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로고

'자본주의 중국, 사회주의 한국'

입력 2006-04-22 10:48 | 수정 2006-04-23 08:45
조선일보 2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변용식 편집인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다음은 어느 나라 학생들의 교과서에 나오는 구절일까. “경쟁은 사람의 발전과 사회진보를 촉진하는 작용을 한다. 경쟁은 현실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 압력과 동력을 부여하며, 우리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시킬 수 있도록 한다. 경쟁은 학습과 업무효율을 끌어 올리고… 경쟁은 또 우리 모두를 훨씬 생기 있게 만들며, 우리 생활을 풍부하게 하며 학습과 생활의 재미가 늘어나도록 만든다…. 질투는 경쟁의 부산물이다. 모든 사람에게서 질투심이 생길 수 있지만, 어떤 경우 질투심도 사람을 진보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경쟁의 의미를 가르치는 내용이다. 물론 경쟁의 부작용도 설명하고 있지만, 전체 흐름은 앵글로색슨적 시각이다. 그렇다면 영국? 아니면 미국의 교과서? 아니다. 중국 베이징의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사상과 품덕’이란 교과서의 내용이다. 중국은 아직도 사회주의 간판을 내리지 않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학생들에게는 평등 아닌 경쟁이 개인과 사회발전의 동력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자, 한국은 어떤가. 작년 말까지 우리나라 고교 학생들이 배운 어느 경제교과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경제활동을 하다 보면 인간욕구의 유사성으로 인해 이익추구 과정에서 상호경쟁이 나타나게 되는데, 어느 정도의 경쟁은 경제를 원활하게 하지만 경쟁이 지나치면 문제점이 발생한다” 또 이런 구절도 있었다. “시장은 사람이 아닌 돈이 투표를 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경쟁적이며 비인간적일 수밖에 없다” 시장과 경쟁을 학생들에게 이렇게 부정적으로 가르쳤다. 금년부터 KDI, 전경련, 재정경제부 등이 주도하여 경제관련 교과서의 문제된 내용들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긴 했다. 시장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물질적이고 경쟁적이며 비정할 수밖에 없다”로 고쳤다. 뜻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지금 사회에 나와 경쟁적인 시장에 대해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아프리카 밀림보다도 못한 승자독식의 카지노 경제”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은 절대 놀랄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를 비교해 보자. 작년까지의 우리 교과서에는 직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우리가 먹을 여러 가지 곡식과 채소, 과일을 가꾼다. 농사짓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곡식과 채소, 과일을 구할 수 있다. 의사 선생님은 우리가 아플 때 치료해준다. 많은 사람을 치료할 때는 힘이 들지만, 병이 나은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이 표현에는 일을 하여 소득을 얻고 그것으로 먹고 살아간다는 경제개념이 없다. 사람들은 마치 남을 위해서만 일을 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개정판에는 “…과일을 가꾸고 팔기도 한다” 고 바꿨지만, 여전히 소득이 부업 같은 인상을 준다. 다시 중국의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 “집안의 돈은 어디서 나오나”란 질문에, 재봉사인 아버지가 옷을 만든 만큼 가공비를 받는다, 농사를 지어서 돈을 번다, 부모가 가게에서 매일 10시간 일해서 번다는 대답이 나온다. 양국의 경제교육이 출발부터 이렇게 다르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한다고 한다. 교역확대와 일자리를 위해 성공하기를 빌지만, 이런 교과서로 경제를 배운 사람들이 과연 FTA를 쉽게 수용할 수 있겠는가. FTA를 받아들이려면 자본주의, 시장, 경쟁, 자유, 기업의 목적, 산업, 개방, 세계화 흐름에 대해 제대로 교육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작년까지 대한민국의 초·중·고 교과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가난에서 탈피하지 못할 수도 있는 체제이고” “국제화와 개방화의 진전은 사람들의 소비의식과 소비문화에 대한 방향감각을 흐리게 하며” “농업이나 중소기업정책은 경제의 합리성보다는 윤리적 관점에서 요청되고” “기업은 지나친 이윤추구로 사회에 피해를 주어서 안 되고 번 돈을 환원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심지어 “가족끼리 오붓하게 외식하는 것은 자기 가족밖에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라는 내용도 있었다. 다행히 이 대목들도 고쳐지기는 했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그동안의 교과서를 보면, FTA를 매국행위니, 제2의 을사늑약이니 하는 주장들이 나오게끔 되어 있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새 개정판도 더 뜯어 고쳐야 할 것 같다.
뉴데일리 댓글 운영정책

뉴데일리 경제

대구·경북

메인페이지가 로드됩니다.

로고

뉴데일리TV

칼럼

특종

제약·의료·바이오

선진 한국의 내일을 여는 모임. 한국 선진화 포럼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