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1일자 '조선데스크'란에 이 신문 국제부 차장대우 최원석 기자가 쓴 '칠레의 과거사 해법'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970~1980년대 칠레를 대표하는 두 가지 상징물이 있다. ‘피노체트’와 ‘시카고 보이스(Chica go Boys)’. 16년간 독재자로 군림한 피노체트 전 대통령과, 그에 의해 기용된 미국 명문 시카고대학 출신 경제관료들이다. 민주화운동 시위대를 고문하고 탄압해 전 세계의 비난을 듣던 피노체트가 임용한 시카고 보이들은 개방화를 추진했다. 1980년대 경제성장은 그들 덕분이었다. 그리고 1990년, 피노체트는 기민당과 사회당이 연합한 사회주의 중도좌파세력에 의해 축출됐다. 그는 오랜 기간 해외를 떠돌다 본국으로 송환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후 피노체트가 집권했던 만큼인 16년이 다시 흘렀다. 정권은 여전히 좌파정권이다. 이번에 당선된 미첼 바첼렛 대통령은 좌파연합의 4번 타자다. 특이한 것은 북한이나 쿠바와 같은 사회주의 정권이면서 선거로 대통령 자리를 이어오고 있는 점이다. 그렇다고 선거가 요식행위도 아니다. 90% 가까운 국민이 가톨릭교도로, 보수적인 국가인데도 국민들이 좌파의 장기집권을 불만스러워하는 것 같지도 않다.

    비결이 있다면 경제가 아닐까. 좌파정권이 등장한 1990년 이후 칠레는 연평균 6%가 넘는 고속성장을 해왔다. 좌파정권이면서도 과거 독재정권이 펴온 무역자유화와 외국인투자유치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좌파정권이 들어선 직후인 1991년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데 이어 미국, 유럽연합(EU), 캐나다 등 34개국과 손을 잡았다. 우리나라와는 2004년에 FTA를 맺었다.

    지금은 FTA 네트워크를 추진하고 있다. 국가 간 FTA의 허브(중심지)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많은 나라가 칠레가 만든 FTA 네트워크에 참여하려고 칠레와 FTA를 맺으려 할 정도다. 이에 대한 국민 지지도 역시 높다. 2002년 칠레 외무부가 실시한 FTA 국민 지지도 조사에서는 80% 이상이 찬성했다.

    2004년 11월 제12차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개최했을 때 칠레는 하루를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21개국 회원국 정상들이 신속히 이동할 수 있도록 차량행렬을 줄이려는 의도였다.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반대 물결이 거센 와중에 좌파 정권이 취한 조치라고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일화는 셀 수 없이 많다. 

    칠레가 남미에 닥친 여러 경제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정책의 결과라는 것이 정설(定說)이다. 1994년 멕시코 페소화 위기, 1997년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지역 외환위기, 2001년 아르헨티나 외환위기 때도 칠레는 안전지대였다. 1990년대 이후 남미에서 유일하게 외환위기를 겪지 않은 나라로 기록되는 데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셈이다. 

    특히 칠레가 다른 남미국가와 남달랐던 것은 독재자가 뿌린 개방화의 씨앗을 ‘과거사’라고 해서 청산하려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구식 시장경제에 반대하는 세력을 모아 집권한 다른 좌파 정권 대부분은 빈곤과 부패문제로 추락했다.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을 따르느냐, 마느냐의 결과는 생각보다 치명적이다. 

    바첼렛 대통령 역시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분배 이외에 시장개방을 약속했다. 좌파정권이지만 명분에 매달릴 뜻은 없다는 얘기다. 국민을 먹여 살리는 일이 그 어떤 정치이념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과거사 청산 분위기에 휩싸인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말을 꺼내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