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앙청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헌국회 개원식. 일본총독부 청사였던 중앙청 5층 석조건물은 김영삼 정부시 '일제잔재'라며 철거된다. ⓒ연세대이승만연구원
    ▲ 중앙청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헌국회 개원식. 일본총독부 청사였던 중앙청 5층 석조건물은 김영삼 정부시 '일제잔재'라며 철거된다. ⓒ연세대이승만연구원

    마침내 대한민국 건국의 문이 활짝 열렸다.
    스탈린의 찬혹한 폭력공세와 김구의 단선반대를 뚫고 5.10총선거가 보기좋게 성공했다.

    민족사 5천년만의 자유선거, 온갖 투표방해살인만행 속에서도 유권자들의 자유독립열망을 꺾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전국 투표율 평균 90%이상, 유효투표율은 무려 96.4%였다.

    개표 결과가 발표된 514일 남한은 암흑천지로 변했다. 김구가 김일성에게 보장받았다던 북한 송전(送電)을 김일이 끊어버린 것, 아니 스탈린이 단행한 분단고착폭거가 또 하나 더 해진 것이었다. 미군정은 인천 앞바다에 발전(發電船)을 추가배치, 응급대첵을 서둘렀다.

  • ▲ 5천년사 최초의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건국선포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기념사를 읽고 있다.ⓒ연세대이승만연구원
    ▲ 5천년사 최초의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건국선포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기념사를 읽고 있다.ⓒ연세대이승만연구원

    ◆ 기도로 건국의 문을 연 제헌국회!

     1948년 531일 5천년 한민족사상 최초의 자유민주주의 국회가 열리는 날이다.
    중앙청(옛 일본총독부)에 마련된 제헌국회 의사당그곳이 일본식민침략의 소굴이라서 독립의 기쁨은 한결 더 컸다우리의 피땀으로 쌓아올린 우리 재산을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
    감격의 그날 이른 아침부터 제헌국회 개원 축하’ 행진이 서울 시내를 누비며세종로와 국회앞 광장을 가득 채웠다의사당엔 선거를 못한 제주도 2명을 제외하고 제헌국회의원 198명이 엄숙한 표정으로 역사적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오전10최고령자로 임시의장이 된 만73세 이승만 박사가 단상에 오른다.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다 일어서서 성심으로 감사를 드릴 터인데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식순에도 없는 식전(式前)순서이승만의 개원제1(開院第一聲)이 하나님께 기도였다.
    한민당은 물론 선거를 반대한 한독당 등 좌우파 의원들이 자동적으로 일제히 기립한다속으로야 무슨 생각을 하든지 역사의 명령인지라 숙연하게 머리를 숙였다.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오랜 세월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현시하신 것으로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伸寃)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 땅에 오지 않을 수 없을 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컨대우리 조선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제헌국회 속기록](1) 1차회의 제1, 1948.5.31) 

    평양 목사 이윤영(李允榮의원의 목소리는 감격의 오열에 떨린다간단하게 해달라는 이승만 의장의 부탁도 잊은 듯 눈물 섞인 기도는 길어졌다.

    북한에서 해방후 조만식과 조선민주당을 만들었지만 소련의 폭거에 쫓겨 월남한 그는 종로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이는 이승만이 종로 터줏대감 김성수를 설득 양보받은 결과였다이윤영을 정치1번지 종로에서 당선시킴으로써 국회의 상징적 북한대표로 세운 것이며그를 특별히 지목하여 개원 감사기도를 시킨 까닭이다이승만이 공포한 정읍선언의 과도정부로서 궁극적 목표가 공산당 추방남북통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이승만은 대한민국이 하나님이 세운나라임을 세계만방에 증거하려는 것이며따라서 남북통일도 기독교를 부정하는 악마’ 공산세력을 대한민국 기독교의 힘으로 추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통령 취임사도건국 기념사도 하나님께 맹서

    헌법 제정이 끝나자 717일 공포하고사흘후 20일 국회의원들의 간접선거에서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에 선출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24일 취임식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여러번 죽었던 이 몸이 하나님의 은혜와 동포의 애호로 지금까지 살아있다가...”
    또한 대통령 취임선서도 하나님에게 서약하였으며, 815일 정부수립 건국선포식에서 건국비전 실천과 국민에 대한 약속도 하나님에게 맹서하고 있다.

  • ▲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건국선포식.
    ▲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건국선포식.

     기독교 입국론과 대한민국 건국

    이승만에게 대한민국 건국은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달리 깊은 인식의 격차를 가진다.

    그 이유는 다음에서 찾아진다.

    24세때 한성감옥에서 회심(回心)한 뒤 기독교 입국론(立國論)’을 부르짖다.

    미국 유학 5년간 미국교회와 기독교단체를 순방하며 대한독립 지원을 호소하다.

    프린스턴대 박사학위 취득후 귀국, YMCA 학감으로 전국교회에 기독청년회 조직.

    망명후 하와이8()는 조선8()“라며 기독교공화국‘ 비전을 펼치는 건국실습.

    3.1운동시 기독교 정신에 따른 비폭력 투쟁을 관철, 33인중 기독교16명이 주도.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 되자 아시아 최초의 기독교국 수립을 미국에 선언하다.

    레닌의 공산화 공작에 맞서 공산주의는 인간의 적임을 갈파한 첫 반공논문 발표.

    [JAPAN INSIDE-OUT] 출간기독교강대국 미국이 우상숭배 신정(神政)국가 일본을 선제공격하라고 촉구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예고하여 미국인들이 예언자로 환호하다. 

    상세설명을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20대부터 70대까지 무려 반세기동안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독립운동을 벌였던 이승만 박사가 마침내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이제 그는 평생 갈고닦은 기독교입국론의 꿈을 실천할 때가 온 것이다.

  • ▲ 이승만 대통령이 남긴 휘호들. 위로부터 '민위방본=국민이 나라의 근본이다' '통일최선=통일이 가장 먼저다' 오른쪽에 '무적 해병' (왼쪽 아래는 이승만 싸인 '만').
    ▲ 이승만 대통령이 남긴 휘호들. 위로부터 '민위방본=국민이 나라의 근본이다' '통일최선=통일이 가장 먼저다' 오른쪽에 '무적 해병' (왼쪽 아래는 이승만 싸인 '만').

    이승만 없었다면 대한민국 없다” ?

     우리는 흔히 이승만 없었다면 대한민국 없다는 말을 인용하곤한다.
    비유하자면성공확률 5,0001이라는 인천상륙작전을 맥아더의 반전전술로 성공시켰듯이 대한민국 건국이야말로 정글 속의 바늘 찾기였을 때 이승만이 끝내 성공시켰던 것이다.

    무슨 신통술이라도 부렸는가아니다평소지론대로 밀고나간 결과이다.
    정읍에서 이승만 박사가 쏘아올린 통일독립국가의 꿈정읍선언이 이승만의 과감한 유엔외교를 통하여 유엔결의안으로 변하고사상 최초의 유엔감시로 총선을 실시, 5.10총선을 국제적 법통을 확보한 선거로 만들었던 것이다.

    신생국이 탄생부터 국제적 법통을 확보할 수 있는 비결그래서 이승만인 것이다.
    유엔창설 때부터 유엔가입을 목표 삼은 이승만 국제법박사의 글로벌 전략 그것이다.

    미소공위가 결렬된 후 한국문제를 유엔에 상정하러 간다했을 때 성공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수많은 장애와 고난을 넘고 넘어 때를 기다리고 기다려 결국 목표를 달성하고야 만다인간 이승만은 무엇보다 실패에 좌절과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가 33년간 쓴 일기 ‘Syngman Rhee’s Log Book’에는 고통과 절망에 대한 기록은 단 한줄도 찾기 힘들다어린 7대독자가 전염병에 숨졌을 때도 일기엔 슬프다’ 한마디뿐이다.

    왜 그랬을까그의 남다른 초지일관(初志一貫)의 비결은 무엇이며 그 끈기와 인내불굴의 신념과 용기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샘솟는 것인가.

    연구자들은 이승만 특유의 명석한 두뇌와 타고난 체력을 들기도 하지만정답은 그것과 융합된 개신교 신앙’ 그것이다필자는 그동안 여러번 지적해 왔다.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를 논할 때 그의 기독교신앙을 빼놓고는 올바른 평가란 불가능하다.“ 그 배경을 엿보자.

  • ▲ 종신 죄수 이승만, 24세부터 29세까지 5년7개월동안 한성감옥에서 복역, 1904년 8월 사면 석방된다.
    ▲ 종신 죄수 이승만, 24세부터 29세까지 5년7개월동안 한성감옥에서 복역, 1904년 8월 사면 석방된다.

    ■ 이승만과 기독교 십자가 신앙

     성령과 회심(回心

    24세 청년 이승만이 한성감옥에서 성령(聖靈:holy spirit)을 받은 이야기는 유명하다.

    배재학당 졸업후 맹렬히 펼친 계몽운동과 왕정개혁을 위한 입헌군주론을 밀어붙여 고종황제를 굴복시킨 이승만은 23세 국회의원(중추원의원)이 되자 개화당 집권론을 펼치다가 반역죄로 투옥되고 만다.

    1899년 초 겨울한파에 얼어붙은 감옥 흙바닥에서 이승만은 날마다 혹독한 고문을 받는다.
    사형수 이승만은 두 발에 차꼬(:형구)가 채워지고 두 팔과 손은 뒤로 뒤로 밧줄로 뒤로 묶이고 목에는 크고 무거운 긴 나무 칼이 씌워진 채로 매일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한다.
    두 무릎과 다리 사이에 주릿대를 끼워 두 형리가 살점이 떨어지도록 힘껏 비틀고세모난 대나무 칼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비틀기도 했으며 엎어놓고 몽둥이로 비명이 사그라들 때까지 마구 때린다. ”어느 날에나 죽이는고...“ 견딜수 없는 고통을 매일 당하면서 이승만은 목숨을 포기하였다
    어느날 생과 사를 넘나드는 순간저도모르게 기도가 터졌다.

    주여저의 영혼을 구하소서주여이 나라를 구하소서

    그러자 금방 감방이 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고나의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평안이 깃들면서 나는 온전히 변한 사람이 되었다그리고는 선교사들과 그들의 종교에 대하여 지녔던 증오와 불긴감이 눈처럼 사라졌다나는 그들이 자기네가 매우 값지게 여기는 것을 우리에게 주려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유영익 [젊은 날의 이승만연세대출판부, 2002)

    성경이 말하는 성령 축복받는 순간즉 개신교의 회심(回心)이다.

  • 예수를 따라 목숨을 버리기까지“ 순교자신앙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극한의 고통속에서 생명을 포기한 순간 찾아든 생명 구원의 희열은 아픔보다 크고 초능력자의 축복까지 부여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성령 받는 체험도 여러가지, 개인마다 다르지만 이승만의 경우 이렇게 고백한다.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목숨을 버리심으로써 죄를 씻어주고 복을 받게 하셨으니...
    이 은혜는 다른 것으로 갚을 수는 없고다만 예수의 뒤를 따라 목숨을 버리기까지 일하는 것 뿐이다.
    ..
    우리는 이 교(=예수교)로써 만사의 근원을 삼아 각각 나의 일을 잊어버리고 남을 위하야 일하는 자가 되어야
    나라를 한마음으로 받들어 영국 미국과 동등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천국에 가서 다 같이 만납세다” (이승만 지음 [독립정신비봉츨판다, 217). 

    예수의 뒤를 따라 목숨을 버리기까지란 말대로그리스도와 같이 생명을 바치겠다는 십자가 신앙’ 곧 순교자 신앙을 말하고 있다그 남을 위한 무한봉사가 이승만에게는 3천만 한민족을 위해 대한독립을 찾는 독립운동이요미국같은 나라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일이었다그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비전과 기독교적 실천방법론까지 상세히 정리한 책이 [독립정신]이다.

    특히 말미에 붙인 독립주의의 긴요한 조목실천6대강령이 그것인데이는 곧 죄수 이승만이 꼼꼼히 그려놓은 대한민국 건국설계도라 할만하다그는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독립정신] 6대강령에 따라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자신이 꿈꾼 나라 모습대로 대한민국을 세우고 경영했기 때문이다.

  • ▲ 죄수북 차림 20대 이승만과 미국프린스턴대 박사학위 받은 35세 이승만.
    ▲ 죄수북 차림 20대 이승만과 미국프린스턴대 박사학위 받은 35세 이승만.

    기독교 입국론(立國論)

    회심 즉시 죄수들을 상대로 무한봉사에 들어간 이승만은 성경공부와 감옥 예배로 간수들과 감옥장까지 기독교로 개종시켜감옥학교감옥도서실을 설치자신도 공부에 돌입한다동시에 백성계몽과 왕정개혁을 위한 논설을 몰래 써서 자신이 창간한 일간지 [제국신문]에 게재하였다확인되는 것만 수백편 논설은 그야말로 모든분야에 걸친 국가 개조론이라 할만하다.

    그 목적을 이루기위한 방법론으로서 이승만은 기독교 입국론을 전개하고 있다. 

    지금 예수교 받드는 나라들이 문명부강 태평안락하다는 것은 그 나라 안에 있는 악한 사람이 다른 나라보다 적어서 그런 것이 아니오그 나라 안에 악한 것을 몰아내는 일꾼이 다른 나라보다 많은 까닭이라선한 일이 악한 일을 이기는 나라는 선한 자의 천국이오 악한 자의 지옥이라 하겠고악한 일이 선한 일을 이기는 나라는 악한 자의 천당이오 선한 자의 지옥이라.
    예수교 외에는 더 좋은 씨도 없고 더 좋은 밭도 없으니 남을 내몸같이 사랑하는 교회에 남의 죄를 대신하여 목숨을 버리는 은혜로써 씨를 뿌려 먼저 내 마음에 뿌리를 박고 연후에 남에게 미치게 할진대사탄을 치는 강한 군사가 점점 많아지고 어린 양의 무리를 인도하는 목자가 차차 많이 생겨 서로 사랑으로 보호하는 중에서 합하는 힘이 부지 중 자라리니그런 후에야 능히 몸을 구원하며 집안을 보전하며 나라를 회복하여 오늘날에 살 수 없는 인간이 차차 천국같이 되어 가지고 영원한 영혼의 구원을 함께 얻을지라.” (‘예수교가 대한 장래의 기초’[신학월보]19038월호)

    그리하여 청년 이승만은 기독교입국론의 목표를 미국-영국과 동등한 나라를 만드는 것으로 정하고 평생 이를 위해 독립운동가로, 정치외교가로목회자로교육자로 국민교육에 헌신했던 것이다.

    특기할 점은 기독교입국론은 Nation-Building용일뿐 기독교를 국교로 지정하지 않았고전통적 유교와 불교도 적극 진흥하여 국민들의 종교의 자유를 육성했다는 점이다. 

    노예 해방 거짓말 청소

    기독교입국론의 출발은 계급사회 노예백성의 해방이었다.
    아니 왕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정신해방‘ 곧 썩어버린 성리학으로부터의 영혼세탁이다.

    정치제도는 백성의 수준에 달려있다

    백성의 마음(精神)이 먼저 자유해야 한다

    이승만은 미국 링컨의 유명한 연설 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국민의 정부를 설파한다.
    양반과 천민으로 묶여있는 500년 고정관념의 사슬을 끊고 마음과 영혼과 정신의 해방를 부르짖는다
    특히 거짓말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폐습에 대하여 설명한다.

    거짓으로 집안을 다스리고 거짓으로 친구와 교제하고 거짓으로 나라를 다스리니...
    세계에서는 대한(大韓)과 청국(淸國)을 거짓말 챔피언이라 하여 외교사절도 받아들이지 않을 지경이라...”

    이처럼 썩어문드러진 폐습을 깨끗이 청소할 특효약은 오직 정의와 진리의 예수교로 교화(敎化)시키는 것 뿐이라했다.

  • ▲ 종신죄수 이승만의 모습(왼쪽). 그가 감옥에서 만난 루터, 칼뱅, 웨슬레 (왼쪽부터). 기독교 회심을 체험한 이승만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부터 장로교 칼뱅의 개혁주의, 감리교 창시자 웨슬레까지 신학연구에 돌입한다.
    ▲ 종신죄수 이승만의 모습(왼쪽). 그가 감옥에서 만난 루터, 칼뱅, 웨슬레 (왼쪽부터). 기독교 회심을 체험한 이승만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부터 장로교 칼뱅의 개혁주의, 감리교 창시자 웨슬레까지 신학연구에 돌입한다.

    루터-칼뱅-웨슬레와의 만남

    종신죄수 이승만은 또 하나의 새로운 자유를 발견혁명 에너지로 무장한다.

    종교개혁의 원조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를 공부하고
    그에 이은 장 칼뱅(Jean Calvin,1509~1564)의 개혁교회 정신
    요한 웨슬레(John Wesley, 1703~1791)의 자유의지와 구원신학 등을 잇따라 접하면서
    개신교가 일으킨 자유의 혁명 세계에 빠져든다
    .

    ”...400년 전에 말틴 루터가 신약성경을 누구나 자유롭게 읽고 기도할 수 있게 만들며 프로테스탄트를 온전히 세워 200년 동안을 개신교가 정치제도를 개혁하기에 이르러 영국프랑스미국의 대혁명이 일어났고 오늘날 구미각국의 동등한 자유를 누리는 모든 인간행복이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그러므로 루터를 근대문명의 시조로 칭함이며 그 능력은 곧 예수의 능력에서 온 것이다그리하여 로마교회에서는 지금까지도 신약성경 공부를 허락하지 않으며 러시아 같은 전제국들도 이를 금하니이는 모두 신약성경에 자유평등 사상이 충만한 까닭이다“ (이승만 [한국교회 핍박청미디어, 2008)

    선지적 사도’(先知的 使徒)의 탄생

    이승만의 독립투쟁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예언자다” 감탄하고 만다.

    예컨대임시정부 초대대통령 시절 소련 레닌의 공산화 공작에 시달리면서 1923년 쓴 논문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을 보자난삽하기 짝이 없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을 A4용지로 치면 한두장 분량의 글로 쾌도난마처럼 그 본질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당시 전세계가 열광하는 공산주의에 대하여 세계최초의 공산주의 비판 논문이다,. 이승만대통령이 읽자마자 그 정답을 내놓은 것한마디로 공산주의는 진리와 정의의 적이므로 멸망한다였다또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예언했다해서 베스트셀러가 된 [Japan InsideOut]이 그러하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를 남보다 먼저 보고 먼저 알고 먼저 행하는 능력!
     성경은 선지자‘ ’예언자와 함께 선지적 사도‘(先知的使徒:Prophetic Apostl)라 칭한다

    실제로 이승만의 18년 개인고문 올리버(Robert T. Oliver) 시라큐스대학 교수는 말한다.

    훗날의 역사는 이승만의 예견들이 대부분 맞았고 그 정당성을 입증하고도 남았다.”

    그리하여 올리버는 [이승만신화에 가린 인물/Syngman Rhee:The Man behind Myth]란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그는 이 책에서 한국인들에게 호소한다.

    한국이 낳은 위대한 세기의 지도자를 왜 한국인들만 모르는가?” 

  • ▲ 전체주의 진영과 자유진영의 냉전을 예고한 책 [JAPAN INSIDE-OUT] 영문판 표지와, 번역판 표지. 이 영문저서에서 이승만박사는 미국의 평화주의를 비판하고 우상화신권국가 일본을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일본군이 미국을 침략할 것이라고 '진주만기습'을 예견, 뒷날 예언서로 베스트셀러가 된다.
    ▲ 전체주의 진영과 자유진영의 냉전을 예고한 책 [JAPAN INSIDE-OUT] 영문판 표지와, 번역판 표지. 이 영문저서에서 이승만박사는 미국의 평화주의를 비판하고 우상화신권국가 일본을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일본군이 미국을 침략할 것이라고 '진주만기습'을 예견, 뒷날 예언서로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리스도적 세계관과 자유철학

    이승만이 선지적 사도로서 보여준 그리스도적 세계관을 엿 볼 수 있는 한 대목을 보자.

    지금 여러분이 한국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은 여러분의 조국과 가족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왜냐하면 만약 한국 땅에서 자유가 사라진다면 여러분 조국의 자유가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이 춥고도 험한 이국 땅에서 피를 흘리는 여러분은 자유를 지키는 자유의 십자군입니다...”

    이것은 1951년 중공군의 참전으로 6.25전쟁이 격화되었을 때 유엔군에 참여한 각국 군부대들을 쉴 새 없이 순방하며 위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이다.

    유엔군은 자유의 십자군이란 규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그리스도적 자유철학을 알게하고공산군과의 전쟁이 인류의 자유 수호에 있다는 세계관과 전략 포인트를 보여준다.

    이것은 일찍이 동서이념대결즉 냉전시대의 도래를 경고한 이승만대통령이 미국에게 한미동맹 체결을 촉구하며 한미동맹이 자유세계의 보루라는 핵심에 직결되고 있다그리스도적 세계관으로 지구를 내려다보면 지정학(地政學)의 세계적 전략개념이 한눈에 들어온 것으로서이승만의 반공자유론은 칸트(Immanuel Kant)의 영구평화론과 엉기는 혈류(血流)가 일어나 인류의 보편적 자유평화론이 생성된다. (김학은 [이승만과 마사리크북앤피플,2013).

  • ▲ 조선왕국 최초이자 유일한 근대적 사상서 [독립정신] 표지들.
    ▲ 조선왕국 최초이자 유일한 근대적 사상서 [독립정신] 표지들.
    조선왕국 최초의 근대사상서=이승만이 29세때 자신의 사상을 종합정리한 [독립정신]을 연구한 학자들은 이 책에서 존 로크(John Locke)나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의 자유사회계약론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과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자유민주주의론을 망라하는 정치경제사회사상사의 핵심요소들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기록왕으로 칭할만큼 온갖 기록을 남긴 이승만의 옥중 독서목록엔 이런 서양학자들의 저서들은 안보인다그러므로 이승만의 사상 스펙트럼이 위에 거명한 학자들의 그것들과 맥을 같이 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여하간에 [독립정신]의 학술적 면모는 구한말 뒤늦게나마 나타난 조선왕국 최초의 근대적 사상서로 평가할만 하다더구나 주자학에 통달한 동양적 선비사상에 서구적 논리가 융합됨으로써 그것은 독보적이다.
  • ▲ 도쿄에서 팔을 낀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
    ▲ 도쿄에서 팔을 낀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

    ■ 건국혁명’ 12

     대한민국의 건국은 미국 독립혁명과 비견되는 자유의 혁명이다
    건국80년에 이름뿐인 혁명도 많지만 이승만의 건국혁명만이 그 본질과 스케일과 결과에서 세계혁명사에 걸맞는 진정한 혁명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 (이인호 [대한민국 건국은 혁명이었다세이지, 2024)

    성공한 건국혁명은 그러나 건국 자체만으로 혁명이 될 수는 없다그 혁명을 완성시키려는 제2,3의 건국혁명들의 축적이 이뤄낸 총체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중에도 건국체제를 완성하려는 한미동맹 체결, 대학 설치, 국군현대화 등 여러가지 혁명적 정책들을 과감하게 끈질기게 밀어붙어 성공시켰다. (인보길 [이승만 현대사:위대한 3기파랑, 2020)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통치12년은 건국혁명의 완성을 위한 Nation-Building의 격동과 진통의 시대였다
    이 12년간이야말로 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국가생존마저 부지할 수 없었던 조건이 바로 한반도의 타고난 지정학적 숙명이다.
    스탈린의 6.25침략 때문이다공산주의를 알고 미국을 아는 이승만의 용병술이 구세주였다.

    12년을 관통하는 이승만의 통치전략은 그 흐름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구한말 계몽가 이승만의 꿈은 백성이 주인 되는 현대적 국민 국가’ 형성이다.

    둘째외침을 제압할 반공주의로써 분단 해소와 자유통일 달성을 위한 반공투쟁이다.

    국민국가 형성의 조건과 목표(요약)

    국민의 민주시민 지직자유권 고양을 위한 남녀차별-신분차별 철폐와 의무교육에 집중 투자.

    국민의 경제적 자유권 보당을 위한 농지개혁사유재산권 극대화통제경제 최소화.

    정치적 자유권을 위한 선거권-피선거권 전면 부여친일파에 정치적자유권 박탈 법제화..

    국가안보를 위한 한미동맹 결성자유세계와 자유통상 확대반공교육 강화기타.

    국가정신과 국민정신의 연단그 identify 능력을 통하여 국가정통성과 국민정체성 확립.

  • ★ 대통령 직선제 개헌 <부산정치파동야당의 독재자론 첫 등장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국가 건설의 기본요소로서 헌법 제1조의 주권재민(主權在民)’ 정신을 명실공히 정립하려 했던 사건이 부산정치파동이다즉 대통령선거를 국회의원의 간접선거제:간선제(間選制)로 규정한 조항을 직접선거제:직선제(直選制)로 개정하려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이보다 먼저 야당은 건국 직후부터 간선제를 고집하며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추진했던 상황이다파동은 왜 생겼나이승만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왜 계엄령을 선포했나미국이 휴전을 결사반대하는 이승만 대통령을 교체하려고국회 간선제를 이용하여 미국말 잘 듣는 야당지도자를 당선시키려 야당과 공모했기 때문이다. 

    유엔군과 중공군이 한창 전쟁하던 1952년 여름 526일부터 74일까지 이어진 사태를 부산청치파동 40이라 부른다이때 처음 이승만은 독재자란 말이 나왔다바로 야당 대표 인촌(仁村김성수(金性洙,1891~1955)였다.

    그것도 계엄령후 침묵하는 야당을 보다못한 미국 무초(John J. Muccio, 1900~1989)대사가 규탄대회라도 열라고 부추겨서그제야 비밀집회를 연 김성수가 결의문에서 쓴 말이다간선제를 직선제로 변경하는 것이 헌정유린(憲政蹂躪)“이란 논리공감 얻기 힘든 주장이었다.
    국민직접투표 대통령 선출이라는 직선제를 거부하고 간선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수구적 논리로서 오히려 국민의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

    이승만 대통령은 연일 직선제 개헌을 주창하며 국민의 기본권을 외면하고 개헌을 거부하는 국회의원은 미국이나 섬기는 사대주의자라 비난하며 지방의회 의원들을 동원국민캠페인을 벌였다이승만은 미국과도 싸운다. ”미국은 내정간섭 말라야당은 사대주의 청산하라우리 운명은 국민손으로 결정한다.“ 직선제지지 국민들은 국민 배신 국회를 해산하라‘ 시위한다.
    이승만은 헌법에 국회해산권이 대통령에게 없으니 안된다고 말렸다.

    ▶이승만 대통령이 전쟁중에 정쟁하는 이유

    이승만이 전쟁중에 미국과 싸우며 직선제개헌을 강행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미국에 순종하는 대통령이 등장하여 통일 없는 휴전에 순응하는 분단영구화 사태 방지.

    신판 사대주의 미국의 내정간섭 원천 봉쇄, 500년 묵은 사대병을 국민정신에서 청소.

    국민의 자주역량 극대화공산세력을 국민의 힘으로 물리치는 자주국방정신 고양 등이다.

    이처럼 적을 막아주는 미국과 대결까지 한 이승만 대통령의 직선제강행 파동은 바로 극민국가‘ 형성을 위해서였다동시에 미국과 대등한 국가란 인식을 국내외에 심어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그의 이런 자주권과시 행위는 이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짐을 볼 수 있다.

    미국은 한사코 휴전을 반대하며 단독북진을 외치는 이승만을 제거하려 군사작전까지 짰다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미국이 후퇴한다. ”이승만을 대신할 지도자가 없다는 결론에서다.

    결국 미국이 손을 떼자 야당이 굴복하여 직선제 개헌안이 통과된다이른바 발췌개헌이다
    건국후 최초의 직선대통령에 선출된 이승만은 휴전반대 투쟁을 본격화하였다.

    야당과 야당대변지 언론은 이때부터 이승만 독재“ 카드를 툭하면 꺼내 국민을 선동했다.

    이렇게 10년간 난타전을 벌인 끝에 이승만대통령이 4.19로 물러나자 드디어 민주당이 집권한다. ”못 살겠다갈아보자!“며 집권을 벼르던 민주당은 데모천국이 되자 속수무책파벌끼리 감투나눠먹기 싸움만 하다가 집권 10개월만에 박정희 쿠데타 앞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승만 시대와 박정희 시대 사이 반짝했던 해프닝이 민주당 정권이었다.

  • ▲ 1954년 미국공식방문시 양원합동 의회에서 연설하는 이승만 대통령. 참석자들이 30여회 기립박수를 보낼만큼 명연설이었다.
    ▲ 1954년 미국공식방문시 양원합동 의회에서 연설하는 이승만 대통령. 참석자들이 30여회 기립박수를 보낼만큼 명연설이었다.

    ★ 순교자적 통일 투쟁’...한미동맹-건국자금 쟁취

     이승만의 기독교적 신념과 용기가 쟁취한 것이 숙원의 한미동맹이다.

    평생의 적이 일으킨 6.25를 남북통일로 뒤집으려는 이승만은 휴전 결사반대’ 365일 캠페인을 펼쳤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민족분단이 고착될 위험성이 뻔하기 빼문이다.

    통일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대통령도 여고생들도 상이용사들도 국민들도 몸부림쳤다.
    미국이 강요하는 일방적 휴전은 3천만 민족에게 사형 선고다
    우리 운명은 우리가 해결한다단독북진 통일을 가로막지 말라

    미국은 이승만을 제거하려했다그러나 그를 대체할 지도자가 없으므로 포기한다.

    반공포로 석방 한미동맹 체결 대규모 군사경제원조 확보.

    1905년 미국유학시절부터 목표였던 한미동맹을 미국이 거절할 때 이승만은 칼을 뽑는다.

    내가 너희에게 은총을 베풀려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노라“ (마태복음 10). 이승만이 즐겨 인용하는 성경구절이다. 

    이승만의 칼은 반공포로 석방그리고 기독교 국가 미국의 양심을 찌르는 징벌의 칼이다.

    미국은 한국을 세 번 배신했다또 배신하려느냐?“

    배신ⓛ 태프트-가쓰라 밀약배신얄타 밀약배신⓷ 일방적 38선 설정이 그것이다.

    반공포로 석방에 펄펄 뛰던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무릎을 꿇었다한미동맹이 탄생한다.

    한미동맹은 배신의 보상일뿐휴전협정과 별개문제다“ 이승만은 휴전협정에 서명을 거부하였다
    그리고선 한미동맹의 비준까지 미루면서 중국공산당을 원자탄으로 말살하라“ 압박한다.

    기회는 지금뿐이다중공을 살려두면 미국에 평화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미국 양원합동의회에서 행한 연설이다동시에 미국 언론들과 주요지역을 돌면서 외치고 외친다. ”휴전은 무효다당장 중공을 격멸하지 않으면 미국민은 또 다시 피를 흘릴 것이다

    백악관은 지갑을 열었다그 해부터 한국정부는 매년 거액의 군사경제원조를 받아 군사력과 자본주의 시장경제 육성에 썼다이승만이 물러날 때까지 무려 30억달러가 넘었고박정희때도 원조는 계속되었다.

  • ▲ 1954년 공식방미중 이승만 대통령이 뉴욕시장과 함께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영웅행진'을 벌이고 있다.
    ▲ 1954년 공식방미중 이승만 대통령이 뉴욕시장과 함께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영웅행진'을 벌이고 있다.

    한국인은 울면서 구걸하지 않는다.

         미국 원조는 자유민주주의 수호자금 

    그리스도적 세계관의 선지적 사도’ 이승만은 세계를 넘나드는 민주주의 목회자요 자유의 전도사였다
    특히 미국 자금을 조달받아 Nation-Building 자금으로 써야하는 입장에서 그 주고받는 명분을 기독교적 이념적 고품격으로 업그레이드함으로써 대한민국이 굳건한 기초를 닦을 때까지” 미국민의 동의를 확보하려 노력하였다그 예를 보자.

    장면-1

    휴전직후 미국 공식방문시 한국원조를 주도하는 한미재단(The American-Korean Foundation) 만찬에서 그 진가를 실감있게 보여준다이 재단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주도하여 자기 동생을 이사장으로 앉혀 모금액수를 키우려는 의도에서 설립한 것이었다이승만은 돈 주는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유려한 영어구사로 심장을 파고들었다. 

    “...미국이 제공하는 돈상품식량은 엄청나게 중요합니다그러나 나는 한미재단과 다른 기관들이 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 맺어주는 정신적 유대가 더욱 위대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한국은 미국보다 작고 부족한 나라이지만 자유와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미국과 똑같은 신념과 정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신문기자들이 방미에 만족하느냐고 내게 물었습니다나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더 많은 원조더 많은 그 무엇을 요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국민은 울면서 도움을 구걸하지 않습니다우리는 눈물을 감추고 조용한 결의와 용감한 미소로써 기아와 파괴를 이겨내는 싸움을 시작하였습니다우리는 구걸하지 않으며앞으로도 구걸하지 않을 것입니다우리는 친구들이 제공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감사하고 앞으로도 감사할 것입니다두 나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노력에 백만번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자유세계의 적과 싸우는 동지 한미 국민간의 유대감을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공감대로 승화시키는 이승만수혜자 한국인의 자존심과 미국인의 원조 당위성을 환기시키는 논리가 돋보인다.

  • 이런 원조 안받겠다”...미국의 일본중심‘ 철회 성공

     장면-2

    방미시 대규모 군사경제원조에 합의하고 귀국한 이승만은 또 다시 분통을 터트린다.
    미국이 어마어마한 원조 조건을 추가로 제시했기 때문이다긴 이야기를 줄여서 보자.

    이승만의 단독북진 통일’ 정책을 포기해야 원조를 주겠다.

    원조자금의 일정액으로 반드시 일본에서 물품을 구입해야 한다.

    한국군을 현대화 시켜주므로 주한미군 4개사단은 철수하겠다.

    환율을 고정시키지 말고 시세에 따른 변동환율로 바꿔야 한다.

    이와같은 4개조건에 불응하면 대한원조정책을 재검토하겠다는 으름장도 붙었다.

    대한민국의 생명줄을 볼모로 북진통일을 고집하는 이승만을 길들이려는 노림수다.

    이승만 대통령은 즉각 협상을 중단시키고 길고 긴 반박성명을 계속 발표한다.
    유엔의 대한원조자금 25천만불 중 16천만불은 기계류를 일본서 구입하는데 충당한다고 하며한국에 찬조로 들어오는 금액중 그 반이상은 일본에서 물자 구입에 충당한 실정이니,
    한국의 경제 부흥을 위한 것이 일본의 경제 부흥을 초래한 결과가 되고우리 경제부흥 없이는 정치상 독립을 얻었다 하더라도 경제상 노예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니 자급자족에 일심 협력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1954년 921일자)

    “...미국은 4년전쟁에 싸움을 한 것은 1년만 하였으며 그 다음에는 이길 수 있는 것도 이기지 못하게 하며유엔군이 싸움을 아니하면서 우리만이라도 싸우겠다는 것을 못 하게 하고,
    평화로 통일한다 하여 회담을 열어서 판문점으로 제네바로 돌아다니다가 필경은 다 실패되고 ...
     
    미국이 별안간 협의도 없이 군대 3분의 2를 걷어간다 하니우리 청년으로 터진 구멍을 채워놓겠다는 것도 거부하며 조금도 걱정 말라 하니이것은 4년 전(6.25직전)에 하던 것을 또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우리는 우의를 표하며 잘 가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또 우리에게 권면하는 말은일본과 협동해야 된다며 협조치 않으면 원조를 안준다는 것이 한 조건에 들어있다
    우리는 원조를 못 받아서 우리가 다 굶는 한이 있더라도 이대로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 1954.10.1.)

    한국을 위한 원조를 해야 한다안그러면 이런 원조는 받을 수 없다
     연일 맹공을 퍼붓는 이승만에게 미국은 환율인상을 압박했지만 이승만은 미군에게 제공하던 달러화도 끊어버린다
    이러다가 원조자금 확보는커녕 한미동맹 비준도 물건너갈 판이 되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아이젠하워가 또 이승만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협상전쟁은 끝난다.

    마침내 분규는 4개월 넘는 137일만에 해결되었다. 11월 17일 오후 410분 한미회담 회의록에 조인교환함으로써 7억달러 군경원조와 환율문제 등을 합의한 한미경제협약이 발효되고 양측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미국이 요구한 2541의 환율도 이승만이 주장한 원래의 1801로 고정되었고미국이 원조자금으로 일본에서 물품을 구입하라는 강요도 이승만이 역설한 한국내 구입으로 합의 되었다.

    미국은 북침 포기’ 명문화나 환율 등에서 양보했지만 한국군을 유엔군(미군)의 작전권 안에 묶어둘 수 있게 된 것으로 안도한다이승만 대통령의 대미외교는 도 한번 개가를 올렸다.

    한미동맹 조약도 그제서야 동시에 발효된다이승만이 즉시 비준서를 교환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승만표 외교전략그토록 갈구하던 한미동맹마저 조약체결 13개월간 틀어쥐고 미국의 군사-경제 지원책을 이승만 페이스로 바꿔놓고 나서야 비준서를 건네주었던 것이다.

  • ▲ 1960년 4월 대학생들이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며 '민주주의 사수하자'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1960년 4월 대학생들이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며 '민주주의 사수하자'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국민국가의 탄생과 4.19

     필자도 4.19세대에 속한다. ”부정선거 다시 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연일 데모했다.
    과연 4.19란 무엇인가의거야혁명이냐그 역사적 의미를 깨닫기까지 수십년이 걸렸다.
    한마디로 4.19는 이승만 대통령이 10년 공들여 키워놓은 국민의 자유민주의식이 민주주의 위기를 자각하자 일어난 국민정신의 거대한 폭발이었다.

    다시 말하면 4.19는 이승만 평생의 목표, ‘국민국가” 건설이 성공했다는 반증이었던 것이다 

    스무살 이승만이 배재학당에 들어가 자유의 신대륙을 발견한 순간 작정했던 결심은 무지한 노예 백성을 계몽시켜 미국-영국과 동등한 근대적 국민국가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였다.
    그 꿈이 이루어졌음을 확인시켜준 사건이 바로 그를 하야시킨 4.19 학생의거!

    혹자는 토크빌 효과(Tocqueville Effect)라며 자기 성공의 실패‘ 운운하지만 아니다대통령이 학생들을 열심히 키워놓았더니 대통령을 쫓아냈다는 비유는 모멸적이다사건의 표피만 보고 국민의 독재자 추방이라 단정하는데 역사의 내면을 모르는 겉핥기 소리다.
    사실은 사건의 외피라도 제대로 파악한 지식인이라면 그런 평가는 나올 수가 없다.

    첫째학생들의 요구는 부정선거 다시 하라민주주의 살리자였다.
    이승만에게 배운 민주주의를 어겼으니 수정하라는 요구민주제도 확립을 말한다.

    둘째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은 사퇴해야 한다며 하야를 결단했다.
    이것이다. ”부정을 보고 일어서는 똑똑한 국민이 있으니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죽어도 여한이 없는 이것“ 똑똑한 국민의 탄생즉 자신의 평생소원이 달성된 현장을 목격한 이승만은 한없이 기쁘고도 한없이 아프다그는 자신의 자유당에 속았기 때문이다.

    부정을 왜 해어떻게 경찰이 국민들에게 총을 쏠 수 있어?
    내가 맞을 총알을 학생들이 맞은 거야창피해내가 창피해...
    장하다장해...부정을 보고 일어서야 젊은이지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그만두면 젊은이들이 더 안다치겠지사퇴성명서를 써라

    서울대 병원 가서 문병한 청년들 손을 잡아주며 눈물을 흘린 이승만측근 각료 김정렬과 프란체스카 여사가 대통령의 심경을 증언으로 남겨놓았다.

    내정을 정부에 맡기고 대미외교와 남북통일만 챙겼던 이승만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수 없었던 국내외 상황을 원망했을까. 1956년 제3대 대통령 출마를 앞두었을 때 이런 말을 남겼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처럼 나도 두 번만 하고 물러나기를 소원했었다...
    명예로운 퇴진의 기회를 놓칠 수 밖에 없었던 조국의 상황과 자책의 통한을 삼키며 뒤늦게 후계자로 허정(許政,1896~1988)를 지명한 이승만은 북한의 재침을 막아야하며 자유민주공화국을 잘 지켜달라며 경무대를 떠난다
    그의 자진하야는 자신이 평생걸려 구축한 자유민주헌법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마지막 민주화의 결단이었던 것이다.
    4.19
    는 국민국가의 탄생이다. 

    독립운동 시절 이승만 박사는 독자적 헌법까지 만들어 놓았었다백성이 주인이 되는 국민국가 형성을 위한 구상들을 33개항이나 담은 것이었다.
    국가주도의 국민교육 집중 경자유전(耕者有田농지개혁 남녀 차별없는 국민의 자유선거권피선거권 시장경제 도입과 자유통상 무역입국(貿易立國자주국방과 한미동맹 등인데해방후 미군정시에도 과도정부 헌법을 만들자며 제시 주창하였으며, 5.10총선수 제헌 헌법에 대부분 수용되었다. (유영익 [이승만대통령 재평가연세대 출판부, 2006)

    건국후 12년간 Nation-Building Project는 소련-중공-북한의 침략 포탄을 맞아 중단되었으나앞에서 본 이승만의 대미투쟁외교 덕분에 장기원조를 확보자립의 터전을 닦았다.

    그가 쏟아낸 수많은 담화성명연설들은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강의였다
    전쟁 중에도 교육투자는 계속되었고피난민 천막학교를 돌아보며 학생들을 격려한 그는 인자한 교장의 모습이승만은 교육대통령교육혁명가였다그런 8순 노대통령의 열정이 맺은 열매가 4.19--’국민국가의 기둥 국민교육 성공을 행동으로 증명한 4.19학생 의거는 따라서 이승만의 실패가 아니라 학생과 교장이 함께 일으킨 혁명즉 청년 이승만의 꿈이 60년만에 현실화 된 성공사례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 ▲ 1965년 7월27일 이승만대통령의 장례식날, 서울시민들이 몰려나와 영구행열을 추모하는 모습. 인파는 동작동 국군묘지까지 뒤덮었다.
    ▲ 1965년 7월27일 이승만대통령의 장례식날, 서울시민들이 몰려나와 영구행열을 추모하는 모습. 인파는 동작동 국군묘지까지 뒤덮었다.

    최후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어린양

    통일은 어찌 되느냐이승만이 한바탕 했으면 누가 또 나와서 싸워야지...”

    4.19이후 하와이로 요양간 이승만 대통령이 병상에서 소리치는 말이다양자(養子이인수(李仁秀,1931~2023) 교수가 기억하는 이승만은 숨거두는 날까지 통일병 환자였다고 한다.

    자나깨나 기도와 찬송으로 향수를 달래는 건국대통령은 이런 말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하나님 저는 늙고 지쳤습니다사랑하는 우리 민족을 위해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우리 민족을 하나님께 맡깁니다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게 하소서.”

    기독교 회심이래 임종까지 이승만이 암송한 성경말씀은 이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위대한 거인의 90세 평생마지막 가는 길에 박정희 대통령은 이런 추모사를 올렸다.

    선구적 혁명아 이승만 대통령은 조국근대화의 상징적 존재이며 조국을 위해 최후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 했다인류의 원죄를 뒤집어쓰고 골고다 십자가에 매달린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빗댄 말이승만이 건국대통령으로서 한국인들의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짊어지고 나라를 살리는 제물이 되어 목숨을 바친 일생이라는 뜻이다. 

    매사 남보다 앞서 달려나가는 이승만의 고독한 독주(獨走:혼자달리기)를 스스로 고백한 신앙간증이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4년 8월 공식방미 중에 워싱턴 시내 파운드리 교회(Foundry Methodist Church)에서 자신의 헌신적 국가만들기 일생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결정적 증언이다.

    “I know God will not tell us what we are doing is wrong.
    He is God not only of love but God of righteousness.
    I am not afraid. Let them all criticize me.
    But as long as God does not condemn me, that is all.“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正義)를 따라 행하므로 다들 나를 비난해도 두렵지 않다.
     
    오직 하나님만 나를 책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기독교의 눈으로 본다면이승만은 스스로 자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뒤를 따라 목숨을 버리기까지” 맹세했던 길에서 싸우고 싸우다 쓰러진 순교자로 기록되지 않을까. 

  • ▲ 김인서 목사 지음 [망명노인 이승만박사를 변호함] 표지.
    ▲ 김인서 목사 지음 [망명노인 이승만박사를 변호함] 표지.

    이승만 독트린은 말한다

     이승만의 영혼이 스스로 택한 동작동 국군묘지에 묻히자 세상은 저주의 아우성이다.
    정치적 반대세력 민주당은 물론그 대변자 언론들과 이에 편승한 지식층이 독재자 부관참시(剖棺斬屍)’에 총동원되어 온갖 독설을 쏟아낸다.

    모두 침묵이다자유당세력조차 입을 닫았을 때 딱 한 명의 변호인이 나타난다. 

    이승만 대통령의 4대 공로와 4대 무죄

    4대 공로

    1) 90평생을 조국 독립운동에 국궁진력(鞠躬盡力하다.

    2) 대한민국 건국에 절대한 공로가 있다.

    3) 6.25동란시 적군 격퇴에 절대한 공로가 있다.

    4)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절대한 공로가 있다.

    4대 무죄

    1) 국토 상실죄(喪失罪없다.

    2) 패전죄(敗戰罪없다.

    3) 국체변혁죄)國體變革罪없다.

    4) 항일 구국과 반공 건국에 변절죄(變節罪없다. 

    이것은 한국4대문장가의 한명으로 꼽히는 김인서(金麟瑞,1894~1964) 목사가 1963년에 써놓은 책 첫장에 나오는 항목들이다.
    3.1
    운동시 3년옥살이 했던 독립운동가로서 야당과 지식인언론들이 이승만에게 겹겹이 씌우는 중상모략을 보다 못해 건국대통령의 신원(伸寃)운동을 벌이겠다며 긴 변론을 쓰고서도산계(島山系)와 인촌계(仁村系)의 무차별 인민재판에 대하여 조목조목 촌철살인의 비판을 가한 명문들로 가득 채운 책이다. (김인서 지음이주영 엮음 [망명노인 이승만 박사를 변호함비봉출판사, 2016). 

  •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외치는 이승만 대통령 연설.ⓒ연세대이승만연구원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외치는 이승만 대통령 연설.ⓒ연세대이승만연구원

    혹자는 말한다이승만 대통령이 차선(次善)‘을 선택하였다고아니다모욕하지 말라.
    자유통일의 화신(化身이승만은 강요된 차선‘ 조국의 분단을 한번도 선택한 적이 없다.

    이승만이 말한다. “한줌도 안되는 공산당만 추방하면 2천만 북한동포는 해방 된다

    스탈린은 진작 죽었지만 그만 만든 스탈린체제는 살아있다스탈린이 세운 김일성집단은 이제 핵의 괴물로 변했다그 괴물을 만들어준 또 다른 김구세력들이 날뛰고 있음을 보라.

    독립운동가 이승만 박사가 말했다.
     “
    선과 악이 싸우는 아마겟돈 결전장에 중도란 없다자유냐노예냐죽느냐 사느냐
    2
    차대전서 전체주의와 싸우는 미국인들에게 던진 경고다.

    지금 전체주의 어둠을 뚫고 자유의 십자가를 진 어린 양떼 2030이 부활하고 있다.
    이승만 독트린이 말한다. “싸우라! 5천만 동포여, 5천만 이승만 되어 싸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