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 '노트북을열며'란에 이 신문 김진국 정치부 부장대우가 쓴 '유시민, 현실주의와 싸가지'라는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지명이 몰매를 맞고 있다. 대통령의 장관 지명이 여당에서까지 이렇게 비난받는 것은 아마 전무후무할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김성곤씨의 코털이 뽑혔다는 4인방 항명사건도 총리(김종필)와의 갈등으로 그가 후견하는 장관(오치성 내무) 해임안을 모른 척 통과시킨 정도다.

    유시민을 비난하는 내용을 정리해 보면 첫째, 품성 문제다. 한마디로 '싸가지가 없다'는 말이다. 대학 시절 그는 '리버럴리스트(자유주의자)'를 자처했다. 그렇게 유행하던 좌파 경제학에 매몰되지 않았다. 이념만 내세운 선배가 상식에 맞지 않은 주장을 하면 가차없이 독설을 날리고 논쟁을 벌였다. 그런 태도가 어떤 선배에게는 건방지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이기에 패기로 받아들여졌다. 정치인 유시민의 독설도 '유빠'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장관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너무나 큰 짐이 될 게 뻔하다.

    그런데 싸가지로 자질을 따지는 사람을 보면 결국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한 듯하다. 어떤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유시민 나가! 이해찬 나가! 노무현 너도 나가!'로 들린다. 하지만 당장 정권을 바꿀 수 없다면 이 정부의 장관 자격을 따지는 데 싸가지 문제는 일단 접어두자.

    또 한 가지는 유시민을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기 위한 포석이라는 주장이다. 대통령 연설비서관이란 사람까지 국민 '염장 지르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장관 자리가 여당 정치인의 차기 훈련장이냐'는 비난을 받아도 싸다. 그렇지만 장관 한번 한다고 그냥 대통령 후보가 되는 건 아니다. 국민이 표를 주는 건 더욱 더 아니다. 국민을 감동시킬 만큼 국정과제를 잘 해결해 조금의 가점을 받는다면 그건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니 역시 장관감인지를 따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 능력이다. 더구나 보건복지부에는 국민연금이라는 시한폭탄이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여름 베를린 한 골목 카페에서 유학 중이던 유시민을 만났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인세가 수입의 전부라고 했다. 부인도 함께 공부하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까지 있었지만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다고 했다. 그는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를 전공하면서 그것을 몸으로 느끼고 감동한 듯했다. 2년 전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 한 자리에서도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 국민연금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국민연금은 이대로 두면 2040년께면 깡통을 차게 된다고 한다. 지금 기준으로 받으려면 급여의 3분의 1을 내야 한다. 해결책은 더 내고 덜 받는 수밖에 없다 (본지 2005년 10월 13, 14일자). 김근태 전 장관의 정부안이 그렇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물론 열린우리당 의원들까지 외면했다. 당장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처음 내는 돈은 그대로 두되 받는 돈만 줄이자는 안을 내놨다. 그러다 '효도연금제'와 연계해 내는 돈도 늘리는 정부안을 받아들였다. 효도연금제는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제를 절충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제는 시행 첫해에 최소 4조~5조원, 전면 시행되는 2030년에는 170조원의 세금이 들어간다고 한다. 유시민은 수혜자를 저소득층으로 제한해 재정 부담을 줄인 효도연금제로 한나라당에 명분을 줬다. 

    이렇게 정책을 따지다 보면 유시민은 독불장군이 아니라 협상이 가능한 상식인이다. 그의 이미지처럼 과격하기보다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일단 그에게 일을 맡겨보자. '연금 폭탄'을 해체하려면 욕을 먹더라도 밀어붙일 추진력이 절실한 시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