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9일 사설 <'시위대에 매맞고 참는 경찰' 누가 만들었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경찰이 불법 시위대에 폭행을 당하고도 “폭력경찰 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몇 대 맞는 게 속 편하다”며 아예 없던 일로 넘기려 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공권력의 무력증이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경찰 지휘부도 사건을 숨기는 데 급급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경찰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나라의 장래와 국민의 안위(安危)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15일 경남 창원에서 일부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해고근로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이를 막는 전경 2명을 폭행하고 말리던 경관 4명에게도 심한 폭력을 휘둘렀다. 이 중 한 경찰은 이마를 5바늘 꿰맸고 다른 한 사람은 팔꿈치 인대가 늘어났다.

    그런데도 폭행당한 경관들은 모두 진단서도 끊지 않은 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정상 근무해 왔다고 한다. 가족에게는 “길 가다 넘어졌다”고 둘러댔고, 이들이 소속된 창원 중부경찰서는 물론이고 경남경찰청도 ‘차라리 맞은 게 잘 됐다’는 투로 쉬쉬했다는 것이다. 폭행 가담자 사진촬영 등 채증(採證)까지 해놓고도 그냥 넘어가려 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장 큰 책임은 정권에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농민 시위 때 쇠파이프와 죽창을 휘두른 시위자들을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허준영 경찰청장을 민노당과 운동권 농민단체들의 해임 요구를 수용해 중도에 물러나게 했다. 그러면서 “공권력의 책임은 무겁게 다뤄야 한다”고 했다. 이러니 경찰 안에서조차 “정당성이 훼손된 공권력이 범죄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겠느냐”는 자조(自嘲)의 말이 나오는 것이다. 허 전 청장은 “청와대의 운동권 출신들이 시위대 편을 들기 때문에 엄정한 법집행이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정권의 코드에만 맞추려는 경찰 수뇌부도 문제다. 경찰청은 올 1월 ‘익명성이 과잉 진압을 낳는다’며 전·의경의 시위진압복에 개인 명찰을 달도록 했다가, “전·의경은 인권도 없느냐”는 가족들의 거센 항의에 물러섰다. 공권력의 위상을 스스로 무너뜨린 자해 행위였다. 경찰이 불법행위에 눈을 감으면 법치가 무너지고 나라가 흔들린다. 올 2월 취임 후 “국민의 신뢰가 경찰의 힘”이라고 강조해 온 이택순 경찰청장이 ‘창원사태’를 어떻게 처리할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