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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 '전문가 시각'란에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인 김성이 이화여대 교수가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우리나라가 IMF 관리 체제로 들어간 첫해인 1998년은 정말 경제가 어려웠었다. 이전만 하더라도 많은 학생들이 외국에 나가 선진국의 복지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 위기로 학생들이 해외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당시에 우리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해 주고자 외국에 내보내는 대신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 대사관에 자국의 복지 상태를 말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우리학생들이 외국에 나가지 못하더라도 선진 각국의 복지 상태를 실감나게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였다.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 중에서 프랑스 복지에 대해서 프랑스 영사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었다. 프랑스 발표가 끝난 뒤에 프랑스 삼색기는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데 프랑스 국민들은 자유,평등,박애 중 어떤 가치관을 가장 숭상하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우리들은 자유나 평등 중에 하나의 가치관을 선택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기대와는 달리 박애가 가장 중심적인 가치관이라는 답을 듣고 의외였다는 느낌을 가졌다.
이후에 박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박애란 개념은 우리사회에 가장 기본 되는 가치로서 자유와 평등을 떠받쳐 주는 개념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자유와 평등은 매우 중요한 가치관들이지만 이 둘 만으로서는 사회를 온전히 조화롭게 지탱해 주지 못한다. 자유와 평등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은 박애라는 바탕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유럽의 복지선진국들은 박애를 바탕으로 자유와 평등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가운데 사회발전을 기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영국을 보면 영국에서도 산업화 과정에서 자유와 평등 간의 가치관 때문에 혼란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박애를 기본으로 젊은 엘리트들이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킴으로써 영국의 사회보장제도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근세 영국의 사회보장제도는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기인한다. 베버리지는 “나는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적 조건 하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다” 라는 이념으로 영국 사회보장에 기초가 되는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이 베버리지 보고서를 기초로 하여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장하는 영국의 사회보장제도가 설립되게 되었다.
베버리지에게 영향을 준 것은 영국의 사회개혁을 부르짖는 페이비언 협회의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버리지는 청년기 때 토인비홀에서 불우이웃을 위한 사랑실천 운동을 했으며, 페이비언 협회에 가입하여 자본주의의 자유시장체제와 사회주의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다.
페이비언 협회는 1884년 영국에서 소수의 지식인에 의해 설립되어 점진적인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단체로 발전되었다. 페이비언(Fabian)이란 한니발 대군을 격파한 로마 장군 파비우스(Fabius)에서 기인한다. 그는 카르타고 전쟁에서 접전을 피하고 꾸물거린다고 로마 시민으로부터 비난을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호기를 포착해서 한니발을 격퇴하여 로마를 구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으로 페이비언주의의 기본 이념은 점진적 사회개혁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페이비언 협회는 사회개혁의 네 가지 원칙을 강조한다.
첫째, 민주적이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사회개혁에 대하여 대응할 준비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둘째, 점진적이어야 한다. 개혁의 속도가 사회혼란을 야기시켜서는 안 된다. 셋째, 도덕적이어야 한다. 부도덕한 것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더욱 도덕적이어야 한다. 넷째, 그 어떤 개혁도 입헌적이고 평화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페이비언 협회는 침투와 설득이라는 전략으로서 사회개혁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고 설득의 대상으로 삼았다.
페이비언 협회의 노력 결과 런던의회가 개최되었고 구빈활동에 개혁을 가져와 영국 복지국가의 기본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복지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복지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의 개념이 조화로운 박애주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뉴라이트운동은 모든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존중해야 하며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해치는 어떠한 장애물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맞서 싸울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한 싸움은 설득과 관용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