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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김정일의 채팅

입력 2006-07-18 09:29 수정 2006-07-18 09:29

조선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란에 이 신문 주용중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로 채팅하는 모습을 상상한 장면이 작년 어느 대학 축제 연극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두 사람은 극중에서 ‘민족끼리’ 코드에 맞춰 알콩달콩 정담을 나눴다. 지금 두 사람이 실제로 채팅을 한다면 어떤 얘기를 주고받을까.

노: 이거 해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미사일 발사도 그렇고 북측 대표가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선군(先軍)정치가 남한의 안전을 도모해 줬다”고 말한 것도 그렇고, 이렇게 나를 연거푸 궁지에 빠트려도 되는 겁니까.

김: 진정하세요. 미사일이야 대통령께서도 잘 알다시피 어디 남쪽을 겨냥한 겁니까. 한반도를 노리는 미제(美帝)와 일제(日帝)의 야욕을 막기 위한 것 아닙니까. 선군정치 얘기는 민족의 생존을 위해 북측이 그만큼 노력한다는 걸 남한 동포들도 알아야겠기에 꺼낸 겁니다. 

노: 엊그제 중국과 러시아까지 동참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았습니까. 미사일을 쏘고 핵무기를 만드는 것이 김 위원장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미국도 북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테니 6자회담장에 나와서 문제를 풀어 갑시다.

김: 그런 얘기 마세요. 미국이 마카오은행에 있는 내 돈 2500만 달러를 반년이 넘도록 꽁꽁 묶고 있는데도 남측은 풀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과 우리를 중재한다고 하더니, 솔직히 말해서 실망이 큽니다.

노: 그만한 돈 갖고 뭘 그럽니까. 올해 남북협력기금을 작년의 2배인 2조5000억원으로 늘렸습니다. 2500만 달러의 100배입니다. 그뿐입니까. 내가 “(북한에) 제도적, 물질적 지원은 조건 없이 하려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까.

김: 우리는 대신 개성이고 금강산이고 다 열어 놓지 않았습니까. 우리 군은 지금 남측에 너무 내주는 것 아니냐고 오히려 불만이 많아요. 김대중 정부 때처럼 현찰을 좀 챙겨 줘야지 이런저런 꼬리표가 잔뜩 붙은 지원만으론 곤란합니다.

노: 그러게 만나서 터놓고 얘기해 봅시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운을 뗐듯이 미래의 한반도를 어떤 형태로 가져갈 것인지를 결정할 중대한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핵도 미사일도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헤쳐 나가고, 민족의 중장기전략도 세워야 할 거 아닙니까.

김: 좋은 말씀입니다. 민족을 걱정하는 남과 북의 양심적 인사들이 힘을 합쳐 반(反)보수의 대오를 확실히 다질 때입니다. 자칫하다가는 미국의 들러리 세력들에게 기회를 뺏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문제는 여러 ‘여건’이 성숙돼야 가능할 겁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주 장관급회담이 결렬된 후 측근들에게 북한은 자신이 하는 일이 약(藥)인지 독(毒)인지도 모르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노 대통령의 그런 심기가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작년 핵 보유 선언을 했을 때도 화가 났다고 한다. 당시 국가안보회의(NSC) 이종석 사무차장의 사표를 받고 북한을 공개 비난하려 했으나 측근들이 말렸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큼은 인내심을 발휘해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는 이유는 뭘까. 언제 어디서든 아무런 조건 없이 김 위원장을 만나고 싶은 꿈을 아직 버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노 대통령은 그것이 한 자릿수로 떨어진 국민 지지도를 반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빅카드로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이런 사정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미 레임덕이 시작된 참여정부의 단물은 밑바닥이 보이도록 빨아먹었다고 보고, 다음 단계의 대남(對南) 전략을 예비하고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에게 계속 비참하게 매달릴 것인가, 이제라도 할 말은 딱 부러지게 할 것인가. 노 대통령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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