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또 다시 세모를 맞고 있다.

    한 세대 만에 압축성장의 산업근대화를 이루고, 이어서 민주화도 성취하였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GNP 1만 달러 선에 도달한 이후 10년 동안 2만 달러를 이루지 못하고 1만4000 달러 선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최근 청와대의 정책포럼에서는 우리의 휴대폰 보급률, 텔레비전 보급률, 대학 진학률, 자동차 보급률, 아파트 주거 비율 등을 주요 근거 지표로 제시하면서, 우리나라가 중진국을 넘어서 이미 선진국이 되었음을 주장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24.2명으로 선진국 모임인 OECD 회원국 중 최고라는 사례를 지적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요즘 주요 지하철역 플랫폼에 추락 방지시설 공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슬프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생활고, 실업난을 이유로 한 투신자살 사건이 급증한 다음 그러한 안전시설공사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어느 선진국의 지하철에서도 이런 시설을  본 적이 없다.

    IT제품, 조선, 자동차 등의 수출 호조로 인한 무역확대, 그리고 주가상승 등을 들어 우리경제가 안정궤도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청년실업, 신용불량자 양산, 중소기업 도산으로 인한 고통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청와대 발 희망사항과 같이 우리가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상태로 라면 이에 동의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국가 안보나 범죄수사를 위한 합법적인 감청이 아닌, 불법감청을 금지하는 법제를 만들어 놓고서도, 그리고 국민들의 불안이 비등해지자 책임 있는 당국자들이 ‘절대 불법 도청을 하지 않는다. 안심하라’고 신문에 광고까지 해놓고 뒤에서는 계속 비행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5억 달러 이상을 불법 송금하고서도 그런 일이 없던 것처럼 국민을 기만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정몽헌, 남상국 같은 아까운 인물들이 자살하도록 만들지 않았던가.

    그러한 시대상황의  밑바닥에는 허위와 속임수가 흐르고 있다.  정권적 차원의 선동에 앞장서려는 공영방송, 정부의 재정지원에 의존하는 사이비 시민단체들은 본연의 공정성, 공익성이 크게 훼손되어 있다.  그러한 수단을 통해 형성되는 민주적 의사라는 것은 왜곡될 수밖에 없고,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국민의 알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유명무실 할 수밖에 없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과 비교하여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겠는가.

    그런 상태로 선진국이 되려 한다면 헛된 꿈이 아닐까.  ‘한 사람을 평생 속일 수 있다. 전 국민을 한번 속일 수 있다. 그러나 전 국민을 평생 속일 수는 없다’고 한 에이브람 링컨의 명언이 지금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크다.  링컨의 말이 현실화 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도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새해 경술년은 우리 조국이 국가다운 국가로 거듭 태어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김석우 전 통일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