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2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란에 이 신문 객원논설위원인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가 쓴 <'건강식 햄 메일'을 받고 싶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학교에서 배운 수학의 가장 난해한 주제로 미적분을 꼽을 정도로 미적분은 어려운 수학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그런 만큼 미적분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일상적인 표현을 빌려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미분(微分)은 잘게 나누어 가는 분해의 과정이고, 적분(積分)은 분해된 것을 쌓아가는 종합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로 편을 가르는 ‘미분’만 있고 이를 통합하는 ‘적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 구성원들을 ‘미분’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것 중의 하나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실린 글들이다. 필자는 자발적으로 회원 가입을 하지 않았지만, 정책정보서비스 대상으로 선정된 수만 명 중의 하나로 청와대발 메일을 받고 있다.

    스팸(SPAM)은 미국 호멜식품에서 만든 깡통에 든 햄으로, ‘매운 햄(SPicy HAM)’으로부터 만들어진 상품명이다. 이 회사는 과도하게 스팸을 광고했기 때문에 광고로 인한 공해를 ‘스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청와대 홍보 메일은 수신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대규모로 뿌려지기 때문에 일종의 스팸 메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양극화 시한폭탄’, ‘교육의 양극화-게임의 법칙’과 같이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을 선호한다는 점도 스팸과 닮았다. 스팸을 먹어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스팸은 미각을 자극하는 조미료를 다량 첨가하여 보통 햄에 비해 맛이 강하다.

    정부에서 쏟아내는 말은 ‘가진 자 20%와 못 가진 자 80%’를 부각시켜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대결 구도를 조장한다. 8·31 부동산 종합대책을 내놓을 때 동원한 ‘종합부동산세는 98%를 위해 2%만 때리는 초정밀유도탄’이라는 표현은 다수의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했을지 모르지만, 무기까지 동원하여 전의를 불러일으킨 것은 아무래도 지나쳤다. 청와대발 선정적인 표현의 압권은 듣기만 해도 섬뜩한 ‘저주의 굿판을 치워라’였을 것이다. 

    이런 공격적인 표현과 더불어 구체적인 수치를 포함시키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이다. ‘서울대 신입생의 60%가 강남 학생’이라는 대통령의 언급이 사실은 특례입학에서의 비율이었음이 밝혀지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또 ‘대학이 0.1%의 우수한 인재를 뽑으려고 하기보다는 1%의 우수한 사람을 뽑아 잘 기르라’는 말은 최상위권 학생을 선발하는 데 주력하기보다 상위권 학생을 선발하여 제대로 교육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의도였다. 수치는 표현의 정확성과 설득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해석되는 언어적 표현에 비해 수치의 사용은 문장을 고정된 의미로 한정하기 때문에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

    영어에는 PC(Politically Correct·정치적으로 공정한) 표현이라는 것이 있다. 성차별적 표현을 피하기 위해 의장을 남성인 체어맨(chairman)으로 한정하지 않고 체어퍼슨(chairperson)으로 부르는 것이 그런 예다. 오개념(Misconception)에 대한 PC 표현은 대안(alternative)으로, 타인의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배려가 담겨 있다. 주부(Housewife)가 반드시 와이프(wife)일 필요는 없으므로 홈메이커(homemaker)라고 하거나, 전문성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가내엔지니어(domestic engineer)로 명명하기도 한다. 심지어 키가 작은 사람을 쇼트(short)가 아닌 버티컬리 챌린지드(vertically challenged·수직 방향으로 도전을 받는)라고 하는 것을 보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편견을 없애고 타인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담은 언어는 우리의 생각도 그런 방향으로 유도한다.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담아 만들어지지만, 역으로 그 언어에 의해 사고가 영향을 받기도 한다. 따라서 사고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려면 부드러운 뉘앙스의 순화된 언어 표현을 써야 한다.

    국민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선동적인 표현, 포퓰리즘에 호소하는 청와대의 거친 표현에 대한 비판이 있은 후 한결 부드러워지기는 했지만 청와대발 양극화 시리즈의 제목은 마음 속에 가시를 돋게 한다. 최근 ‘부동산 대책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말에서는 여전히 대통령의 품격이 느껴지지 않으며, 신문 기사를 ‘위조지폐에 해당하는 국가질서 교란 행위’와 ‘혹세무민’이라고 몰아붙인 모 장관의 발언을 들으면 막말하는 습관도 전염되는가 싶다.

    짜지 않고 지방 함량이 낮아 살코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순수한 맛의 햄이 아무래도 건강에 좋다. 그러니 이제는 메일도 스팸보다 자극성이 덜한 건강식 햄 메일을 받고 싶다. 더불어 사회 구성원을 편 가르지 않고 ‘적분’해 주는 그런 메일을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