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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에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민간조사관인 신성식씨가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전경과 의경의 부모들까지 나서서 ‘평화시위’를 촉구하는 집회를 가졌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아직도 만연한 폭력시위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9년 전 한양대에서 열린 8·15통일대축전 행사 때였다. 경남1기동대 소속이었던 필자는 서울까지 소집됐다. 밤늦게 교문에서 화염병을 든 시위대가 이동하고 있다는 무전이 왔다. 진압복과 방독면을 착용했다. 깜깜한 밤에는 투석전보다 화염병이 오히려 더 편하다. 그런데 시위대에서 화염병에 불을 붙인 채 던지지는 않고 물을 뿌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최루탄을 무력화시키려는 전략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허술한 방독면 사이로 들어오는 냄새가 이상했다. 알고 보니 휘발성 기름이었다. “도망가” “빨리 도망가” 미친 듯이 외쳤다.
다음날 오후 무전에서 구급차를 찾는 내용이 시끄럽게 나왔다. ‘또 누가 다쳤구나’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전날 밤 병원으로 후송했던 전경 대원이 사망했다는 무전이 흘러나왔다. 순간 대원들은 모두 헬멧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모두 말이 없었다. 중대장은 “정신 똑바로 차려. 이건 시위가 아니라 전쟁이야”라며 울분을 토했다.
전·의경들은 “출동” 소리만 들리면 긴장한다. 전쟁터로 간다는 기분을 갖는다. 예고된 집회가 있을 때면 밤잠을 설친다. 야간 투석(投石), 쇠파이프의 변형, 사제총, 화염병 앞에서 전·의경이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구는 오로지 방패와 진압복밖에 없다. 화염에 휩싸여 뒹구는 동료를 보고 전·의경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1회용 소화기를 동료를 위해 사용하는 것뿐이다.
러나 전·의경들은 그동안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동료가 다치고 죽어가도 속으로 삭일 뿐이었다. 의경 시절 길거리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을 때 시위대가 버스를 타고 가면서 모래를 뿌린 적도 있었다. 쇠파이프와 돌멩이, 죽창(竹槍)이 시위현장에 등장해도 당연한 듯 온몸으로 두들겨 맞고 밟혀야 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일부 폭력시위는 독재정권에 대한 유일한 투쟁방법으로 어느 정도 묵인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1996년 8·15통일대축전(연세대사건)을 기점으로 불법·폭력시위에 대한 시민들은 생각은 달라졌다. 사람들은 폭력시위가 많은 경우 이익집단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 목적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폭력시위는 대개 다수의 온건 시위대를 소수의 과격파가 선동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불법·폭력시위의 악순환을 끊을 고리는 없는지. 우리는 폭력시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폭력으로는 그들이 요구하는 목적을 절대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농민단체의 홍콩 원정시위만 봐도 그렇다. 초반의 3보1배 등 합법적 방법은 현지언론 및 시민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지만, 후반의 폭력시위는 대규모 연행사태 등 피해만 낳았다.
사법기관과 정부 또한 엄정한 법 집행 의지가 필요하다. 폭력시위에 대한 진압 과정에서 인명사고가 났을 경우 경찰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는다면 누가 폭력시위를 진압하려 하겠는가. 오죽했으면 현직 경찰이 명예의 상징인 경찰모를 청와대에 보냈는지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올바른 민주주의는 불법을 저지르는 범죄자에게는 최소한의 인권만을 누리게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