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 사학법은 학교구성원들이 추천하는 사람을 이사회에 들어가게 하는 개방형이사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학재단으로부터 운영권을 박탈하여 학교 구성원들에게 분산시킴으로써 사학을 집단운영체제로 바꾸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개정 사학법은 본질에 있어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등 신문 관련법과 같은 성격을 띤다. 신문 관련법이나 개정 사학법은 공히 사적 자치를 제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 사회는 좀 더 왼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인 자유주의에서 집단주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체주의 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신문 관련법과 개정 사학법에서 읽어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이 정권이 신문 관련법이나 개정 사학법의 당위성으로 든 사회적 책임이나 공공성이라는 것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인정하기 어려운 개념들이다. 한정된 전파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사용하는 방송이라면 공공성이나 사회적 책임을 논하는 게 당연하지만, 시장진입이 자유로운 신문에서 사회적 책임이나 공공성을 강조, 아니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학에서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을 강조하며 국가통제도 모자라 사회 통제까지 가하려는 것 또한 사적 자치를 말살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사적 자치를 제한하거나 위협하게 되면 그 결과는 사회적 퇴보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사회주의가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적 자치가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 마을 공동 소유의 고추밭이 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주인이다. 모두가 주인이라는 말은 아무도 주인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책임운영 주체가 없다. 그러니 그 고추밭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각자의 텃밭에 심은 고추는 여물지만 공동소유의 고추밭은 부실하기만 하다. 열심히 일해도 그 성과가 공동 분배될 것이니 제 집 텃밭만 열심히 가꾸게 마련이다. 인간 행동양식의 바탕에는 도덕률이 아니라 이기심이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이를 무시한 게 사회주의였고, 따라서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적 자치의 인정 여부는 이렇듯 한 사회의 발전과 퇴보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사학이나 신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학을 집단운영체제로 만들면 책임운영의 주체가 사라지고 만다. 책임운영의 주체가 사라지면 집단농장의 운명이 그랬듯 사학도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내 학교'를 명문으로 키우고자 하는 열망이 가장 큰 '주인(사적 자치의 주체이자 책임운영 주체)'이 사라지고,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사람들에 의해 휘둘릴 때 그 학교의 운명은 뻔하다. 신문사 또한 편집위원회 구성 여부나 경영을 자율에 맡기지 않고 법으로 강제할 경우 퇴보가 불가피하다. 언론의 자유가 위축될 것임도 불문가지다.

    이치가 이러함에도 이 정권이 신문 관련법과 개정 사학법을 밀어붙인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선 이 정권의 가치관이 집단주의라는 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만 그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이 정권은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코드를 같이 하는 언론에 대해서는 국민의 세금을 펑펑 써가며 지원함으로써 여론시장을 장악, 왜곡시킬 수 있게 되었다. 뿐 아니라 전교조가 중등교육 현장을 장악케 함으로써 2~3년 내에 선거권을 갖게 될 예비유권자들을 동일한 코드로 찍어 낼 수 있게 되었다. 갈등과 대립이 빤히 내다보이는데도 신문 관련법과 사학법 개악을 밀어붙인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신문 관련법과 사학법은 우리사회의 정체성 문제, 나아가 나라의 명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신문 관련법과 개정 사학법으로 인하여 오늘의 집권세력이 계속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나라의 앞날에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다. 따라서 신문 관련법이나 사학법의 개정안이나 폐지안이 조속히 나와야 하고, 이를 관철시켜야만 한다. 진정 나라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계속 '좌향좌' 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방치해선 안된다. <자유시민연대 대변인 조남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