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4일자 오피니언면에 숭실대 전삼현 교수(상법 전공)가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야당이 배제된 상태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9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대해 사학법인 단체들은 강력히 반발, 헌법소원은 물론 법률효력 가처분 신청까지 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한나라당도 박근혜 대표를 중심으로 장외투쟁에 들어갔다. 사학법인들은 신입생 모집 중지와 학교 폐쇄의 기본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이에 맞서 교육인적자원부는 사학의 임원 승인 취소와 임시이사 파견 등 극단 처방을 내놓고 있다. 자녀의 교육권을 담보로 벌어지고 있는 무모한 싸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싸움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게 마련이다. 교육부는 법 개정을 통해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순간에 승자와 패자는 바뀔 수도 있다. 더욱이 사학들이 학교 폐쇄라는 극단의 조치를 내리는 경우 패자는 교육부가 될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와 여당은 왜, 무엇 때문에 2세들의 교육을 볼모로 하면서까지 사학법 개정을 단행했는지 매우 궁금하다.

    표면상 이유는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해 사학 비리를 척결하는 데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제는 개정법이 비리가 없는 사학 재단에 대해서도 개방형 이사를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국회 협의 과정에서 개방형 이사 비율을 4분의 1로 줄였고 선임 방법도 정관에서 정하도록 했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논란의 핵심은 선임 방법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외부 인사 선임을 법으로 강제했다는 점이다. 이미 많은 전문가, 특히 교육부 자문 변호사 4인 가운데 3인이 개정 법안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개정법이 이사회 구성권과 학교 운영권이라는 사유재산권을 과잉 침해했으므로 위헌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사학은 대부분 정부의 보조금과 학생 등록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이미 더 이상 사학이라 할 수 없는 공익재단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있다. 

    헌법 제23조는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제한될 수 있다는 명문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공익이 사익보다 큰 경우에 한해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공익이 사익보다 크지 않다면 당연히 헌법상 기본 원칙인 과잉 금지의 원칙에 반하는 위헌 법률이 된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제한 목적의 정당성, 제한 방법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 보장되는 경우에 한해 재산권의 제한이 합헌이라고 한 바 있다.

    만약 개정 사학법이 비리 사학 척결에 목적을 두었다면 나름대로 정당성은 인정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비리 없는 사학에도 법 적용이 강제되도록 한 것은 분명 부적절한 제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동안 정부가 맡아야 할 공교육을 사학들이 사재를 출연해 대신해 왔다는 점으로 미뤄 볼 때 이들에 대한 제한은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도 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법 개정으로 향후 사학을 설립하거나 이들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감소할 것이 분명한 점을 고려해 보면 공익 또한 크다고 할 수 없다. 특히 최근 공교육 시장이 무너지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해외유학을 보내는 현실에서 이들을 국내로 유인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사학이 설립되기 어렵게 만든 것은 공익에 반하는 중대한 제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김 교육부총리가 언급한 대로 많은 사학이 정관을 통해 개방형 이사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법적 강제 없이도 개방형 이사제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리 사학들에 대해서는 이미 엄중한 형사처벌과 민사책임이 가해진 바 있다. 오히려 개정 사학법의 근본 목적이 교육부의 감독권 강화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정치권과 교육부는 조속히 백년지대계에 맞는 새로운 입법안을 마련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