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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 '5.31선거 나는 이렇게 본다'란에 김인영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가 쓴 칼럼 '진보정치의 버블 붕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난 5·31 지방선거 결과는 그동안 한국 정치에 잔뜩 끼어 있던 버블이 지속적으로 붕괴되는 과정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 아울러 이 선거는 서로 다른 정당이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기묘한 권력 분점(分占)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를 한국 정치에 숙제로 던져주었다.
얼마 전부터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버블이 꺼진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진짜 버블 붕괴는 정치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소위 ‘진보’정권이 두 번 집권하는 동안 한국 정치에는 새로운 버블이 많이 생겨났다. 그 이전에 40년 동안 보수정권이 집권할 때도 버블은 많았다. 부패와 정경유착, 냉전과 반공, 지역주의 등에 기대어 수준 이하의 인물들이 정치권에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버블은 두 번의 대선 패배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걸러졌다. 대신 ‘진보’정권 하에서 신종 버블이 생겨났다. 민주화 투쟁에 한 발만 걸친 적이 있으면 무능해도 좋았고, 평화와 민족만 앞세우면 친북(親北)이어도 용납이 되었으며, 친일파와 분단세력을 단죄하기만 하면 역사도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인물들이 정치권과 그 언저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이런 ‘진보’정치의 버블은 2004년 4월 17대 총선 때 불어 닥친 탄핵 역풍(逆風) 덕에 입법부까지 밀어닥쳤다. 이전까지 행정부만 장악했던 ‘진보’세력이 탄핵 바람에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손쉽게 국회로 입성하는 바람에 입법부까지 버블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이다.
지난 2년은 이런 ‘진보’의 버블이 서서히 꺼져가는 과정이었다. 몇 차례 있었던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완패한 것은 이런 버블 붕괴의 조짐이었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스스로가 콘텐츠 없는 이미지 정치와 탄핵 역풍의 거품 위에서 우연히 성공한 정권과 정당임을 인식하고 버블을 빼는 구조조정 작업에 매진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버블 위에 안주했고, 그 결과 이번 선거에서 지방권력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말았다.
중앙권력을 쥐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지방권력을 심판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오만하고 무능한 중앙권력 심판론을 들고 나왔다. 결과는 중앙권력 심판론의 완승이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는 여·야 가릴 것 없이 한국 정치 전체에 어려운 숙제를 부과했다.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을 서로 다른 정당이 장악한 상태에서 향후 1년 반 정도의 한국 정치를 어떻게 무리 없이 끌고 갈 것인가라는 실로 처음 보는 과제를 정치권 전체에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정치는 행정부를 장악한 대통령의 정당과 국회의 다수당이 서로 다른 ‘분점 정부(divided government)’ 현상 때문에 고민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가 직면한 현상은 그와는 다른 중앙 대 지방의 권력분점이다.
이제부터라도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지방권력을 대부분 빼앗긴 상태에서 어떻게 야당의 협조를 구하면서 정국을 운영하고 행정을 펴나갈지에 대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방선거 전부터 나오던 소위 민주·평화·개혁세력 중심의 정계개편이 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번 선거는 민주·평화·개혁을 자처하는 세력에게 권력을 맡긴 국민들이 지난 3년 반 동안의 성과에 대해 채점하는 자리였다. 집권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냉혹했다. 내각책임제였다면 당장 재선거를 해서 정부를 다시 꾸려야 할 정도의 참담한 결과를 집권세력에게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섣부른 정계개편이나 개헌 추진은 국면호도용이거나 난파선에서 서로 먼저 탈출하려는 생쥐 꼴로 비칠 뿐이다. 야당의 협조를 구하고 정도(正道)를 가는 것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민의를 존중하는 길이다.(김일영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