 사람이 한국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우리는 듣고 있다”며 “메구미는 94년 이후 가족들과 떨어져 고영희 소생인 김정운의 일본어 가정교사로 갔을 가능성이 높다. 김씨와 메구미는 북한에서도 생이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일의 사생활은 극비 중의 극비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메구미가 죽었다고 발표하고 남편까지 동원해 거짓말하게 한 것”이라며 “지난 2002년 김씨가 메구미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는 메구미가 93년에 죽었다고 했으나 북한당국과 최근 기자회견을 한 김씨는 94년에 자살했다고 말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또 “이러한 사실은 북한당국이 일본에 보낸 일본인 납치피해자 5명이 94년까지 메구미를 봤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씨가 ‘메구미가 어렸을 때 사고가 나서 뇌에 상처를 입어 정신병이 됐다’고 주장한 데 대해 그는 “의학적으로 뇌에 상처가 난 것과 정신병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면서 “김씨는 나중에 누나 김영자씨에게 교통사고라고 설명했다는데 메구미는 일본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없다. 그건 부모가 다 안다”고 말했다.

     ●다음은 니시오카 부회장과의 대담전문
    사회: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일본인 납북자 구출 회의 니시오카 쓰토무 상임 부회장님을 모시고 한국과 일본의 납치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지난 6월 납북자 문제와 주목할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 국의 고교생 납북자인 김영남씨가 금강산에서 가족들을 만난 일 인데요 김영남 씨 가족 상봉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니시오카: 우리도 그 장면을 (일본에서) 보고 있었었지요. 일단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만 그러나 너무 참혹 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그럴 수가 있느냐, 북한 당국한테 화를 많이 냈어요. 왜냐하면 첫 번째가 기자회견입니다. 김영남 씨가 가족들을 상봉한 다음날 기자회견을 했지 않았습니까? 그때 자기가 어떻게 해서 북한에 가게 되었는가, 그 이야기를 했어요. 납북이 아니고 또 자진월북도 아니고 ‘우연한 사고 때문에 조그만 배 안에서 자고 있었다가 일어나보니까 바다 가운 데 있어서 구조를 받았다’ 그렇게 이야기 했지요. (영남씨가) 그렇게밖에 이야기 하지 못할 줄은 우리가 알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화를 낸 이유는 그 이후 (김영남 씨가) ‘북한에 가 서 처음에는 많이 긴장을 했지만 나중에는 사람들이 정답고 그리 고 교육도 무료로 시켜준다고 하고, 고향에 가더라도 자기 집이 가난해서 학교에 가지 못 갈 것 같으니 여기서 교육을 받자는 생각에 남게 되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 어머니가 옆에 있는데 ‘집이 가난해서 고향에 가지 않고 북한에 남겠다’는 결정을 16살에 했다. 이런 이야기를 어머니 앞에서 하게 하는 북한에 대해서 화가 났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없어진 이후 얼마나 슬퍼하며 찾아 다녔겠습니까? 그리고 아버님은 그 아들을 찾다 못해 병환으로 돌아가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가족들 앞에서 ‘우리 집이 가난해서 고향에 안갔다. 가족 보다 북한당국의 무료로 교육해주는 것을 택했다’ 이런 이야기를 가족 앞에서 하게 하는 것. 김영남 씨가 내심 그 원고를 읽었을 때(니시오까 부회장은 김영남이 북한 당국이 마련한 원고를 읽었다고 주장했다)의 심정을 생각하니까 ‘북한 당국을 용서할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김영남씨의 이야기가 100% 거짓말이라는 것이 증명됩니다.

    사회: 사실 저희도 지난달 29일 김영남씨의 기자회견에 앞서서 미리 예상기사를 냈습니다. ‘망망대해에서 북한이 구해줘서 지 금 당의 품 안에서 잘 살고 있다. 북한이 납북자 문제를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는데요 역시나 예상이 빗나 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지적대로 북한 당국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생이별의 고통을 겪었던 김영남 씨에게 가족들 앞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만을 대변시키려 하는 것을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도 화가 많이 났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김영남씨의 가족상봉과 기자회견 장면을 김영남 씨의 아내인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의 부모님들도 지 켜봤습니다. 김영남은 메구미씨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를 테면 메구미를 사망에 이르게 한 우울증이 어렸을 때 머리를 다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왔고 그리고 메구미의 딸이 은경이라는 이름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장면을 지켜본 메구미씨의 부모님들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니시오카: 먼저 북한에 계시는 분들한테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요코다 메구미라는 사람은 13살때 (일본에서) 1977년도에 납치 되었지요. 그리고 그 남편 김영남씨는 78년도에 16살 때 (한 국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납치된) 두 사람은 북한에서 결혼해서 딸을 낳았습니다. 그 딸과 김영남 씨가 2002년도에 김정일이가 일본 정부한테 (일본인) 납치를 인정했을 때 나와서 요코다 메구미는 93년도에 죽었다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이게 라디오 방송이라서 좀 안타깝습니다만 여기에 2002년도에 김영남씨가 요코다 메구미 부모한테 보낸 편지를 가져 왔습니다. 이 편지를 보면…

    사회: 제가 좀 읽어 드리겠습니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해 나가 던 1993년 뜻하지 않게 메구미를 병으로 잃게 되는 불행이 닥쳐 올 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니시오카: 여기 분명히 93년에 메구미가 죽었다고 돼 있지요? 그런데 지금 북한 당국은 94년에 메구미가 자살을 했다고 발표하고 있고, 이번 기자회견 때도 김영남씨가 94년에 메구미가 자살을 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사망일이 달라진 이유는 북한당국이 일본에 보낸 5명의 일본인 납치 피해자가 메구미를 94년에 봤다고 증언을 했기 때문 입니다. 이 편지(김영남 씨가 메구미 부모에게 사망 소식을 알린 편지)가 2002년 편지인데 2003년도에 그런 증언이 나오는 바람 에 2004년도에 북한 당국이 메구미의 사망 일자를 수정했어요. 메구미가 죽은 것이 처음에 통보한 93년이 아니라 94년이다. 그런 데 이미 일본한테 북한당국이 사망진단서 의사가 서명을 한 사망 진단서를 줬어요. 거기를 보더라도 93년이라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수정을 했습니다. (메구미랑) 옆에 살던 일본인 피해자들까지도 94년까지 (메구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럼 남편이라는 사람이 메구미가 94년까지 살아 있다는 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2002년에) 93년에 메구미가 죽었다고 편지를 쓴 것 자 체가 ‘살아 있다. 죽었다는 것이 거짓말이다. 남편도 지금 메구미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메구미는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메구미는 94년 이후 가족 곁에서 떠나가지고 김정일 가족한테 갔어요. 김정일의 세 번째 아들 김 정훈의 일본어 가정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처럼 북한에 서도 생이별 당하게 된 것이죠.

    사회: 그 같은 정보는 어디에서 들으셨습니까? 

    니시오카: 복수의 정보원이 있습니다. 한국 당국이 그런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북한에 김정일 서기실이라고 있거든요. 거기서 김정일의 사생활을 담당하고 있는 부부장급의 사람이 한국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미국 정보 관계자도 별도로 요코다 메구미가 김정일의 아들 중 한 명의 가정교사를 하고 있다. 지금도 아마 거기에(김정일 아들 가정교사) 있을 겁니다. 김정일의 사생활은 극비중의 극비이기 때문에 그래서 메구미를 죽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남편이라는 사람까지 동원해서 거짓말하게끔 했던 거지요.

    사회: 이번에 TV로 할머니를 만나 눈물을 흘리는 손녀딸 혜경양 의 모습과 김영남 씨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메구미씨 부모님의 마음이 말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도 메구미 씨 부모와 함께 계셨을 것 같은데 그분들 당시 상황을 설명 좀 해주십시오. 

    니시오카: 그런데 (메구미의) 부모님들도 북한하고 계속 싸워왔기 때문에 북한의 수법이라는 걸 알고 계세요. 그래서 이번에도 아마 거짓말 할 것이다. 아마가 아니라 100% 거짓말할 것이다. 죽었다고 발표하기 위해서 기자회견 시키는 것이라는 걸 아셨어요. 그런데 문제는 너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함부로 했어요. ‘(메구미가) 어렸을 때 사고가 나서 뇌에 상처가 있어서 그래서 정신병이 됐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김영남씨가 메구미씨한테 들었다고 했지요. 그런데 의학적으로 뇌에 상처가 있는 것하고 정신병하고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부모들은 다 알잖아요? 어렸을 때 사고가 있는지 없는지. 사고가 없었습니다. (메구미) 뇌에 상처가 없습니다. 김영남씨는 나중에 자기 누나 김영자씨한테 그 사고라는 것이 ‘교통사고다’라고 설명했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나 요코다 메구미는 일본에 있을 때 한 번도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없습니다. 그건 부모가 다 알죠.

    사회: 김영남 씨를 만나고 돌아온 누나 김영자씨가 일본 교도통신하고 전화인터뷰를 하면서 영남씨가 화장하는 과정에 다른 사람의 유골이 메구미 유골에 섞였을 수 있다 이런 말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지요. 

    니시오카: 먼저 북한에 계시는 분들한테 유골문제에 대해 보충설명을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2004년도에 김영남 씨가 평양을 방 문한 일본정부 대표단 앞에 나와서 ‘이것이 자기 아내의 유골이 다. 화장했다’며 제출했습니다. 그걸 (메구미) 부모님한테 전해 달라고 해서 일본정부가 가져왔는데 ‘부모님은 믿을 수가 없다. DNA 감정을 해달라’고 해서 일본에서 두 개 기관에서 DNA감정을 했어요. 그러나 고온으로 화장을 하면 DNA를 추출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연구소에서는 실패를 했어요. 또 하나 일본 에서 최첨단 기술로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토콘드리아 감정법을 이용해 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다 됐습니다. 메구미씨의 유 골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겠습니다. 니시오카 선생님 감사합니다.

    니시오카: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