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에 정종섭 서울대 법대 교수가 쓴 시론 '<헌법 '영토조항'없애면 안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개헌이라는 애드벌룬을 띄운 후에 개헌 논의는 숨바꼭질을 하듯이, 두더지잡기 게임의 두더지 나오듯이 출몰하곤 한다. 내용이 무엇인지도 정해지지 않은 단계에서 차기 정부부터 적용하자느니, 현 정부가 내각제 개헌의 음모를 추진하고 있으니 대통령제로 하자느니, 통일헌법을 만들자느니 등등 논리도 맥락도 없는 주장들이 난무한다. 그런 주장을 잘 짚어 보면 다들 말 뒤에 각기 자기 이익을 얻으려는 꿍꿍이속을 가지고 있다. 21세기 한국이 나아갈 청사진을 마련하고 그에 맞는 헌법을 만드는 것이 작금의 개헌 과제인데, 지금 상황은 수준은 둘째치고 그 의도가 불순하고 음험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헌법의 영토조항에 대해서도 도대체 그 의미와 맥락을 제대로 짚지도 못하고, 다른 나라 헌법에는 영토조항이 없다느니 통일에 방해가 된다느니 하며 영토조항을 없애자고 한다. 더 황당한 것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영토조항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정의 논의는 그렇다 치고 장관이니 의원이니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도 이런 말을 해야 무슨 선구자처럼 보인다고 착각하는 모양이나, 오히려 무책임하고 경박하게 보일 뿐이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2차대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종료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소련 공산군은 1945년 8월 9일부터 북한지역에 진공하여 15일 일본의 항복 이후에도 철군하지 않고 점령지를 확장하여 갔다. 그해 9월 29일 스탈린은 소련 점령지역에 단독정부 수립의 지령을 내렸는데, 비밀문서의 공개로 소련군의 주둔 의도가 이제야 드러났다. 소련의 점령에 대응하여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게 되고, 소련의 공산화 의도가 포기되지 않아 결국 한반도는 분단되었다. 여기서 남한에 자유민주국가를 수립한 대한민국은 통일한국이 진정한 우리의 미래라고 보고 제헌헌법부터 위와 같은 영토조항을 명문화하였다. 그리고 이는 영토 분쟁이 있는 소련과 중국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국제법적으로 천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영토조항은 우리와 같이 영토 분쟁이 있는 나라나 타의로 분단된 분단국가에서는 중요하다. 무엇보다 통일 이후의 영토를 확정하는 것이며, 분단이 고착화되지 않게 하며, 분단상황에서도 양쪽의 주민이 서로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의 지위를 가질 수 있게 하고, 양자 간의 교류·관계가 이른바 ‘민족 내부 간의 거래 관계’라는 국제법의 예외를 이루게 하여 준다. 이러한 것은 국제규범이 변하더라도 분단 당사자의 노력으로 언제나 규범적인 통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강대국 중국의 급부상과 군사력의 확대로 동북아지역의 힘의 균형이 깨지고 중국의 강력한 흡수력으로 우리 국민은 영토조항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한반도를 중국에 복속시키는 것을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보면 영토조항의 의미를 너무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이 경제지원을 조건으로 백두산 영역을 조차하거나 할양받는 경우, 중국이 무력으로 북한지역을 점령하는 경우, 북한이 붕괴했을 때 러시아나 중국 등 외국이 서로 선점하는 경우에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하여 대한민국이 국제법적으로 불법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영토조항이다. 분단국의 영토조항이 가지는 중차대한 의미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이래서 중요한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므로 이에 합당한 것인가를 따지면 된다. 헌법 제4조의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것은 그 문구에서 보듯이 영토조항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한다. 영토조항이 규범적인 것(de juris)이라면 통일조항은 이런 조항이 없어도 통일을 할 수 있는 사실적인 것(de facto)이다. 이를 알게 되면 제3조가 제4조에 충돌한다느니 하는 따위의 발언을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