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이 15일 집단적으로 고건 전 국무총리 ‘때리기’에 나섰다. 지난 12일 정동영 의장과 고 전 총리가 만나 지방선거 연대 문제를 논의했으나 무산된 이후 고 전 총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속속 터져나오고 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범개혁·미래·평화세력’이라며 동반자적 관계로 추켜세우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 당장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현미 노영민 박영선 양승조 이상경 등 열린당 초선 의원 30여명은 이날 오전 성명서를 내고 “5·31 지방선거의 역사적 과제를 외면한 채, 자신의 대권욕에만 천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연대도 통합도 있을 수 없음을 확실히 하고자 한다”며 “무임승차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고 전 총리를 강력 비판했다. 이들은 특히 “대권후보를 자임하고 나섰으면서도 지방선거에 대해 무책임하게 방관자가 되겠다는 태도는 한 나라의 정치지도자로써 참으로 부적절한 태도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정치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많은 의구심을 던져주고 있다”고까지 했다.

    이에 앞서 송영길 의원도 14일 한 라디오 시사프로에 출연, 고 전 총리가 현재 우리 사회의 위기 원인으로 ‘정치시스템 고장’을 지적한 데 대해 “자신은 고고한 척 밖에 있지만 정치판에 들어오면 똑같은 경험을 갖게 된다” “마치 자신은 전혀 상관없이 하늘에 있는 것처럼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등의 말로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이같은 태도를 놓고 일단 당 안팎에서는 지난 12일 정 의장의 지방선거 연대 제안을 거절한데 대한 소속 의원들의 강한 불쾌감과 함께, 어차피 연대가 무산된 만큼 고 전 총리가 정치지도자로서 부적격자임을 내세워서 고 전 총리 자체를 깎아내려는 측면이 다분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정 의장과 고 전 총리와의 회동 직후, 당내에서는 “무슨 전직 대통령이라도 만나러 갔느냐”면서 집권 여당 의장으로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는 불만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었다. ‘범개혁·미래·평화세력’인지도 불분명한 고 전 총리를 만나러가서 거절만 당하는 모습에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민병두 의원도 정 의장과 고 전 총리의 회동 직후인 13일 한 라디오 시사프로에 출연, “고 전 총리와 열린우리당이 애초에 무엇을 연대할 수 있고 무엇을 함께 할 수 있고 이런 것들 자체가 분명치가 않았다”면서 애초부터 고 전 총리와의 연대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또 고 전 총리의 중도실용세력론에 대해서도 “우리 정치지형 등을 볼 때 중도를 중심으로 한 좌우전에 대해 회의적”이라고까지 깎아내리기도 했었다.

    아울러 열린당이 이처럼 고 전 총리의 정치지도자 자질론까지 운운하며 ‘때리기’에 나선 또다른 이유로는 불확실 행보로 안개 속을 걷고 있는 고 전 총리에게 확실한 입장을 요구하는 압박도 내포돼 있다는 설명이다. 고 전 총리와 정 의장의 지지 지역이 겹치는 만큼 정 의장 자신의 지지율 제고를 꾀하기 위해서는 ‘피아’를 명확하게 구분시켜 줘야 한다는 계산에서다.

    이렇게 볼 때 열린당의 고 전 총리 때리기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며 이에 맞물려 고 전 총리의 행보도 다소 앞당겨 빨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빠르면 지방선거 이전에 구체적인 움직임이 나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