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 '여의도 포럼'란에 전 통일부 차관인 송영대 숙명여대 겸임교수가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최근 남북관계를 보면 외형상 북한이 말하는 민족공조의 수레바퀴가 잘 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1일 “정세가 긴장될수록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가자”고 주장했다. 북한은 지난주 광주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발표 6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에 130명의 대표단을 보내 통일분위기를 한층 돋우기도 하였다. 북한은 이번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시 납북자인 김영남씨의 모자상봉을 허용할 방침이다. 북한은 자주통일, 반전평화, 민족대단합을 소리높이 외치고 있다.

    이처럼 ‘통일’ ‘민족’ ‘인도’의 구호로 남쪽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것은 북한의 상용전술이요, 민족공조 노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민족공조의 실체다.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은 지난 10일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남북협력사업이 파탄나고 온 나라가 전쟁의 화염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의 ‘전쟁 화염’ 발언은 1994년 판문점 남북 특사교환 실무접촉에서 북한의 박영수 대표가 했던 ‘서울 불바다’ 발언을 연상케 한다.

    그러한 그가 15일 광주에서 열린 6·15 기념행사 때는 북한 민간대표단을 이끌고 참가하였다. 이번 광주행사에서는 행사장 안팎을 반미와 미군철수 구호로 도배하다시피 해놓고서 ‘우리 민족끼리’를 외쳤다. 북측 대표단은 광주를 떠나면서 한나라당에 대한 경고는 정당하다며 다시 전쟁을 거론하는 성명을 배포했다.

    왜 이럴까. 올해 신년사설에서 ‘남조선에서 반(反)보수 대연합전선 형성’을 주창한 북한은 김정일 정권과 남한의 친북 좌파세력들이 통일전선을 형성함으로써 보수세력을 척결하겠다는 대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그 첫 목표가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막는 것이며 동시에 주한미군 철수를 관철시키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 대한민국에 대한 중대한 내정간섭 행위며 한·미공조를 파괴하려는 술책이다. 이렇게 볼 때 그들이 말하는 ‘민족’은 남한의 친북 좌파세력이지 그밖의 건전한 자유 민주세력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

    북한은 그동안 남북장성급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재설정하자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1992년 남북간에 체결된 기본합의서에 의하면 ‘해상불가침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50여년 동안 남북이 관할하여온 구역이 바로 현 NLL을 기준으로 한 구역이 아닌가. 그런데 북한이 지금와서 남측에 NLL을 철회하라니 이 무슨 해괴한 주장인가. 그 이면에는 현 정전체제를 파괴하려는 속셈이 깔려 있음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위협으로 한반도 정세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 같은 정전체제 파괴와 긴장상태 조성행위가 민족공조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 북한은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북한의 민족공조에 끌려 다니면서 줄 것은 다 주고 따끔한 말 한 마디 못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다. 정부는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여 약 800억원어치의 신발, 비누, 옷을 만들 수 있는 경공업 원자재를 주기로 약속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제도적 물질적 지원은 조건없이 하겠다”고 말한 이후 정부 당국자들은 남북정상회담에 연연하면서 북한 비위맞추기에 몸달아 하고 있다. 6·15 행사에서 남북한 민관이 함께 낸 호소문은 “주변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동족끼리 믿고 의지하며 동족의 힘으로 통일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이렇게 ‘민족공조’ ‘통일’이라는 허상만 보고 쫓아갈 때 그 끝이 어디에 닿을지는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