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옹헤야는 그 형체를 보았다. 군중 속의 특별한 9분조를 알아보았다. 자기를 위해 봉분처럼 일어선 그 마음들까지 읽어냈다. 그리고, 작은 미소를 지었다. 죽어서 가지는 자유의 한 조각을 기어이 보냈다.

    하지만 군인들이 곧바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입에 무언가를 거칠게 집어넣었다. 그것은 공개처형자들에게 물리는 보위부의 자갈이었다. 말을 찢는 고문. 말을 부정하는 체제. 말대신 침묵을 강요하는 통제. 그 모든 두려움으로 고안해 낸 용수철 장치였다.

    그 마지막 절차가 끝나자 임시 연탁으로 관리소 간부들이 하나둘 늘어섰다. 그들의 등장은 정적을 가져왔다. 먼저 대열부장이 연탁 앞에 섰다. 그는 탈출이란 그 짧은 단어에 온갖 거짓과 설명, 위협의 문장을 붙여 길게 낭독했다.

    소장은 그때만큼은 앞자리가 싫었는지 먼 산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아래를 둘러보았다. 군중 속에서 단 하나의 얼굴을 찾고 있었다. 서련화는 그 시선을 받고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대로 정면으로 가져갔다. 그녀의 비장한 표정, 꼿꼿한 허리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를 보지 마십시오.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보십시오. 그게 지금 당신의 직업입니다. 그 직업 중에서도 당신은 소장입니다."

    소장의 시선은 공중에서 떠돌다 스스로 꺼졌다. 그 짧은 무력함이 그의 유일한 감정이었다. 드디어 대열부장이 읽던 종잇장을 내려놓았다. 그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 소리쳤다.

    "다들 잘 봐! 저놈이 아무리 날고뛰는 재주가 있다 해도, 저 잡종 얼굴로 숨긴 어디 숨어? 우리 15호는, 탈주범은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잡아 와!"

    대열부장은 군중을 향해 눈알을 굴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감히, 다른 날도 아니고 말이야. 민족 최대의 명절에 말이야."

    이어 손바닥을 허공에 휘저으며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었다.

    "이놈한테는 총알도 아깝다. 시작해!"

    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군인 하나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집중! 모두 손에 돌 들엇!"

    군중 속에 아이들까지 그 의미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애들이 먼저 돌을 들었다. 어른들도 묵묵히 돌을 주워들기 시작했다. 도성진이 검은손의 팔을 잡아 흔들었다.

    "저놈들이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소장은 느릿하게 모자를 벗었다.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더 까맣게 보였다. 오래된 피로와 공허한 관망의 그늘이 짙었다. 조직부장이 대열부장에게 뭐라고 귀띔했다. 그의 말이 군관과 병사들로 전달됐다.

    끝에 가선 최종배가 9분조의 가수에게 달려왔다. 병사 2명이 가수를 대열부장 앞으로 끌고 갔다. 말뚝에 묶인 옹헤야와 더 가까워진 가수의 손은 떨고 있었다. 대열부장이 그에게 흥이 나는 노래가 무엇인지 물었다. 동시에 조직부장이 소장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놈들, 돌팔이 놀이에 흥이 빠지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공개처형도 대중 선전선동 목적 아니겠습니까?"

    가수가 입을 굳게 다물고 버티자 대열부장이 다시 한번 으르렁거렸다.

    "이놈아, 조직부장 동지께서 노래를 물어보시잖아?"

    가수는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옹헤야를 향해 있었다. 옹헤야의 입은 불어 있고 머리엔 상처도 깊었다. 그러나 눈은 아직 흐리지 않았다. 그 눈으로 마주 보며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마치 그 움직임은 "괜찮아. 내가 이렇게 가는 것도 괜찮아. 그러니 너는 노래를 불러도 괜찮아"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가수는 그의 귀가 들리도록 목에 핏대를 세우며 부르짖었다.

    "옹헤야!"

    그것은 그의 이름이자 노래였고, 노래이자 그의 이름이었다. 옹헤야는 더 선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수 뒤에서 조직부장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지. 옹헤야 그 노래가 잘 어울리겠다. 야, 저놈에게 북을 갖다 줘."

    곧 군인 하나가 둥그런 북을 들고 나타났다. 가수 앞에 놓을 때는 북채도 같이 줬다. 그 북은 낡았고, 군용색 물감이 덧칠돼 있었다. 대열부장이 먼저 위협적인 소리를 군중에게 던졌다.

    "작은 돌이냐, 큰 돌이냐에 따라 네놈들 충성 무게를 판단할 테니까 잘 들어! 구류장 가기 싫으면, 제대로 던져!"

    대열부장이 조직부장 옆으로 옮겨가자 제방 위에서 "다들 준비!"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 군중을 향해 겨눠진 경비대의 총들에서 찰칵— 찰칵— 찰칵- 쇳소리가 맞물려 울렸다.

    모두가 숨을 가두고, "시작!"이라는 구령을 기다리던 그때였다.

    "쾅!" 

    북소리가 먼저 울렸다. 

    공기를 밀어내며 터져 나온 그 한 방의 묵직한 저음이 강가를 때리고 하늘을 울렸다. 그 소리에 가수의 손이 떨렸다. 눈도 떨렸다. 하지만 그는 말뚝에 묶인 옹헤야를 바라보며 두 번째 북을 쳤다.

    쿵 따딱!
    쿵 쿵 따딱!
    쿵 따딱!
    쿵 쿵 따딱!


    그건 안땅장단이었다. 옹헤야의 어머니가 살아생전 즐겨 부르던 민요였다. 그래서 옹헤야의 귀에도 평생 박혀 있던 유일한 노래였다. 돌로 죽이려는 놈들보다 먼저 노래를 주는 친구의 배웅이어야 했다. 의리의 9분조여야 했다. 장단이 돌보다 먼저 옹헤야의 귀에 닿아야 했다. 노래로 얼굴을 때리고, 배를 찢고, 가슴을 뚫어야 했다. 가수는 목청껏 온몸으로 노래를 불렀다.

    옹헤야, 옹헤야
    어절시구 옹헤야
    저절시구 잘도 한다
    옹헤야, 에헤에헤 옹헤야


    고개를 든 옹헤야에게 가장 먼저 날아온 건 노래였다. 돌들은 그 뒤에 선 먼지에 불과했다. 무수히 날아오는 돌들은 살점을 찢고, 핏물을 튀기고, 뼈를 때렸지만, 그것들 속에서도 옹헤야는 앞에서 건네주는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앞집 금순 옹헤야
    뒷집 복순 옹헤야
    서로 만나 옹헤야
    정담한다 옹헤야
    옹헤야 에헤에헤 옹헤야


    그 노래는 어머니의 손이었다. 김치를 찢던 그 부엌의 향기였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우산의 무늬였다. 어머니처럼, 사랑했던 노래였다. 그에게 아픈 건 돌이 아니었다. 그것들보다 더 아플 때도 속으로 불렀던 그 민요였다.

    그래서 그는 죽을 때까지 들을 수 있었다. 찢어진 살 한 조각으로도, 남아서 끝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다 들었을 때. 그는 고개를 떨궜다. 심장이 멎었다.

    그 찰나, 가수가 힘껏 내리친 북채 아래, 둥근 북의 가죽 중심이 찢어졌다.

    "퍽—"

    노래가 끝났다. 돌도 멎었다. 그 순간부터 도성진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있어도 어떤 의미가 없었다. 눈물만이 주르르,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차마 앞을 볼 수 없어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쪽에도 멈춰 설 시선이 없었다.

    그때 보였다. 멀리 강기슭 끝자락, 바람도 멈춘 그 자리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였다. 그 모습은 마치 옹헤야가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저기, 저 나무 보이지?"

    그건 옹헤야가 자기에게 했던 말이었다.

    "내가 먼저 나가면… 너한테만 몰래, 그 비밀을 저 나무 밑에 파묻어 놓을게. 진짜라니까."

    옹헤야의 심장은 멎었지만, 그 말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가슴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막사로 복귀한 수용자들의 대열 속에서 도성진은 혼자 뛰쳐나왔다. 손에는 작은 삽이 들려 있었다.

    그는 달렸다. 숨을 쉬지 않았다. 그저, 약속이 묻혀 있을 그 자리만을 생각하며 파고 또 팠다. 흙이 튀었다. 손등은 달아올랐다. 이마에는 땀에 섞인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옹헤야의 음성이 계속 귀에 들렸다.

    "내가 먼저 나가면… 너한테만 몰래, 그 비밀을 저 나무 밑에 파묻어 놓을게. 진짜라니까."

    진짜로 있었다. 흙을 손으로 밀어내자 그 속에 작은 유리병 하나가 묻혀 있었다. 빛이 없는 밤인데도 그 유리병은 기다린 듯 확실하게 빛나고 있었다.

    도성진은 숨을 멈추며 그 병을 껴안았다. 그리고 뛰기 시작했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몰랐지만 발은 멈추지 않았다. 무너진 벽 뒤, 그림자 하나 없는 모퉁이, 그 밤의 어둠이 가장 짙은 곳. 그는 거기서 멈췄다. 병을 열었다. 안엔 접힌 종잇장이 있었다. 그 종이를 펴는 순간— 눈물방울이 종이 위로 뚝뚝 떨어졌다.

    "얼라반동. 내가 진짜라고 했잖아."

    글씨는 삐뚤고 군데군데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거기엔 옹헤야의 얼굴이 살아 있었다. 약속을 걸었던 새끼손가락도 보였다.

    "먼저 내가 알려주는 15호 생존 방법들을… 하나하나 잘 기억해 둬..."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종이엔 약속만 있는 게 아니었다. 병 속엔 또 하나의 종이가 있었다. 그것은 사진이었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도성진은 무너졌다. 사진 속,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세상 어디보다 따뜻했던 그 미소였다. 지금 이 지옥의 한복판에서 너무도 갑작스럽게 돌아와 있었다. 그는 가슴께를 부여잡고 "엉…" 하고 터지는 소리를 입으로 막았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도성진은 우는 채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김성근이 서 있었다. 말없이 놀란 얼굴로 도성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성진은 김성근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다. 그리고 터지는 오열과 함께, 비명을 토해냈다.

    "아저씨…! 믿고 싶어요…내가 갈 천국이 아니라 이놈들이, 죽어서도 고통받는 그 지옥을 더 믿고 싶어요!"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