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망명33년만에 귀국한 이승만 박사가 10월20일 미군정청(구 총독부) 광장에서 열린 연합군환영대회에서 첫 연설을 하고있다.
    ▲ 망명33년만에 귀국한 이승만 박사가 10월20일 미군정청(구 총독부) 광장에서 열린 연합군환영대회에서 첫 연설을 하고있다.

    충역(忠逆)이 혼합되어 역전되었구나
    해방 두달 지나서야 1016일 돌아온 이승만 박사의 귀국 소감이다.

    망명 33년 만에 꿈에 그리던 조국에 와보니, 충신(애국자)보다 역적(공산당)의 숫자가 더 많아 뒤집혀있다는 말이다. 왜 안그렇겠는가. 북한은 소련이 점령하고 단독정권수립을 준비중이고 남한은 박헌영의 공산당이 다 차지하였다.
    이게 바로 이승만이 폭로한 바 미국이 소련에게 한반도를 팔아먹은 얄타밀약의 현실화 그것이다. 미국무부가 자신의 귀국을 두 달이나 방해한 이유가 이것이었단 말인가?
    이럴 줄 알았다이를 악문 이승만 박사는 이런 상황에 대비했던 카드를 꺼낸다.

    첫 날부터 숙소인 조선호텔에는 연일 수많은 인사들이 밀려들었다.
    하지 미군정사령관은 도쿄까지 가서 이승만을 맞았고,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하라는 맥아더극동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옛조선왕실의 궁터 소공동 궁전(일본이 철도호텔 건축)을 이승만 숙소로 준비해 놓았던 것이다. 

    건국의 아버지”...신문사설까지 존댓말...‘이승만 신드롬

    일반 국민들과 언론들이 날마다 펼치는 뜨거운 환영의 열풍은 가히 이승만 신드롬(syndrome)’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미군 진주이후 국민들은 우리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왜 안 데려 오느냐고 성화였다. 지방순시하던 아놀드 군정장관이 놀라 이를 하지에 알리고, 하지는 맥아더에게 요청한 것이었다. 맥아더의 재촉은 받은 미합동참모본부는 워싱턴에 있는 이승만이라는 한국인을 찾아서 서울로 보내라지시하고, 전쟁부 소속 군사정보부가 이승만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비밀리에 동양노인을 찾아낸 결과, 이승만은 귀국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맥아더는 그의 전용기 바탄(Bataan)까지 내주었다. 고대하던 우리 대통령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이때는 일제가 폐간시킨 [조선일보][동아일보] 등 민족지들이 복간되기 전, 박헌영의 [해방일보]를 포함한 좌경화된 신문들까지 이승만에 대해 엄숙한 추앙과 깍듯한 존칭을 사용했다.

    건국의 아버지’, ‘우리최고의 지도자’, ‘혁명전선의 거인등을 대서특필하고 사설 용어도 행차하시다’ ‘말씀하시다등을 써서 마치 고종황제 기사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국민 전체가 독립운동의 신화적 존재 이승만 박사에 대한 존경심과 기대감이 높았음을 말해준다.

  • ▲ 연설마다
    ▲ 연설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외치는 이승만 박사.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이승만 키워드!

    ◆ 북한의 장애물 제거실지(失地)회복 시급하다

     이것이었다돌아온 건국의 아버지가 연일 토해내는 말들의 핵심이 이 두 가지였다.
    한덩어리로 뭉치자뭉치고 뭉치는 걸 보여주시오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우리 삼천리 강토환원이 시급하다이를 위해서는 장애물이 제거돼야한다
    완전한 독립을 원한다. 38선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요우리에게 강제로 주어진 것이다. 38선을 없애고 남북이 합치는 완전한 독립, ‘통일독립이 아니고는 독립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귀국 이튿날부터 이어지는 내외기자회견과조선호텔로 몰려드는 인사들에게 이승만 박사는 줄기차게 주장한다. 3천만의 단결과 난립한 정당들의 합동과 ‘3천리 국토회복과 장애물 제거를 암송하듯 되풀이 강조하였다.

    장애물이란두말할 것 없이 북한을 점령한 소련공산당-소련군을 말한다.

    23세 청년시절 러시아와 싸워 두 번이나 러시아의 야욕을 무산시켰던 투쟁경력을 가진 이승만상하이 임시정부 대통령 시절 레닌의 국제공산주의와 싸우며 공산당의 당부당’ 논문을 써서 당시 최초의 반공투쟁을 벌인 이승만은 북한을 장악한 소련을 반드시 추방하여 통일독립을 이루어야할 절체절명의 사명 앞에 서있다. 40년 독립운동의 대단원 아닌가.
    한마디로 국민단결>소련 추방>남북통일독립이란 건국구상을 성공시키자는 절규였다. 

  • 시급한 것은 삼천리 강산을 되찾는 것...나에게 계획이 있다

     1019일 몰려온 인사들 80여명에게 의미심장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우리의 가장 급한 문제는 삼천리 강산을 찾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나를 따르겠다면 끝까지 싸움으로 생을 마치겠소.
    민생을 위하여 죽기를 배우자북쪽 문제가 캄캄하다.
    당장 뛰어가서 보고싶다우리가 나아갈 길이 있음을 확신한다.
    나에게 계획이 있다힘을 모아서 국가를 위하여 바치자.
    그리하여 이 국가의 목숨을 살리자   ([매일신보] 1945년 10월20일자)

    남북의 우리강토 회복장애물은 제거돼야 한다 

    1022일 오후230분 조선호텔에서 재경신문기자단과 정식회견을 가진 이승만은 38선문제 해결의 질문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인 의지를 피력한다.

    ”...오늘의 현상에 미추어 국제적 우의도 좋으나우리나라의 생명주권도 국제적 우의보다 선결해야할 문제라는 것을 나는 주장하고 싶다. 38선 이북에 대한 비난과 여러 가지 사실을 다 듣고 있으므로 종합적인 해결책도 강구할 것이나계속 침묵을 지킬 수는 없다.
    남북의 우리 강토를 회복해야 하므로북쪽에서 어떤 복리를 그곳 주민에 주든지남방 미군이 어떤 복리를 주든지이러한 분할적 복리로써 만족할 일이 아니므로우선 우리 강토의 회복강토환원을 위해 장애물은 속히 제거해야 할 것이다...“ ([자유신문] ‘한덩어리로 뭉쳐라’ 1945년 1023일자)

    정읍선언’ 8개월전의 소련추방’ 통일 캠페인

    여기서 여러분도 정읍선언의 구절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무기휴회된 (미소)공위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다여러분도 결심하여야 될 것이다...” (1946년 63정읍선언 요지밑줄 필자)
    귀국즉시부터 외친 통일독립’ 실현을 일단 미-소공동위 협상에 맡겨봤지만 불가능해졌으니우리에게 가능한 남방에서 임시정부 같은 조직을 만들어 우리 힘으로 국제여론에 호소하여 북한의소련을 추방통일독립을 이루자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귀국순간부터 다음해 나온 정읍선언까지 이승만의 주장은 일관된 것이었다.
    공산당이 분단의 원흉이라 트집잡은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조직이란 구절이것이 어찌 분단을 말하는가? 38선이북을 소련이 봉쇄하고 이승만 등 민족세력의 통일정부 합류를 한사코 거부하기 때문에뒤에서 보듯이미소공위가 결렬되었던 것이다.

    그 결렬의 책임까지 이승만에게 뒤집어 씌우라는 스탈린의 지령도 공개되어 있다.
    분명한 것은 이승만의 일관된 주장은 어디까지나 남북통일 독립이 지상목표었다는 사실이다그 통일독립 추진기구가 바로 독립촉성회’(약칭 독촉)이다. 

    ◆ 귀국 1주일만에 통일독립 추진 기구 독촉’ 결성 

    1023일 오후 2조선호텔에 한민당(916일창당), 국민당건국동맹조선공산당 등 50여개 정당과 사회단체 대표 200여명이 모였다이승만이 평생 꿈꾸던 독립국가 건설’ 준비 모임이다해방후 민족세력의 국내조직으론 처음감격에 찬 이승만이 개회사를 토로한다. 

    지금 이 자리는 역사를 만드는 모임이다세계 각국이 이 한곳을 지금 주목하고 있다.
    나는 여러분에게 억지로 뭉치라고 강요하지도 아니하고 또 뭉쳐만들려 하지도 아니한다.
    여러분들이 뭉치고 뭉쳐서 조선사람들에게 실감을 가르쳐라....우리가 죽으려면 죽고 살려면 살 길이 이 자리에 있다
    깊이 생각하라나의 묻고자 하는 것은듣고자 하는 것은 어느 단체의 편협된 의견이 아니라 3천만 민족이 원하는 바를 대표하는 부르짖음이다
    타국사람이 조선을 알려고 할 때 곧 물어볼 만한 책임있는 기관을 만들자는 것이다이 방을 나갈 때에는 기쁨의 만세를 부르고 나가도록 약속하자

    이날 대표자 합동희의가 결정되고 모든 것은 이승만 회장에게 일임하여 만장일치가 되었다.
    독립촉성(促成)중앙협의회“ 출범 만세!” 이승만 말대로 전원 기립 만세를 불렀다.
    이날까지 이승만은 독립촉성중앙협의회(약칭 독촉)’가 김구의 임시정부요인들이 귀국할때까지 대행기관이라 하였으나다음해 정읍선언 직후 민족통일총본부로 개편하면서 명실공히 통일독립’ 추진기구즉 과도적 임시정부 역할을 맡게 된다.

    ‘연합국에 보내는 결의문’을 직접작성 “38선 폐지” 요구
    11월2일 천도교 강당에서 제2차 독촉중협 회의를 열고, 이승만은 직접 작성한 ‘4대연합국과 아메리카 민중에게 보내는 결의문’을 국내외에 선포한다.
    요지는 *38선 철폐와 신탁통치 반대 *한국은 독립국 권리를 요구함 *미국은 신탁통치로 또 한번 한민족을 배신하지 말라 *일본의 선전에 속아 한국을 적대국처럼 대우하지 말라 *완전독립 이외의 모든 정책에 반대함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치기로 결의함 등이다. 

  • ▲ 대일전 참전 전부터 '한반도 위성국화' 시나리오를 짜두었던 스탈린, 그 시나리오를 철저히 실행한 '북한 총독' 시티코프(오른쪽).
    ▲ 대일전 참전 전부터 '한반도 위성국화' 시나리오를 짜두었던 스탈린, 그 시나리오를 철저히 실행한 '북한 총독' 시티코프(오른쪽).

    공산당은 저의 조국 소련으로 가라 

    박헌영의 인민공화국과의 결별은 이승만의 귀국 두 달후 12월이다.
    돈암장(敦岩莊)으로 옮긴후 박헌영이 찾아왔다이승만에게 주석’ 수락여부를 묻고 담판하려는 박헌영은 부르주아민주공화국이란 과도적 위장정부 구성를 위해 이승만이 절대 필요하다.
    박헌영은 친일파를 모두 처벌하고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달라"는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
    속아 넘어갈 이승만인가. “인민공화국을 버리고 대동단결하자고 설득하는 이승만은 친일파문제 해결책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물론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는 일소해야 한다그러나 지금 당장 외국인(미군정)의 손으로 처벌하기를 원치 않는다우리의 강토를 찾아낸 후에 우리 손으로 재판해야 할 줄 믿는다

    여기서도 이승만은 우리 강토를 찾은 후라며 북한을 점령한 소련을 추방하고 나서 북한 친일파까지 다 함께 심판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었다북한공산당이 실은 친일파나 같은 매국노이기 때문이다박헌영이 알아들었는지는 밝혀진바 없다.

    이것이 마지막 대화였다.
    이승만의 주석추대를 포기한 박헌영은 그후부터 친일파 이승만을 규탄한다.

    박헌영의 포섭을 포기한 이승만은 독촉중협’ 39명중 박헌영 등 12명이나 포함시켰던 좌익들의 명단을 회의를 통해 모두 삭제하였고결국 공산당과 완전히 손을 끊게 된다매주 수요일 정기방송하는 라디오연설에서 1219일 저녁 공산당에 대한 나의 입장을 명백히 천명한 것이다.

    귀국 이후 부정기적으로 시작한 이승만의 라디오 연설은 해방후 방황하는 국민들에게 구원의 소리처럼 설득력이 컸다이승만 특유의 유머 섞인 비유법과 역사해설을 곁들인 방송은 자상한 국제정세 해설과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국민 정신교육에 좋은 강의가 되었다그러자 원군을 얻은 듯 미군정은 이승만의 방송을 매주 수요일로 정례화 시켰고그 수요방송을 통하여 이승만은 국내외 정치적 리더십을 쌓아갔다.

    1219일 김구의 임정귀국 환영식이 열린 날도 수요일그날 저녁 730분 방송 제목이 바로 유명한 공산당에 대한 나의 입장이다서울운동장서 10여만 군중들에게 소련과 국내공산당에 대한 경고를 날리며 나를 따르라고 외쳤던 이승만이 저녁 방송에서 국내외에 공산당과의 결별을 선언하였던 것이다.
    그동안 하지 사령관은 이승만의 수요방송’ 원고를 사전에 검열해왔는데공산당에 대한 자극적인 공격을 막기 위해서였다그리하여 이날 이승만은 연설 앞부분만 제출하였고 정작 중요한 본론 부분은 방송 중에 비서 윤석오가 몰래 전해주었다고 한다. (윤석오의 증언경무대4, [남기고싶은 이야기들중앙일보사,1977),
    이날 방송 내용은 미국의 대한정책은 물론이승만의 건국전쟁에 획기적인 것이었으므로 연설전문을 들어보자.

  • ▲ 위기일수록 미소로 설득하는 미승만 박사.
    ▲ 위기일수록 미소로 설득하는 미승만 박사.

    한국은 공산당을 원치 않는 것을 세계에 선언합니다

     공산당에 대한 나의 입장
    1945년 1219일 오후730분 중앙방송

    한국은 지금 우리 형편으로 공산당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세계 각국에 대하여 선언합니다.
    기왕에도 재삼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공산주의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요공산당 극열파들의 파괴주의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천년의 역사를 가졌으나 우리의 잘못으로 거의 죽게 되었다가 지금 간신히 살아나서 발을 땅에 다시 디디고 일어서려는 중이니 까딱 잘못하면 밖에서 들어오는 병과 안에서 생기는 병세로 생명이 다시 위태할 터이니 먹는 음식과 행하는 동작을 다 극히 초심해서 어린 아기처럼 간호해야 할 것이고 건강한 사람과 같은 대우를 하여서는 안 됩니다. 

    폴란드 등 동유럽의 공산화 과정중국의 내전 실상을 보라 

    공산당 극열분자들의 행동을 보시오.
    동서 각국에서 수용되는 것만 볼지라도 폴란드 극열분자는 폴란드 독립을 위하여 나라를 건설하자는 사람이 아니오폴란드 독립을 파괴하는 자들입니다이번 전쟁에 독일이 그 나라를 점령한 후에 애국자들이 임시정부를 세워서 영국의 수도인 런던에 의탁하고 있어 백방으로 지하공작을 하며 영-미의 승인까지 받고 있다가 급기야 노국(露國:러시아)이 독일군을 몰아내고 그 땅을 점령한 후에 폴란드 공산분자가 외국의 세력을 차탁(藉托)하고 공산정부를 세워서 각국의 승인을 얻고또 타국의 군기를 빌려다가 국민을 위협해서 민주주의자가 머리를 들지 못하게 만들어 놓아 지금도 정돈이 못 되고 충돌이 쉬지 않는 중이며이외에도 구라파의 해방된 모든 나라들을 보면 각각 그 나라 공산분자들이 들어가서 제나라를 파괴시키고 타국(소련권리범위 내에 두어서 독립권을 영영 말살시키기로 위주하는 고로전국 백성이 처음으로 그자들의 선동에 끌려서 뭔지 모르고 따라가다가 차차 각오가 생겨서 죽기로서 저항하는 고로 구라파의 각 해방국은 하나도 공산분자의 파괴운동으로 인연하여 분열분쟁이 아니 된 나라가 없는 터입니다. 

    동양의 중국으로 보아도 장개석총통의 애국심과 용감한 군략으로 전국민중을 합동해서 왜적에 항전하여 실낱같이 위태한 중국운명을 보호하여 놓았더니 연맹 각국은 다 그 공적을 찬양하며 극력 후원하는 바이거늘중국의 공산분자는 백방으로 파괴운동을 쉬지 아니하고 공산정부를 따로 세워 중국을 두 조각으로 나누어 놓고 무장한 군병을 양성하여 중앙정부와 장총통을 악선전하여 그 세력을 뺏기로 극력하다가 필경은 내란을 일으켜 관병과 접전하여 동족상쟁으로 피를 흘리게 쉬지 아니하는 고로타국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이권을 도모하기에 기탄치 않기에 이르나니만일 중국의 공산분자가 만분지일이라도 중국을 위하여 독립을 보존하려는 생각이 있으면 어찌 차마 이 같은 파괴적 행동을 취하리오. 

    공화국’ ‘민주주의로 거짓말...조국이라는 소련에 가서 충성하라 

    우리 대한으로 말하면 원래 공산주의를 아는 동포가 내지에는 불과 몇 명이 못 되었나니 공산문제는 도무지 없는 것입니다그 중에 공산당으로 지목받는 동포들은 독립을 위하는 애국자들이요공산주의를 위하여 나라를 파괴하자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따라서 시베리아에 있는 우리 동포들도 대다수가 우리와 같은 목적으로 생명까지 희생하려는 애국자들인 줄 우리는 의심 없이 믿는 바입니다.

    불행히 양의 무리에 이리가 섞여서 공산명목을 빙자하고 국경을 없이 하여 나라와 동족을 팔아다가 사익과 영광을 위하여 부언위설(浮言僞說)로 인민을 속이며 도당을 지어 동족을 위협하여 군기를 사용하여 재산을 약탈하며소위 공화국이라는 명사를 조작하여 국민전체에 분열 상태를 세인에게 선전하기에 이르다가 지금은 민중이 차차 깨어나서 공산에 대한 반동이 일어나매간계를 써서 각처에 선전하기를 저이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요 민주주의자라 하여 민심을 현혹시키니이 극열분자들의 목적은 우리 독립국을 없이해서 남의 노예로 만들고 저의 사욕을 채우려는 것을 누구나 볼 수 있을 것입니다이 분자들이 노국(러시아)을 저희 조국이라 부른다니 과연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요구하는 바는 이 사람들이 한국에서 떠나서 저의 조국에 들어가서 저의 나라를 충성스럽게 섬기라고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찾아서 완전히 우리의 것을 빼앗아다가 저의 조국에 붙이려는 것은 우리가 결코 허락지 않을 것이니 우리 삼천만 남녀가 다 목숨을 내 놓고 싸울 결심입니다우리의 친애하는 남녀들은 어디서든지 각기 소재지에서 합동해서 무슨 명사로든지 애국주의를 조직하고 분열을 일삼는 자들과 싸워야 됩니다. 

    가족과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자는 부모형제라도 거부해야 

    우리가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과 우리 가족을 팔아먹으려는 자들을 방임하여 두고 우리나라와 우리 국족과 우리 가족을 보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이 분자들과 싸우는 방법은 먼저는 그 사람들을 회유해서 사실을 알려 주시오내용을 모르고 풍성학루(風聲鶴涙)로 따라 다니는 무리를 권유하여 돌아서게만 되면 우리는 과거를 탕척(蕩滌)하고 함께 나아갈 것이오종시 고치지 않고 파괴를 주장하는 자는 비록 친부형(親父兄)이나 친자질(親子姪)이라도 거절시켜서 즉 원수로 대우해야 할 것입니다대의를 위해서는 애증과 친소(親疎)를 돌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옛날에 미국인들이 독립을 위해 싸울 적에 그 부형은 영국에 충성하여 독립을 반대하는 고로 자식들은 독립을 위하여 부자형제간에 싸워가지고 오늘날 누리는 자유 복락의 기초를 세운 것입니다. 

    건설자와 파괴자는 합동 불가능...지금 해결 못하면 동족상잔 불가피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건설자와 파괴자와는 합동이 못되는 법입니다.
    건설자가 변경되든지 파괴자가 회심하든지 해서 같은 목적을 갖기 전에는 완전한 합동은 못됩니다우리가 이 사람들을 회유시켜서 이 위급한 시기에 합동공작을 형성시키자는 주의로 많은 시일을 허비하고 많은 노력을 써서 시험하여 보았으나 종시 각성이 못 되는 모양이니 지금은 (독립촉성)중앙협의회의 조직을 더 지체할 수 없이 협동하는 단체와 합하여 착착 진행 중이니 지금이라도 그 중 극열분자도 각성만 생긴다면 구태여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다만 파괴운동을 정지하는 자로만 협동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에 이 문제를 우리 손으로 해결치 못하면 종시는 우리나라도 다른 해방국들과 같이 나라가 두 절분으로 나누어져서 동족상쟁의 화를 면치 못하고 따라서 결국은 다시 남의 노예노릇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그러니 우리는 경향 각처에서 모든 애국 애족하는 동포의 합심합력으로 단순한 민주정체 하에서 국가를 건설하여 만년 무궁한 자유 복락의 기초를 세우기로 결심합시다. ([서울신문] 1945. 12. 21)

  • ▲ 1945년 3월20일 미-소 공동위원회가 처음 개최된 덕수궁, 태극기를 중심으로 양국 국기가 계양되어있다.
    ▲ 1945년 3월20일 미-소 공동위원회가 처음 개최된 덕수궁, 태극기를 중심으로 양국 국기가 계양되어있다.

    ◆ 강대국은 우리강토 흥정 말라“ -소 공동위 반대

     이때 소련 모스크바에서는 이른바 ‘3상회희가 열리고 있었다. 1216일부터 미국대표 번스(James F. Byrnes) 국무장관소련대표 몰로토프(Vyacheslav Molotov) 외상영국대표 베빈(Ernest Bevin) 외무장관이 모여 전후처리 7개 의제에 대해 토의하였는데한국의 신탁통치’ 문제에 대한 추측들이 국내에도 외신을 인용 보도되어 어수선하다.

    이승만, ”3천만이 싸우다 죽을 지언정 신탁통치 단호히 배격

    이승만은 26일 수요 방송을 통하여 신탁통치를 단호히 배격한다면서 남한 전역에 독촉’ 지부 조직을 독려하였다. “만일 우리의 결심을 무시하고 신탁관리를 강요하는 정부가 있다면우리 3천만 민족은 차라리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죽을지언정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결의를 다졌다모스크바의 신탁 결정’ 전야에 이승만은 신탁 결사반대를 다시 한번 국내외에 확인시킨 것이었다.

    또한 독촉의 통합이 성숙할 때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소수의 극단적 공산주의자만 없었다면 민족통합은 벌써 성공하였을 것이라며 우리가 지금 방해자들의 파괴행위를 방관한다면 나중에는 아무리 싸워도 효과가 없다고 경고한다신탁관리를 거부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주저하지 말고 독촉’ 지부결성을 서둘자고 말했다독촉의 조직투쟁으로 신탁통치를 막자는 주장이다이승만은 독립촉성회를 새로운 정부 수립의 추진체로 활용하기로 하지 사령관과도 합의하였음을 시사하면서 ”(신탁통치용)과도정부 수립까지 한민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이 필요한데 그것이 독촉중앙협의회라며 승인받지 못한 중국내 임시정부를 엄호하고 그 기능을 대행한다고 설득했다.

  • ▲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경무국장 김구(왼쪽), 국무총리 이동휘.
    ▲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경무국장 김구(왼쪽), 국무총리 이동휘.

    김구뜻밖의 방송 소련 국부’ 레닌 선생이 임정 도왔다

     이튿날 27일 아침부터 외신들이 신탁통치에 관한 급전(急電보도를 쏟아냈다.
    한민당국민당 등 우파정당들은 긴급간부회의를 소집하였는데 특히 한민당은 신탁통치 반대’ 결의문을 채택하고 국제신의를 무시하며 조선의 생명적 발전을 저해하며동아시아인의 평화를 파괴하는 것으로서 3천만 최후까지 싸울 국민운동을 주창하였다.([조선일보]1945.12.28.)
    조선공산당 대변인 정태식도 우리는 절대 반대한다. 5년은커녕 5개월 신탁통치라도 반대라고 말했다.([조선인민보]1945.12.29.)여운형의 조선인민당 총무 이여성은 신탁통치안은 그 어느 나라가 하든 원치 않는다소련은 가장 진보적인 민주주의 나라로서 조선에 들어 올 때 모든 것은 조선인의 것이라 하여 감사했는데 이제 와서 신탁통치를 하겠다하니 못 믿겠다오보가 아니냐?“고 반문하였다. ([신조선보]1945.12.27.)

    김구귀국후 처음 레닌 선생’ 칭송과 진보적 민주주의’ 꺼내다

    이와 같이 좌우 정파들이 반탁을 들고 나온 판에 김구가 이상한 연설을 하였다.
    27일 서울중앙방송국 라디오 방송으로 ‘3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란 연설이 그것이다그 내용은 귀국후 이승만을 만나면서나 기자회견 때도 발언에 신중하던 김구와는 전혀 다른 적극적이며 좌파적인 주장이었다.
    김구는 그동안 임시정부가 중국소련미국 등으로부터 사실상 승인과 같은 지원을 받았다면서 그 지원의 보기로서 임정초기의 레닌 자금을 인용한다.

    소비에트 연방의 국부(國父레닌 선생은 제일 먼저 임시정부와 손을 잡고 거액의 차관을 주었다.“ 김구가 토해낸 소련 국부 레닌 선생이란 호칭은 그동안 한번도 못 듣던 말이었다.이어서 김구는 공산당의 슬로건 진보적 민주주의를 내세워 방송한다.

    즉 우리는 가장 진보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주장한다고 했다. ”그러나 모 일계급의 독재는 반대한다고 공산독재를 견제하는 말을 덧붙였다. ([동아일보]1945.12.30.)

    지난 주 이승만의 강렬한 반공’ 연설에 비판의 소리가 나오자 김구가 그 여파에 올라타는 임정 선전의 다목적 포석이란 해석들이 나왔다그 연설문은 한독당 선전부장이자 김구의 연설과 편지작성 전담자 엄항섭(嚴恒燮, 1898~1962)이 쓴 것이었다고 한다.

    이동휘-김립, ”임정을 고려혁명위원회로 바꾸자

    서울 장안이 반탁으로 술렁이는 날신탁통치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대신에 소비에트 국부 레닌에게 감사한 연설에서 김구가 언급한 레닌의 지원‘ 정체는 무엇인가.

    상하이 임정 초기 레닌이 대한민국 국무총리 이동휘(李東輝,1873~1935)에게 제공한 200만 루블실은 코민테른 국제공산주의 확산을 위한 공작금이었다이동휘에게 고려공산당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벌이라는 돈인데 다름 아닌 임정의 공산화를 위한 지령이었다그 거액으로 이동휘가 임정 인사들과 상하이 한인 청년들을 고려공산당원으로 포섭하였기 때문이다그때 그 돈 안먹은 사람 드물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김구는 거절하였다고 [백범일지]에 썼다.

    레닌의 자금을 알게 된 임정은 독립운동 자금이니 내 놓으라고 다그치지만이동휘는 임시정부와 무관하다며 거부하고 이승만과 일 못하겠다며 상하이를 떠나버렸다.

    당시 대통령 경호담당 경무국장 김구는 이동휘의 측근 김립(金立,1880~1922)을 독립자금 횡령범으로 지목부하들을 시켜 1922년 2월 대낮에 노상에서 암살한 바 있다.

    레닌 공작금으로 고려공산당을 조직-운영한 이동휘와 김립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소비에트 공산체제 고려혁명위원회로 바꾸자고 제안했다가 이승만 임정대통령의 반대로 좌절된 인물들이다하지만 그 조직은 3년후 포섭된 임정요인들을 앞세워 이승만을 탄핵이란 명목으로 파면하고헌법을 소련식 헌법으로 개헌하였으며 1927년 김구를 주석으로 앉혔던 것이다.

    김구 자신이 내막을 잘 아는 이 사건을 왜 해방 후 새삼 소환한 것일까레닌을 칭송하며좌익의 상징 진보적 민주주의까지 내세운 까닭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 ▲ 덕수궁에서 열린 미-소 공동위원회, 미국대표단(오른쪽)과 소련 대표단이 마주 앉아있는 모습.
    ▲ 덕수궁에서 열린 미-소 공동위원회, 미국대표단(오른쪽)과 소련 대표단이 마주 앉아있는 모습.

    ◆ 스탈린이 -소공동위원회를 만든 까닭은?

     남다른 통찰력의 귀신‘ 이승만의 예상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영문저서 [JAPAN INSIDE OUT]에서 일본의 진주만공격을 경고했던 이승만이 이번엔 미소공동위가 무엇을 위한 기구인지 한눈에 갈파했던 것이다.그것은 살인강도에게 안방문을 열어주는 것“--왜냐하면스탈린은 루즈벨트가 원하는 신탁통치를 지렛대 삼아이번에야말로 잃었던 한반도를 되찾는 시나리오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1228일 모스크바 3(--외상회의가 발표한 한국관련 결정서를 보자.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서 요지

    1) 조선을 독립국으로 재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조선 민주주의 임시정부‘ 창설.

    2) 조선임시정부의 형성을 위해남조선 미군사령부 대표들과 북조선 소련군사령부 대표들로 공동위원회를 조직함위원회는 조선의 민주주의 정당들사회단체들과 반드시 협의할 것.

    3) 위원회는 신탁통치 방책을 작성하며조선임시정부와 협희후 5년이내 기한으로 미---중 4개국의 신탁통치 협정을 위해 공동심의 한다.

    4) 남북조선과 관련된 긴급문제들을 심의하기 위하여 위원회를 2주내 소집한다.

    스탈린의 작품‘ 결정서를 미국이 덥썩 물다

    아 결정서는 소련이 작성하였고 미국은 큰 이의없이 수락했다고 한다.
    스탈린이 만들어낸 결정서엔 4개국 신탁통치는 뒷전이고 소련과 미국의 2국협의가 초점이 되었다이는 얄타회담때 스탈린이 루즈벨트에게 이미 암시한 음모였다. “신탁통치 기간은 짧을수록 좋고 중국은 한반도의 오랜 종주국이니 거북하고 영국은 처칠이 화낼 테니 넣어주자고 했던 스탈린의 속내 그대로 3상회의에 결정서를 제출콩과시켰던 것이다.

    스탈린을 지배한 가장 결정적 요소는 필자가 앞서 지적했듯이 한반도 미군 주둔문제였다.
    요컨대 미국은 한반도에 미군을 계속 주둔할 계획이 없다루즈벨트로부터 이 한마디를 확인했던 순간스탈린은 극동아시아에 최초의 위성국 설계를 시작했음을 알아야한다.
    현재 미군이 남한에 진주했지만 머지않아 철수할 것이기에 -소 공동위에서 미국만 잘 구슬러서 철군하고나면 한반도는 소련땅이 되기 때문이다바로 2)항의 민주주의 정당들과 반드시 협의할 것” 이것이 스탈린이 장치한 함정이었다.

    민주주의 정당이란 다름 아닌 공산주의 정당을 가리킨다소련식 공산주의를 모르는 미국의 귀에는 다 같은 민주주의로 들릴 것이것이 국제공산화의 용어전술임을 미국은 모른다위의 방송연설에서 보듯이 이승만이 가르쳐줘도 그때 미국은 마이동풍이었다.

     스탈린이승만 배제 등 사전 지령

    이와같은 스탈린의 음모를 한눈에 보여주는 비밀문서가 여러개 공개되어 있다.
    *미소공위 예비회담시 지령 *본회담 지령 *1차실패후 지령*2차회담용 지령 등 장황하고 치밀한 지침들이 되풀이 강조되는데이 가운데 몇 개만 뽑아보자..

    수석대표 시티코프본회담은 318일 개최할 것.

    남북조선의 협의대상 민주정당-사회단체의 명단 작성양측 인원은 균등할 것.

    모스크바 결정에 반대하는 우익정당과 사회단체는 협의대상에서 끝까지 제외할 것...

    새로 수립할 임시정부는 미소공동위원회의 감독을 받아야한다.

    남조선에서 미군정과 반동세력의 각종 탄압 형태를 대대적으로 폭로할 것.

    북조선 소비에트화를 위해 소련 고문관 300명을 파견경제지원 강화.... 

    결국명목만의 임시정부를 세워놓고 미국이 손 떼면 소련 차지라는 계산이다.

    예비회담부터 금방 불 붙은 것은 , ’우익정당 제외문제였음은 당연하다.
    신탁통치 반대 세력은 제외‘--공산당 등 좌익세력으로만 임시정부를 세운다는 것뒤늦게 눈치 챈 미국은 아차하지만 너무 늦었다.

    소련이 제외대상 첫 손가락에 꼽은 인물이 가장 반동적인 이승만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듬해 3월 열린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깨어지는 소리를 들어볼 시간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