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7일자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5일 부산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부산 시민들이 왜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문 전 수석은 “APEC 정상회의, 신항과 북항 재개발, (정부) 인사까지 정부로서는 할 수 있는 만큼 부산에 신경 쓰고 지원했는데 시민들이 귀속감이 전혀 없다. 대통령이 엄청 짝사랑하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지방선거가 코앞에 닥쳐왔는데 여당 인기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더구나 정치적 연고지라는 부산·경남 지역 후보들의 인기도 착 가라앉아 있으니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문씨가 답답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의 말대로 정부는 각종 정책과 예산 지원 등에서 부산·경남 지역에 특히 공을 들여왔다. 작년 한 해 장·차관급과 청와대 수석, 공기업 사장, 정부산하단체장 인사에서 부산·경남 출신이 전체 82명 중 32%인 26명이나 됐고, 올해에도 경제 관련 인사에서 석유공사 사장, 가스공사 사장, 산업은행 총재, 한국은행 총재를 모두 같은 지역 출신으로 잇따라 임명했다. 그뿐 아니다. 대통령은 취임 후 고향사람들과 고교 동문들을 수백 명씩 청와대로 불러 식사를 대접하며 두터운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런 정성을 고향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듯하니 서운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할 것이다.

    그런 기분은 이해가 가나 그래도 이 정권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한번 되돌아봐야 한다. 이 정권은 지역주의 극복을 최고 가치이자 목표로 내걸고 출범했다. 정권의 모태인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의 깃발도 지역주의 청산이었고,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의할 때의 명분도 지역주의 극복이었다.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은 정권을 지탱하는 만능 키였다. 그러던 정권이 ‘전국 정당’ 구호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요즘 호남에 가서는 호남정서를 자극하고 충청도에 가서는 충청도 민심을 건드리고 영남에 가서는 대통령의 고향을 판다. 여당 의장은 문씨가 ‘부산’을 이야기하기 바로 1주일 전 광주에 가서 “우리당은 광주의 양심에 의지하는 정당”이라고 했다.

    집권 3년이 넘은 집권세력이 국정운영 실적을 내세우지 못하고 프로구단의 연고지 흉내를 내듯 대통령 고향이니 우리를 받아달라는 건 유치하기까지 하다. 집권당의 인기가 이 모양인 이유는 얼마 전 여론조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국정을 무능하게 운영하고’ ‘남에게만 손가락질하고 공격하는 독선적 모습’ 때문이다. 그걸 바로잡지 않고 무슨 딴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