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2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어제 “정세가 긴장될수록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가자”고 주장했다. 주변 정세가 불리할 때마다 들고 나오는 상투적 구호다. 그러면서도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은 그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남북협력사업이 파탄 나고 온 나라가 전쟁의 화염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한편으로 ‘민족 공조’를 내세우고 다른 한편으론 위협을 일삼는 북의 태도는 염증이 날 정도다. ‘함께 손잡고 가야 할 민족’은 누구이고, ‘화염에 휩싸일 민족’은 누구란 말인가. ‘민족’이란 말이 북의 대남 적화(赤化)통일전선 전략의 도구로 사용된 지 오래라고 해도 이 기회에 북의 민족과 우리가 생각하는 민족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민족은 ‘문화·혈연 공동체’로서의 ‘민족’이지만 북의 민족은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추종하는 반미친북(反美親北)세력을 뜻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100일 담화에서 “우리 민족은 김일성민족”이라고 했다. 이듬해 평양방송은 ‘김정일민족’이라는 표현도 썼다. 그러니 자신들을 추종하지 않는 남한 사람들을 ‘화염에 휩싸일’ 반(反)민족 세력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자주(自主)도 마찬가지다. 6·15남북공동선언의 ‘자주 원칙’에 대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아니라 우리 문제를 남북이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해 신년 공동사설에서 제시한 ‘3대 민족공조’, 즉 ‘민족자주 공조’ ‘반전평화 공조’ ‘통일애국 공조’를 통해 ‘자주=외세 배격, 주한미군 철수’라고 분명히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주말 ‘자주의 성과’를 자랑했다. “서울은 이제 외국 군대가 주둔하지 않는 시대로 확실히 가며, 5년 내에 전시(戰時)작전통제권 환수도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자주와 북의 자주가 갈수록 닮아 가는 형국이다. 지금 우리 처지가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지, 국민적 경계(警戒)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