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올리비에상 5관왕' 안무가, 6년 만에 성사된 첫 내한 공연예술적 모태 '키드 피봇'과 함께…5~7일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
  • ▲ 크리스탈 파이트의 '어셈블리 홀' 공연 사진.ⓒLG아트센터
    ▲ 크리스탈 파이트의 '어셈블리 홀' 공연 사진.ⓒLG아트센터
    '21세기 무용 천재'로 불리는 안무가 크리스탈 파이트(Crystal Pite, 56)가 드디어 한국을 찾는다.

    크리스탈 파이트는 자신이 이끄는 무용단 키드 피봇(Kidd Pivot)과 함께 오는 5~7일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이번 무대는 2020년 팬데믹 여파로 무산됐던 내한작 '검찰관'의 아쉬움을 딛고 6년 만에 다시 성사됐다.

    파이트는 최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 관객과 처음 만나게 된 소감에 대해 "언제나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온다는 사실 자체에 놀라며 깊이 감사하다"며 사람들이 하나의 시공간에 모여 진지하게 예술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제게 큰 울림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를 서로 고립시키는 수많은 힘들이 존재하는 지금, 극장에 모이는 경험은 어쩌면 하나의 작은 저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저는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한국 관객들 역시 우리가 전하는 작품이 사랑과 희망을 담아 건네진 것이라는 점을 느껴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캐나다 출신의 파이트는 영국 최고 권위의 올리비에상을 통산 5회나 수상하고,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안무가상을 거머쥔 세계 최정상급 안무가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 '사계의 캐논', 영국 로열 발레단 '플라이트 패턴'을 비롯해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 캐나다 국립 발레단 등 세계 유수의 무용단들이 앞다툈 신작을 의뢰하는 '무용계의 최첨단'으로 통한다.

    2002년 창단 이후 20년 넘게 이끌어온 그녀의 무용단 '키드 피봇'은 파이트의 안무 철학이 시작되고 완성되는 심장부와 같다. 이번 공연은 크리스탈 파이트가 자신의 예술적 모태인 키드 피봇과 함께 대표작을 들고 한국을 찾는 첫 무대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를 지닌다.
  • ▲ 안무가 크리스탈 파이트.ⓒLG아트센터
    ▲ 안무가 크리스탈 파이트.ⓒLG아트센터
    "대형 무용단과의 작업은 큰 예산과 규모를 활용할 수 있는 반면, 창작 시간은 짧아 빠른 속도로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키드 피벗은 훨씬 더 복합적인 구조의 작품을 만들며, 여러 해 동안 투어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공연이 시간과 함께 깊어지고 진화한다. 두 환경 모두에서 리서치와 경험, 결과물이 서로에게 긍정적으로 축적되며, 이 상반된 두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는 것 자체를 큰 행운이자 배움의 기회로 여깁니다."

    내한작 '어셈블리 홀(Assembly Hall)'은 캐나다 출신의 극작가이자 배우인 조너선 영과의 네 번째 협업 작품이다. 두 사람이 구축해 온 독창적인 형식인 '언어의 안무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이 함께 만든 세 작품 '베트로펜하이트(2017)', '검찰관(2022)', '어셈블리 홀(2025)'이 모두 올리비에상 최우수 무용작품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성과를 입증한 바 있다.

    파이트는 "언어를 도입하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안무적 영역을 발견했고,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도 훨씬 다양해졌다. 제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때로는 언어가 작품에 깊고 다채로운 결을 더해주면서도, 관객들에게는 작품이 더 쉽고 친숙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특히 조너선과의 협업 덕분에 언어를 무대 위에 더욱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방식으로 녹여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어셈블리 홀'은 녹음된 대사의 음절과 억양은 물론, 화자의 미세한 숨소리와 망설임까지 무용수들의 온몸을 통해 정밀하게 시각화한다. 대사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하나의 음악적 리듬으로 작동하며, 무용수들은 말의 속도에 맞춘 정교한 립싱크와 과장된 제스처로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긴장감 넘치는 무대로 변주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어셈블리 홀'은 북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마을회관이다. 무대 위에는 낮은 단상과 붉은 커튼, 농구 골대 등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이야기는 이곳에서 중세 재현 축제를 열어온 '중세 오타쿠 클럽(자애와 보호의 기사단)'이 재정 적자와 회원 감소로 존폐 위기에 처하면서 시작된다.
  • ▲ 크리스탈 파이트의 '어셈블리 홀' 공연 사진.ⓒLG아트센터
    ▲ 크리스탈 파이트의 '어셈블리 홀' 공연 사진.ⓒLG아트센터
    해체의 절망이 드리운 순간, 평범했던 공간은 비현실적이고 신비로운 고대의 힘이 깨어나는 무대로 바뀐다. 8명의 뛰어난 무용수들은 개성 넘치는 현실의 캐릭터를 연기하다가도 순식간에 전설 속 기사로 변신하며, 극 후반부 소품과 움직임이 하나로 결합해 거대한 기사의 형상을 완성하는 장면은 공연의 백미로 꼽힌다. 온라인으로 넓고 얕게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 파이트는 이 평범한 인물들의 고군분투를 통해 '인간은 왜 함께하는가?'라는 일상적이면서도 묵직한 공동체의 의미를 되묻는다.

    파이트는 "마을회관은 결혼식, 추모식, 축제 등 다양한 지역 사회의 모임과 의식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역동적인 장소다. 평범해 보이는 이 공간에 사람들이 모이면서 무언가를 함께 이루려는 과정에서 생기는 소소한 갈등과 내부의 정치성이 드러난다"며 "중세 재현 활동이라는 자신들이 사랑하는 일을 매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이 과정에서 인물들은 점차 지치고 내부적인 긴장과 분열을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연대와 그 반대편의 가치를 다룬다. 민주주의, 종교, 회의 규칙 같은 체계들은 공동체의 이상과 공정함을 담은 필수적인 구조이지만, 동시에 매우 연약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최근 대두되는 공동체적 참여의 감소는 심각한 문제다. 타인과의 연결이 사라지면 인류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능력인 협력과 더 큰 가치를 위해 움직이는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개인과 공동체는 단절된 존재가 아니다. 서로를 성장시키고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긴밀한 순환과 교감의 관계에 놓여 있다."

    공연은 파이트의 안무 외에도 실력파 창작진의 협업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제이 가워 테일러의 감각적인 무대 디자인과 톰 비저의 조명, 낸시 브라이언트의 의상은 마치 멈춰 있던 정교한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시각적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날카로운 칼날의 마찰음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교차하는 오웬 벨튼의 사운드스케이프가 더해져 비현실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세계를 구현해 낸다.

    "저는 언어와 안무적 움직임의 관계를 '의식과 무의식'에 비유하며,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어긋남과 우리 안에 공존하는 다양한 현실을 탐구한다. 신화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우리를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 감정의 양극성(비극과 희극) 같은 삶의 '드라마'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어셈블리 홀'은 공동체와 헌신이라는 이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작은 집단 안에서도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을 함께 조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