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은 5·31지방선거를 코 앞에 둔 상황에서 터진 이번 김덕룡 박성범 의원과 관련된 대형 공천비리가 당에 어떤 영향을, 얼마만큼 끼칠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당 지도부가 이례적으로 소속 중진 의원을 검찰에 고발한 것도 대형 공천비리 사건을 은폐하고 소속 의원을 감쌀 경우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현재 검찰이 4월 말 부터 당내 공천비리에 대해 수사를 본격화 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한 상황에서 공천비리를 은폐하고 감싸는 것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무엇보다 이번 사건이 당내 신-구 주도세력의 교체로까지 이어질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오세훈 바람'으로 소장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터진 중진 의원의 공천비리가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당의 주도세력 교체, 즉 정풍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수요모임 등 소장파는 아직 집단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지는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개별 의원들이 당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어 '지도부 책임론'이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산 출신 한 초선 의원은 1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서울 중구청장의 경우, 공천비리 의혹이 제기된 지가 오래됐는데도 지도부가 왜 이 지경까지 끌고 왔느냐, 지도부가 방치한 것이 아니냐"며 "상황에 따라서는 지도부 총사퇴 필요성도 제기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서울 지역 한 소장 의원 역시 "몇 주 전부터 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당내에 공천의혹이 파다했다. 클린공천 감찰단장이 확고한 비리단절 의지를 지도부에서 보여야 한다고 건의했음에도 박근혜 대표가 '어떻게 한 쪽 말만 듣고 그럴 수 있느냐'며 미뤄왔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른 것"이라며 박 대표를 겨냥한 비판을 퍼부었다.
수요모임 소속의 한 의원도 "말로만 공천비리 엄단을 강조했지,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후에 자신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지못해 의혹을 고백한 것은 전형적인 박 대표식 리더십 패턴으로 정말 이대로는 큰일난다"며 "한나라당의 지병이 다시 도지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단 소장파가 이번 공천비리문제를 정풍운동으로 확산시킬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되는 분위기다. 수요모임 측 한 관계자는 "이제 당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라도 그것(정풍운동)이 필요한 시점 아니겠느냐"며 "그게 당을 위해서도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소장파의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그럴 개연성은 충분하다"며 현 상황이 소장파에겐 좋은 기회임을 주장했다. 다른 관계자도 "본격적인 신-구 세대간 기싸움이 시작됐다. '오풍(吳風)'이 부는 현 상황이 소장파에겐 당권을 쥘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소장파가 지금 상황에서 정풍운동을 펼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수요모임 측 모 의원은 말을 아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정풍운동 가능성에 "글쎄···"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다른 의원에게 물어보는게 좋을 것 같다"며 발을 뺐다.
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무슨 명분으로 정풍운동을 할 수 있느냐"며 "그럴 경우 소장파는 욕만 얻어 먹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당 지도부가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지 않느냐. 개인문제를 지도부의 리더십 문제로 확산시켜 정풍운동을 벌인다면 소장파도 다분히 정치적이란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일로 오히려 중진 의원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장파 측 관계자도 "당권을 쥐기 위해서는 당내 세력이 필요한데 지금 소장파를 지원할 세력이 많지 않다"며 "또 소장파가 정풍운동을 할 명분이 솔직히 마땅치 않다. 명분이 뚜렷하고 그 명분에 공감할 세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솔직히 소장파도 그동안 많이 잘못해오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소장파의 정풍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 이유로 김 전 원내대표와 소장파의 관계가 밀접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 관계자는 "소장파와 김 전 원내대표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며 "소장파가 김 전 원내대표 문제로 정풍운동 명분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날 오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 전 원내대표가 "조만간 의원직 유지 여부 등을 결정하겠다"며 신상발언을 마친 뒤 회의장을 빠져나가자 상당수 초선 의원들이 김 전 의원에게 안타까움을 나타냈고 이혜훈 최구식 의원 등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아직 당내 세력이 크지 않은 소장파가 초·재선 의원들을 지지를 얻어 당권을 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