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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강금실·박근혜만 보고 판단 못한다

입력 2006-04-07 09:38 | 수정 2006-04-07 09:38
동아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란에 신우철 중앙대 법학과 교수(헌법학 전공)가 쓴 <정치판 ‘여풍(女風)’ 기대와 우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흥겨운 잔칫날, 지방선거가 벌써 달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잔치에는 아무래도 여성 바람이 강하게 불 듯하다. 대통령을 보좌해 선거 정국을 관리할 총리 후보자도 여성이요, 오랜 뜸들이기 끝에 출사표를 낸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도 여성이다. 그러고 보니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할 제1야당 대표까지도 여성이다.

‘man’이란 단어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90% 이상의 사람은 ‘woman’이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man의 반대말은 ‘baby’가 될 수도 있고 ‘animal’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이란 성년과 미성년, 인간과 동물의 구분보다 성의 구분을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증거다.

이번 선거에서 정부는 양극화 해소론을, 여당은 지방권력 교체론을, 야당은 정권 실정 심판론을 다투어 내걸고 있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선거용 구호들이 ‘성(性·gender)의 위력’만 못한 것 같다. 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이념 공방도, 전 법무장관을 둘러싼 거품 시비도, 제1야당 대표를 둘러싼 유신 논란도 ‘성의 위력’ 앞에 맥을 못 추고 있지 않은가.

문득, 어쩌면 이것도 ‘일종의 작전’일 수 있다는 헌법학도의 직업병 같은 의구심이 불온하게 번져 온다. 정치인이 아닌 전문가를 각료로 기용하여 행정의 능률을 도모하는 것이야말로 대통령제 정부 형태의 교과서적인 장점이다. 그런데 이 장점을 살리기는커녕 장관 자리를 ‘지방선거용 레테르’로 써 먹는 현실 아닌가.

소박한 주민자치의 이념은 온데간데없고, 지방선거는 정당 정치의 공방전에 희생물이 되어 가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풀뿌리째 뽑혀 정치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별로 크지도 않은 나라에서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로 단계를 나누고, 말단 시군구의회까지 정당공천제와 비례대표제로 중앙 정치에 줄을 세운다. 그것도 모자라 온 국민이 아우성인 불경기에 6000만 원을 시군구 의원의 연 급여로 쓴다.

단 한 번의 지방선거에서 4가지 투표(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광역 및 기초의회의원 선거)를 하게 해 주는 황공한 ‘선거 천국’이 국민에게 썩 달갑잖은 이유는 그것이 곧 ‘세금 지옥’으로 되돌아오리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사회 내의 빈부 양극화를 걱정하기 전에, 정치가 사회와 완전히 따로 노는 정경 양극화를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자세히 살펴보면 다가올 지방선거에는 의미 있는 개선도 적지 않다. 이번 선거부터 선거 연령을 19세로 내려 대학과 사회의 새내기들이 선거의 첫 경험을 앞당겨 가질 수 있게 되었다. 4·19혁명 직후인 1960년 개정된 헌법에서 선거 연령을 20세로 내린 후 다시 한 살 내리는 데 거의 반세기가 걸린 셈이다. 또 영주자격 취득 후 3년이 지난 장기 체류 외국인에게 선거권을 주어 개방된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아직 이룩하지 못한 역사의 진보다.

이 모든 의미 있는 개혁의 빛이 바래는 것은 여성참정 및 지방자치의 이상이 정당정치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있다는 강한 의심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혹독한 곤경을 넘어선 총리 후보자의 온화한 얼굴. 법조의 정글 속에서도 문화의 향기를 잃지 않은 전 법무장관의 신선한 미소. 뜨거운 애국심을 차갑게 갈무리한 제1야당 대표의 침착한 표정. 이 모두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헌법학도를 낳은 것은 바로 ‘선수들끼리 국민 속이는 게임’을 일삼아 온 정치인들이다.

좋은 정치를 펼치기 위해 선거에 이기려는 것이지,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곧 좋은 정치는 아니다. 국민은 선거에 이기는 온갖 놀라운 기술을 이미 지겹도록 보았다. 혹 여성 바람이 분다면 이는 살벌한 선거판의 온갖 협잡을 ‘관용과 온유의 손길’로 좀 덮어 달라는 국민의 바람이 아니겠는가.

역대 지방선거에서 여성 당선자의 비율은 1995년 2.3%, 1998년 2.32%, 2002년 3.2%였다. 초라한 수치다. 이번 선거가 ‘선수들의 게임’인지 ‘여성주의의 승리’인지를 한명숙 강금실 박근혜만을 바라보고 판별할 수는 없다. 이번 선거에서도 여성 당선자 비율이 한 자릿수에 그친다면 또 ‘국가란 결국 남자들의 집단’이라는 독일 여성학자 에파 크라이스키의 탄식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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