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란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오세훈이 몰리고 있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를 서울시장 인수위원회 공동대표로 기용해 보수·우익 진영의 말초신경을 송곳처럼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탄핵’을 말할 정도다. 1993년 보수·우익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이 한완상을 통일부총리로 기용했을 때를 연상시킨다. 

    오세훈의 최열 기용에는 다음과 같은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첫째, 승자의 오만이다. ‘내가 이겨서 내가 사람 쓰는 건데?’하는 노무현 정권의 인사정책처럼 ‘최열이면 어때?’라는 오만이 아니라면 그런 인사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승리하는 순간 곧바로 위기가 찾아오는 법인데, 그것은 승자 본인의 거침없는 자만 때문이라는 진단은 명언이다. ‘서울공화국’ 수장이라면 인재를 보는 눈도 키워야 한다. 인수위 면면이 가벼워 보인다.

    둘째, 노무현 정권에 의해 보수·우익 세력이 입은 이념적 상처의 깊이를 과소평가했다. 보수·우익 세력은 오세훈에게 매료돼 표를 찍어 준 것이 아니었다. 사실 오세훈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이들은 노 정권의 좌파·친북·반미 노선에 반기를 들 계기를 노리고 있었다. 그것이 이번 5·31 지방선거였다. 이들에겐 선거가 아니라 ‘운동’이었다.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묻지마 줄 투표’였다. 그런데 승리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자신들의 세계에서 ‘좌파·친북·반미’의 상징으로 여겨왔던 최열이 임명됐다.

    셋째, ‘큰 정치’를 흉내내고 싶은 헛바람이 들었다. 한나라당 내 386 발상법이다. 좌파를 껴안아야 외연을 확대할 수 있다는 착각이다. 골수 보수·우익세력은 한나라당의 이념 투쟁이 마음에 들어서 찍은 것이 아니다. 성에 차지 않는데도 대안이 없어 한나라당을 찍었다. 그러면 오세훈의 정체는? 그를 ‘위장 좌파’로 의심하는 사람도 많다. 박원순이 운영하는 ‘희망제작소’의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가하겠다는 말이 흘러나오자 보수·우익은 더 격분하고 있다.

    넷째,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세력인 ‘집토끼’를 졸(卒)로 보는 잠재 의식이다. 한나라당이 무슨 잘못을 해도 집토끼들은 대안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보수·우익은 ‘비수를 맞았다’고 분해하는 것이다. 애정이 증오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다. 오세훈은 정치와 세상에 대해 더 연구해야 한다. 낮은 자세로. 그걸 느꼈다면 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