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 '광화문에서'란에 이 신문 송문홍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달 96세로 타계한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에는 부친의 친구였던 오스트리아 귀족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청년 시절 ‘호전적 사회주의자’였던 40대의 이 백작은 16세 소년 드러커에게 독백처럼 말한다.

    “피터, 그거 아니? 오스트리아의 사회주의자들이 정부를 구성했을 때 내게 교육부 장관 직을 제안했다는 사실 말이야. 늘 꿈꿔 오던 자리였지만 맡을 수는 없었지. 어린 시절의 친구들, 같은 이상을 갖고 있던 동지들의 죽음을 대가로 성공을 거둘 수는 없었던 거야.”

    20세기 초엽, 이 백작과 동료들은 사회주의에 투신해 반전 운동을 벌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다. 대부분의 동지가 숨지고 전쟁이 끝난 뒤 꿈에 그리던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섰지만, 그는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고백을 읽으면서 2005년 한국의 상황을 떠올린다. 세계적으로 퇴조한 사회주의 이념이 맹목적 친북 반미라는 비틀린 형태로 남쪽 사회를 떠돌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도구로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오스트리아 백작’의 양심과 진정성마저 지금 한국의 좌파 운동세력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주 서울에서 북한인권국제대회가 열렸다. 국내외 40여 단체가 한목소리로 북한 체제의 인권 유린을 고발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그러나 범청학련 남측본부, 통일연대, 민주노총, 한국노총,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범민련 남측본부 등 20여 단체는 북한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역공했다. 이들은 대회를 후원한 미국의 인권 상황을 고발하는 적반하장의 전시회도 열었다. 

    ‘오스트리아 백작’이 오늘날 한국 좌파단체들의 행태를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이들 좌파단체 사람들은 “북한의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적 인권관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사회주의적 인권관’이란 것이 주민을 굶겨 죽이고 때려죽이는 것이라면, 백작은 진즉에 사회주의를 버리지 않았을까. 

    국내 일부 좌파세력의 김일성-김정일 부자 세습 체제에 대한 일방적 지지와 숭배, 그리고 무차별적 반미운동은 이들의 ‘생업’이 돼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보지 않고는 노동과 교육 현장에선 평등을 앞세워 제 밥그릇 키우기에 몰두하면서, 고통 받는 북녘 동포는 철저히 외면하는 모순을 설명할 길이 없다.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 한국 내 김일성 주체사상파의 대부였다가 전향한 김영환(42·‘시대정신’ 편집위원) 씨는 북한 체제를 “전근대적 봉건왕조와 군사독재, 마피아 집단을 적당히 섞어 놓은 체제”로 규정한다. 한국의 ‘좌파 업자들’은 김 씨의 지적에 한 번쯤이라도 귀 기울였으면 한다. 북한 체제가 사회주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괴물 같은 존재라면, 그런 북한을 추종하는 이들 또한 제대로 된 좌파 축에 끼지 못할 터이다. 

    1982년부터 15년간 친북 좌파 운동을 했다는 홍진표(42·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씨는 “1995∼96년 북한의 식량난과 주민 탈북 사태를 보면서 치열한 고민 끝에 생각을 바꿨다”고 말한다. 하지만 좌파 업자들은 그런 홍 씨에게 돌을 던졌다고 한다. 양심과 진정성을 잃어버린 한국의 좌파 업자들에게 홍 씨는 ‘생업 훼방꾼’이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