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3일자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국회 정무위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11일 박세직 신임 재향군인회(향군) 회장과 만나 “향군은 이념문제가 대두될 때 전국 곳곳에 현수막을 내거는가 하면 광화문 일대에서 시위를 했는데 간부 몇 사람 의견을 수백만 회원 전체의 의견처럼 표출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향군에 대한 새로운 시대의 요구가 있다”며 향군 활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박 회장은 “안보전문가 집단으로서 정부·정당·국민에게 조언하는 차원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6·25 전쟁이 북침에서 비롯됐다고 잘못 알고 있는 국민도 있고, 전쟁 때 5만명 이상 희생자를 낸 미국을 주적으로 생각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고 했다.

    이 정부 사람들은 향군이 2004년 10월 국가보안법 사수국민대회, 2005년 2월 북한 해방을 위한 3·1절 대회 같은 집회에 주도적으로 참가해 온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작년 10월 이례적으로 향군을 대상으로 직접 실시한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은 “국고 지원을 받는 향군이 대규모 집회를 열어 반정부운동이나 정권퇴진운동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따졌다. 감사원까지 나서 작년 10월 10여 년 만에 향군 산하단체를 감사했다.

    이 정부는 이렇게 향군을 압박해 가면 향군회장 선거 때 자신들과 뜻이 통하는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달 선거 결과 세 후보 중 이 사회의 이념 혼란에 가장 비판적이고 정권과 일정 거리를 두고 있는 박 회장이 향군 대의원 56.5%의 지지를 얻어 큰 표차로 당선됐다. 향군이 앞으로도 안보분야에서 확고한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라는 재향군인의 뜻이 표로 나타난 것이다. ‘호국정신의 함양과 고취’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향군법상의 설립 취지를 봐도 향군이 김일성 생가에서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조국통일 이룩하자’고 넋 빠진 글이나 남기는 세력들에 맞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 정부가 인사권을 휘두르고 정부 지원금을 미끼로 회유해 시민단체를 비롯한 단체라는 단체의 지도부는 모두 정권 입맛대로 바꿔 끼웠다지만, 잠을 쫓으며 휴전선을 지켰던 예비역 장병들의 머릿속에 자리잡은 안보의식마저 바꿔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