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30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978년 8월 전북 군산 선유도해수욕장에서 사라졌다가 27년 11개월 만에 북한에서 나타나 어머니를 상봉한 김영남씨가 기자회견을 갖고 자기는 북 공작원에게 납치된 것이 아니라 사고로 떠내려가다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폭력배 같은 선배들이 여자친구들에게 빌려준 녹음기를 찾아오라며 때리기에 잠시 몸을 피하려고 나무 쪽배를 탔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망망대해였다는 것이다. 그러다 때맞춰 북한 선박에 구조됐는데 북한에 가서 한동안 있다 보니 그곳이 좋아져서 눌러 살게 됐고, 지금 당의 품에 안겨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전처 요코다 메구미씨는 북한 당국이 발표한 것처럼 1994년에 병원에서 자살한 것이 맞고, 일본측에 넘겨준 유골도 요코다 메구미씨의 것이 맞다며 일본에서 제기하고 있는 의심들을 일축했다.

    김씨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나쁜 사람들은 김씨의 등 뒤에서 이처럼 유치한 시나리오를 풀어놓도록 명령한 사람들이다. 동력선도 아닌 나무 쪽배가 군산 앞바다에서 공해를 지나 남북 경계선까지 수십, 수백㎞를 저절로 흘러갔다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만약 그렇지 않고 그가 말하는 ‘눈을 떠 보니 망망대해였다’는 그 바다가 군산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이라면 그것은 북한 선박이 뭔가 목적을 갖고 남방한계선을 넘어왔다는 것을 실토하는 셈이 된다. 또 그토록 행복하게 살아왔다는 사람이 자기가 없어져 어머니가 정신이 나가 있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30년이 다 되도록 소식 한번 전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말하는 그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민망하기 짝이 없는 어설픈 연극 같은 회견이다.

    정부도 이 연극을 관람했을 테니 이제 어떻게 할 텐가. 또 ‘아, 사정이 그랬었구먼’ 하면서 천연스럽게 등을 돌려 버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