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자기 "작업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싸이렌 소리와 함께 공동작업장만이 아닌 온 구읍리가 뒤집혔다.

    독신자세대 운동장은 들끓었다. 해만 뜨면 비어 있던 그 넓은 마당에 트럭이 여러 대 늘어서 있었다. 그 옆으론 수용자들이 트럭에 오르고 내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들의 어깨에는 어디론가 실려 가기 위한 배낭이거나 그마저 없으면 낡은 마대 하나가 걸쳐져 있었다. 그 풍경은 평범한 이송처럼 보여도 사실은 전체 15호의 지형이 다시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 태풍처럼 지나간 당조직지도부 검열은 지휘부만이 아니라 수용자들의 삶의 틀도 흔들어 놓았다. 검열 결과 총회에서 중앙당 간부는 말했다.

    "반동들이 같은 장소, 같은 분조에 오래 붙어 있으면 동지가 되고, 탈출의 구멍을 만든단 말이요."

    검열단이 평양으로 올라간 뒤 15호 간부회의가 열렸었다. 정치부장 부재로 조직부장이 정치부의 임시 대표자로 나섰다.

    "전체 리. 인원, 싹 다 교체해야 합니다. 싹 다."

    소장은 처음부터 완고했다. 그러다 마지막에 크게 양보한 것처럼 말했다.

    "아무튼, 정치부 결정대로 다 바꾸고, 아무튼, 구읍리만은 냅둡시다."

    "구읍리에서 탈주범 나와서 이 지경된 거 아닙니까."

    "지휘부가 있는 구읍리는 아무튼, 무난한 자들로 간부사업 하듯이 배치해야지요. 아무튼, 시끄러운 놈들 데려다 또 사고가 나면… 그때는 나나, 조직부장 동무를 대신해서 미쳐 줄 사람도 없소."

    회의실 안에 말이 맴돌았을 때 이미 소장은 속으로 결정하고 있었다. 구읍리에서 내보낼 자들, 정말로 지옥에 보내도 아깝지 않은, 질 나쁜 말종들... 실제로 그는 그런 자들만 추렸다. 감시 대신 추방, 관리 대신 제거였다.

    반대로 구읍리 안으로 수용자들을 데려오는 건 조직부장이 맡았다. 그는 소장과 달랐다. 굴욕을 웃음으로 넘기고 욕을 인사처럼 주고받으며, 타인을 밟아야만 자기 생존을 확인하는 자들. 미꾸라지 같은 자들을 구읍리로 수십 명 끌어들였다.

    새로 짜인 그의 명단엔 하루에도 열두 번 시비를 터뜨릴 놈들이 즐비했다. 특히 무식하면서 주먹만 믿고 날뛰는 깡패 같은 놈들을 감시반으로 임명해서 끌어들였다.

    구읍리 수용자들은 그때까지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작업장에서 왜 막사로 복귀했는지. 짐은 왜 싸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트럭에서 내리는 자들이 "추방 왔소"라고 말할 때야 비로소 자기들도 "추방 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짐을 다 꾸릴 시간도 없었다. 인사도, 작별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옮겨졌다고 통보받은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누구보다 목소리 크던 세 명의 사내들이 최종배 사무실로 불려갔다. 그들은 들어갈 때보다 나올 때 표정이 더 험상궂었다. 팔에 감시반 완장이 감겨 있었다.

    최종배가 인사를 받으러 따라 나왔지만, 태도가 수용자 같지 않았다. 그들은 눈빛부터 삐딱했다. 최종배와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 그들은 무력부 출신들이었다. 별명도 공격적이었다. 우두머리는 두목이고, 그 뒤엔 '장갑차'와 '붉은땅크'라 불리는 자들이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최종배가 위엄을 보였어도 그 안엔 한 겹의 긴장이 숨어 있었다.

    "야. 내 앞에서 자세가 그게 뭐야? 차렷!"

    수용자들은 마지못해 자세를 고쳤다. 어깨는 내려갔고, 등은 굽었고, 발끝은 제각각이었다. 최종배의 눈썹이 흔들렸다.

    "야. 너희들 밖에서 군 복무도 이따위로 했어? 차렷이 그게 다야?"

    그러자 두목이 자기 조원들에게 낮고 짧게 쏴붙였다.

    "이 새끼들, 무력부 망신시키고 있어. 차렷!"

    그 한 마디에 장갑차와 붉은땅크가 정확하고 날카롭게 자세를 고쳤다. 등판을 일직선으로 만들고 양발은 동시에 모았다. 자기보다 두목의 말에 반응하는 그 질서에 최종배의 시선이 살짝 내려갔다. 그는 헛기침으로 균형을 되찾았다.

    "너희들, 대숙리에서 호위국조니, 무력부조니 패 가르고 매일 치고받으며 싸웠다며? 여긴 15호 지휘부가 있는 구읍리야."

    무력부조는 새겨듣는 얼굴들이 아니었다.

    "구류장도, 평정서 평가도 대숙리보다 더 혹독해. 먼저 올라간 놈들과 같은 감시반이 된 이상 잘 단합해서 똑바로 해. 알았어?"

    붉은땅크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우리 두목이 뭐가 모자라서 감시반장이 못 된 겁니까?"

    장갑차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호위국조 두령 놈보다 우리 두목 주먹이 더 셉니다."

    두목의 어깨가 더 일어섰다. 그러면서 손가락 관절을 꺾었다. 우지직— 마디가 꺾이는 그 소리가 엄청이나 크게 들렸다. 최종배는 권총집이 있는 허리에 손을 얹었다.

    "이 새끼들이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어? 당장 올라가!"

    보위원이 등을 돌리기 전, 두목이 먼저 발을 뗐다. 그러자 장갑차와 붉은땅크도 끈 달린듯 그 뒤를 따랐다. 운동장은 군인들의 호각소리와 고함, 수용자들의 아우성이 뒤엉켜 마치 전쟁터의 피난현장 같았다.

    한편, 9분조는 독신자 막사 안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다행히 추방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겨진 것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떠난 자들이 비운 자리를 견디며 곧 도착할 새 얼굴들을 다시 버텨야만 했다.

    도련님과 주둥이의 한숨이 제일 깊었다. 도련님의 눈에는 슬며시 눈물이 고였다. 독신자세대도 반이 비워졌다. 박해순 분조도 어딘가로 옮겨졌을 생각하니 가슴이 더 시렸다. 주둥이도 다시 보지 못할 민유정을 생각하며 가슴이 미어졌다. 눈을 가리고 있자니 손이 떨렸다.

    검은손은 그들의 마음을 매만지듯 도련님과 주둥이의 무릎에 두 손을 하나씩 얹어주었다. 한쪽에서 김성근은 여전히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움직이면 무너질까 두려워 자기 몸을 붙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바깥에서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령동지 여깁니다! 여기!"

    곧이어 문이 뜯겨나갈 기세로 벌컥 열렸다. 히죽거리는 얼굴 두 개가 먼지 섞인 햇살을 밀어내며 들어왔다. 그들은 문 앞에서 영접하듯 뒤에 들어올 사람을 향해 차렷 자세를 취했다. 조촐한 그 의식 위로 두령이란 자가 얼굴을 나타냈다.

    최종배가 무력부조 놈들에게 아웅다웅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그 호위국조 놈들이었다. '자신들을 이끄는' 우두머리를 무력부는 '두목', 호위국조는 '두령'이라고 불렀다. 고작 3명뿐인데도 30명처럼 시끄러웠다. 놈들은 막사에 남은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고함치며 들볶았다.

    "야 핵구름! 무력부 놈들 오기 전에 우리 호위국조가 맨 안쪽에 자리 잡아. 기관총도 움직여."

    두령이란 자의 지시에 핵구름인지 기관총인지 하는 두 놈이 막사 안쪽으로 단숨에 밀고 들어갔다. 그 둘이 물건을 툭툭 던지며 자리를 잡는 동안 9분조원들의 시선은 그놈들 완장에 쏠렸다. 놈들 짓을 봐선 살인 면허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놈들이 한 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말이 아니라 질서와 규칙이 바뀌는 것 같았다. 뒷짐지고 막사 안을 쭉 둘러보던 두령의 시야에 9분조가 걸려들었다.

    "야, 기관총. 여기 와 봐."

    기관총이 단숨에 달려왔다.

    "네, 두령 동지!"

    두령이 턱을 들어 9분조를 가리켰다.

    "여기 구읍리 인민들 좀 봐라. 새 감시반장 동지가 왔는데도 상태 봐."

    "반듯하게 주름잡아 놓겠습니다."

    기관총이 눈을 좁히며 천천히 9분조를 둘러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장난감 고르는 것처럼 살피더니 도성진의 머리를 탁, 탁 쳤다.

    "너 일어나 봐. 시간 제일 오래 가겠다."

    도성진은 엉거주춤 일어섰다.

    "15분 똑딱 기합 시작!"

    말은 들었지만 뜻을 몰랐다. 도성진은 멍하니 서 있었다. 기관총은 자기가 받은 충격이 더 크다는 듯 가슴에 두 손을 얹었다.

    "어마나, 너 똑딱이도 모르니? 세상에! 구읍리는 똑딱이 없는 데야?"

    두령이 막사 구석에 대고 불렀다.

    "야, 핵구름! 와서 똑딱이 교육 좀 주라."

    "알겠습니다!"

    핵구름이 기분 좋게 달려왔다. 신나게 어깨를 들썩이며 막사 중앙에 섰다.

    "두령 동지! 똑딱 기합 주십시오!"

    두령은 시계도 없으면서 왼손목을 들여다보았다.

    "15분. 똑딱."

    그 말이 떨어지자 핵구름은 벽시계가 되었다. 왼쪽 다리를 들고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었다. 한쪽 팔은 12시 방향으로 곧게 세우고, 다른 팔은 15분 자리로 천천히 이동했다. "똑딱. 똑딱. 똑. 딱" 입으로도 소리를 냈다. 그 동작은 조롱과 복종의 혼합물이었다.

    기관총이 도성진의 가슴을 툭 쳤다.

    "봤지? 15분 못 버티면 20분으로 늘어난다."

    도성진은 검은손을 바라보았다. 검은손은 일단 시킨 대로 하라는 의미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겁해서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수용소에선 싸워서 이기는 쪽이 승자가 아니었다. 다치지 않고 살아남는 쪽이었다. 치료도, 약도 없는 수용소다. 더구나 상대는 감시반 놈들이었다. 자기를 해치면서라도 남을 파괴할 성질까지 장착했다. 방법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도성진은 봐온 대로, 시키는 대로 팔다리를 들었지만 금방 자세가 흔들렸다.

    "다시! 5분 추가, 20분 똑딱!"

    기관총이 바닥에 겨우 지탱하고 있던 성진의 한 다리를 툭 걷어찼다. 도성진이 들었던 다른 발을 바닥에 내리자 기관총이 주먹을 높이 들었다. 그 찰나 검은손이 일어섰다.

    "내 분조원들이야. 건드리지 마."

    순식간에 기관총과 핵구름이 달려들었다. 검은손의 멱살부터 붙잡았다. 바로 그때였다. 김성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손 놉소꾸마. 내 아는 사람들이꾸마."

    그 말에 호위국조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입에선 똑같이 감탄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두령이 김성근 앞으로 흔들흔들 걸어갔다.

    "히야… 우린 모를만도 하겠다. 이 둘레 봐라. 참… 드넓다."

    두령이 웃자, 핵구름과 기관총도 달려가 성근의 몸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소장보다 더 심하지 않아?"

    "후방부장이 더 뚱뚱합니다. 이 새낀 보위원보다 어떻게 양심도 없이 이렇게 살이 많지?"

    두령이 손바닥을 딱 소리 나게 쳤다.

    "맞다. 여기 구읍리에 리종옥 부주석 아들놈 있다고 했지? 이놈인가?"

    도련님이 움찔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새어 나오는 숨이 떨렸다. 9분조 시선이 그에게 돌아갔다.

    "소문에는 들어왔다가 바로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하는 기관총에게 핵구름이 주먹을 쳐들었다.

    "뭔 개소리야. 소장이 단독막사까지 보장해줬대. 맨날 그 안에서 술 처먹고, 여기 곱다는 죄수년들은 다 벗기고 논다던데,"

    도련님은 할 말을 잃은 얼굴로 입을 쫙 벌렸다. 주둥이가 손가락으로 아래턱을 밀어 올렸다. 다시 9분조의 시선은 두령의 목소리로 향했다.

    "혹시, 이 몸뚱이가...? 너 아버지가 부주석이야?"

    김성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러자 호위국조는 다같이 "어!"로 길게 감탄했다.

    "맞답니다. 대답 안 하지 않습니까?"

    두령이 기관총의 그 입을 찰싹 때렸다. 그 손으로 성근이를 가리켰다.

    "다시 물을게. 너의 아버지가 저기 저 높으신 부주석 동지냐고 내가 정중히…"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성근이 말했다.

    "내 아버지는 더 높수꾸마."

    순간 9분조원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김성근을 향했다. 그 말이 농담인지 진심인지 판단할 틈도 없이 호위국조에서 큰 웃음이 터졌다. 배를 잡고 웃던 두령이 김성근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네 아버지가 더 높수꾸마! 들었어? 하하하! 부주석보다 더 높으면 그럼 뭐야? 주석? 주..."

    말하고 보니 '주석'이었다. 발음 끝에 숨이 턱 걸렸다. 말 한 놈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들은 놈들은 입이 벌어졌다. 서로 마주 볼 때도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그때 도련님이 느릿하게, 그러나 거만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내가 리종옥 부주석 둘째 아들 리만수요."

    김성근에게 놀랐던 호위국조는 또 한 번 도련님에게 돌아서며 뒷걸음쳤다. 난생처음 소문의 주인공을 실물로 영접하는 그들의 소박한 눈은 기겁해 있었다. 권력의 두 몸뚱이를 비교하듯 김성근과 번갈아 보기도 했다. 도련님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해순도 없는 구읍리가 더는 두렵지 않았다.

    "내가 단독막사라니! 여자들을 벗기다니!"

    꾸찢으며 때릴 기세로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 발걸음 숫자만큼 호위국조는 뒤로 물러섰다. 도련님은 더 가지 않고 김성근 앞에서 돌아섰다. 그리고 그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도련님이 깊이 머리를 숙인 것만큼 호위국조의 어깨는 위로 높이 올라갔다. 두령이 먼저 몸을 돌렸다. 졸개들도 막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지막에 섰던 기관총은 신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