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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단처럼 박치기도 못하는 이종석

입력 2006-07-15 12:24 수정 2006-07-15 12:26

중앙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 '정진홍의 소프트파워'란에 이 신문 정진홍 논설위원이 쓴 <'지단의 박치기'가 부럽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월드컵은 끝났지만 '지단의 박치기'가 여전히 화제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그것도 자신의 마지막 은퇴경기에서 백전노장의 지단이 상대 선수 마테라치를 이마로 들이받고 퇴장당한 사건을 놓고 지구촌이 시끌벅적하다. 심지어 몇몇 언론은 독순술까지 동원해 지단과 마테라치의 입 모양을 분석했다. 도대체 무슨 대화가 오갔기에 지단이 박치기를 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다.

마침내 지단이 직접 나서 마테라치가 자신의 누이와 어머니를 모욕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물론 마테라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래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지단의 박치기는 지단을 '월드컵을 망쳐버린 망나니'가 아니라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대가도 치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란 이미지로 전 세계인들에게 깊이 각인시켰다.

그런데 요즘 우리네 정황은 정말이지 지단처럼 박치기하고픈 심정이 불끈 들게 만든다. 무엇보다 "북의 선군(先軍)이 남측의 안전을 도모해 주고 남측의 광범위한 대중이 그 덕을 보고 있다"고 말한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대표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의 입을 박치기로 들이받고 싶은 심정을 숨길 수 없다.

미사일 쏴놓고 그 덕에 우리가 보호받고 산다는 식으로 말하는 그 오만함과 뻔뻔스러움에 언제까지 개탄만 할 것인가. 이건 정말이지 우리 대한민국에 대한 근원적 부정이요, 모욕이다. 오히려 그들이 누구 덕에 굶어 죽지 않고 사는지를 분명히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언제까지 이런 말을 들어줘야 하는가. 마테라치의 입에서 나온 말 같지 않은 말에 지단이 더 이상 대꾸하기보다 박치기로 응수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 방자한 입에 박치기 한번 했어야 했다.

권 참사가 북한에서 어느 정도의 실세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우리의 통일부 장관과 격을 맞출 만한 위치에 있는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그는 북의 실세이기보다 오히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충실히 전하러 온 인간 녹음기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게 내 솔직한 느낌이다. 그러니 그 녹음 테이프가 다 돌아간 다음 그는 미련 없이 테이블을 박차고 북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임무를 완수했으니 말이다.

"미사일 발사 문제에 대해서는 군부가 한 일이라 난 모른다"는 권 참사의 오리발 내미는 식의 반복되는 앵무새 발언은 마테라치가 "난 경기장에서 통상 쓰는 정도의 욕밖에는 한 적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한 것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더구나 그 대단한(?)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선군 덕분에 남측 대중이 덕 보고 있으니 쌀 50만t을 내놓으라는, 정말이지 염치없는 제안을 어쩌면 그렇게 뻔뻔스럽게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 방정맞은 권 참사는 마지막에 "남측이 모처럼 열린 장관급 회담을 무산시키고 북남 관계에 예측할 수 없는 파국적 후과(결과)가 발생한 데 대해 민족 앞에 응당한 대가를 치를 것이며 이번 회담을 무산시킨 남측의 처사를 엄정하게 계산할 것"이라는 적반하장도 유만부동인 발언을 남기고 돌아갔다.

내가 만약 통일부 장관이라면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어설픈 비유로 선문답하기보다 안경 벗고 권 참사의 입, 곧 김정일의 녹음기에 박치기 한번 날렸을 것이다. 지단은 조국의 월드컵 우승과 골든볼마저 포기할 각오로 자신과 가족의 소중한 명예를 지키기 위해 박치기를 날렸다. 하지만 세계는 결코 그의 박치기를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 절대로 용납해선 안 되는 것에 대해 모든 것을 걸고 단호하게 응징하는 그의 모습에 내심 박수를 보내지 않았던가. 지단의 박치기! 그래서 그것이 부럽다.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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