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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소장 방에서 두 사람이 동시에 웃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장 말고 다른 한 사람은 조직부장이었다. 조직부장이 그렇게 박장대소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소장은 그게 더 웃겼다. 자기 뇌물 앞에 엎드린 그 낯짝이 통쾌했다.
"아무튼 그래서요—"
조직부장이 말을 이었다.
"시골 온 동네가 밤마다 제 아버지 집에 몰려와선요, 텔레비전에서 천연색 나온다고. 색칠 한 거냐고. 하하하!"
그는 더 앉아 있을 작정인지 모자까지 벗으며 웃음을 이어갔다.
"대문을 잠그니까 한 놈은 임연수를 가져오고 또 어떤 놈은 돼지고기를 들고 왔더랍니다. 히히히!"
"조직부장 동무가 아무튼 크게 효도했구만. 하하하…"
소장은 웃으며 담배갑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 자리를 마무리하려는 웃음이었다.
"더 웃긴 건 뭔 줄 아십니까?"
조직부장이 다시 물었다. 소장은 궁금하지 않았다. 이제는 슬슬 내쫓아야 할 때 같았다.
"맨날 같은 영화, 같은 노래, 똑같은 것만 계속 나오니까요… 제 아버님이 그걸 전축으로 착각한 겁니다."
조직부장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래서 전화 와서 이러는 겁니다. '네가 보내준 구형 텔레비전을 다 봤으니… 이젠 새 텔레비전을 하나 더 보내거라.' 하하하."
"교활한 놈!"
소장이 따라 웃으면서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럼 뭐… 아무튼, 새 텔레비전 하나 또 장만하리다. 아무튼 이번에 조직지도부 검열도 많이 힘썼는데…"
그러자 조직부장이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 저는 6차 당대회 때 조직비서 동지 존함으로 선물 받은 그 한 대면 충분합니다."
"에이, 그래도 요즘 최신 텔레비전이 훨씬 더 좋—"
소장의 말끝이 허공 속에 얼어붙었다. 조직부장의 표정이 천천히 의도적으로 굳어졌다. 입꼬리는 아래로 내려갔고, 눈은 곧바로 소장의 실수를 붙잡았다. 소장은 당황했다. 서둘러 바지 주머니를 뒤져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조직부장이 불쑥 라이터를 들이댔다. 불꽃이 일자마자 그는 비밀을 건네듯 조용히 속삭였다.
"솔직히, 더 좋은 게 사실 아닙니까."
둘 사이에 짧지만 깊은 눈빛이 오갔다. 조직부장이 먼저 크게 웃어버렸다. 그제야 소장도 따라 웃었다.
"아무튼, 난 조직부장 동무랑 끝까지 한배를 타겠소."
"제가 노를 열심히 저을 겁니다."
둘은 그 말 위에 소리를 얹어 다시 크게 웃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곧이어 조직부장은 다시 정색했다. 그자는 웃음이 닫히면 눈에 힘이 몰렸다.
"열 대를 더 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열... 열 대나요?"
"당조직지도부 검열이 제 권한과 부탁으로만 될 일이겠습니까."
그 말을 남기고 조직부장은 홀연히 방을 나갔다. 소장은 자기가 대화를 먼저 끝내려고 했었는데 그 기회까지 앗아간 그놈을 죽이고 싶었다. 소장은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었다. 그가 불붙여준 담배를 입에 물다가 바닥에 획 집어 던졌다. 남겨진 그림자라도 밟듯 군화로 힘껏 비벼 껐다.
"아무튼, 저 새끼. 아무튼, 개새끼. 아무튼, 개새끼야."
그날은 아침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날씨는 흐리지도 맑지도 않았다. 그 애매한 하늘처럼 바람도 이상했다. 움직이지도 않고 정체된 공기가 립석강 기슭을 무겁게 눌렀다. 이른 점심을 마친 뒤, 분조장들이 일제히 작업반장에게 불려갔다. 잠시 후 돌아온 검은손의 두 발은 평소보다 더 무거웠다. 주둥이가 물었다.
"뭐 때문이래요?"
"오후 작업 안 한대."
그러자 모두의 얼굴에 조금씩 밝은 기운이 돌았다. 그런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검은손의 다음 말이 그 웃음을 지웠다.
"사상투쟁 회의 한대."
그 말에 주변이 고요하게 침잠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사회에서야 '사상투쟁'이라 하면 회의고 비판일 뿐이지만 15호에서는 달랐다. 여기서 사상투쟁은 이미 사상이 제거된 자들을 모아 목숨을 검열하는 절차였다. 그래서 '사상투쟁'이 아니라 '사생투쟁'이었다. 이번엔 어느 분조가 불릴지, 누가 구류장에 갈지, 혹은 누가 사라질지 다들 불길한 예감에 젖어 있었다. 뒤쪽에 앉아 있던 김성근이 처음으로 노여워했다.
"야, 진짜 이상하꾸마. 반동이라면서 도대체 무슨 사상을 가지고 투쟁하겠다는 검둥?"
도성진이 조심스레 말했다.
"생활총화도 하잖아요."
그 말에 김성근의 눈이 번뜩이며 도성진을 노려봤다.
"생활한 적도 없는데, 뭔 총화임둥?"
"여기선 강제노동이 생활이에요…"
"야, 여긴 어쩜 그리 사람 약 올림둥? 지옥도 지옥이라 하지, 생활이라곤 아니 하꾸마."
주둥이는 김성근을 향해 연신 "목소리 낮춰라"는 손짓을 보냈다. 도련님은 도성진을 향해 눈을 흘기며 "말 시키지 마"라는 경고를 보냈다. 모두가 성근이 앞에선 입보다 눈과 손이 더 많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사람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구읍리에 이렇게 많은 수용자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낯선 얼굴들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도성진은 처음 보는 이들이 자꾸자꾸 늘어나는 풍경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저기… 아이들도 왔어요."
그가 손짓한 곳에는 아주 어린 아이들의 무리가 서 있었다. 놀라운 건 그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질서정연했다. 떠들거나 밀고 당기며 장난치는 아이도 보이지 않았다. 그 옆에선 보위원 군복을 입고 권총을 찬 학교 선생이 버티고 서 있었다.
도성진이 전부로 알았던 독신자세대와 가족세대는 일부에 불과했다. 노인들은 노인들끼리, 장애인들은 장애인들끼리, 그들만의 속도와 질서로 몰려왔다. 그들 사이로 2월 16일 가족세대 구역에서 보았던 제 또래의 돌대가리도 눈에 띄었다. 그를 중심으로 더 어려 보이는 아이들이 수두룩했다.
도성진은 문득 얼라반동이라는 별명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김성근도 놀랐는지 기어이 한 마디를 뱉었다.
"이리 반동이 많슴둥? 이게 인민이지, 어디가 봐서 반동임둥?"
인민이란 그 표현답게 실내에서 일하는 ‘행운아’들도 모두 나와 있었다. 진료소의 간호사 신숙자, 보위원 식당에 있어야 할 서련화도 있었다.
가수는 도성진에게 무리를 가리키며 재봉반, 기름공장, 탁아소와 유치원, 목공소, 잠업반... 끝없이 설명했다. 강줄기를 따라 좌우로 길게 펼쳐진 인파 속에 남녀 독신자세대조차 묻혔다.
2월의 혁명화해제 행사를 왜 오전과 오후로 나누는지 알 것 같았다. 장찌엔의 2분조는 군중의 틈에 휘말려 존재조차 흐려졌다. 누가 누구인지, 누가 더 죄가 무거운지 가벼운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었을 뿐이었다.
“왜 이렇게 다 모였지?”
도성진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표정엔 신기함이, 눈빛엔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여있었다. 하지만 그 익숙한 광경 속에 선 9분조원들의 얼굴은 침울했다. 서로 마주 보는 눈빛에서 낯선 긴장이 묻어났다.
그때였다. 군중 속 어딘가에서 웅성거림이 번졌다. 바람처럼 퍼진 그 소리는 곧 파도처럼 몰려와 도성진의 무릎까지 치고 올라왔다.
"…풍차다!"
그 한마디에 모든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정말로, 강 건너편 언덕길 아래로 풍차 한 대와 지프차 두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풍차다…" 그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9분조원들은 이제 말을 잃은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풍차는 군중 앞에서 멈췄다.
문이 열렸다. 먼저 두 명의 군인이 내렸다. 그들은 우선 임시 연탁(演卓)을 내렸다. 보위원들이 설 자리를 만드는 것 같았다. 이어 기다란 나무 말뚝을 내려 땅에 고정시켰다. 그런 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수용자가 끌려 나왔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다시 커졌다.
그 순간. 정면을 주시하던 검은손이 먼저 몸을 획 돌렸다. 그는 두툼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돌아서는 주둥이도, 도련님의 얼굴도 하얗게 질려 있었다. 눈을 비비며 거듭 확인하던 가수의 입에선 신음이 새어 나왔다.
"…설마…"
그들이 차마 꺼내지 못한 그 말이 도성진의 입에서 터졌다.
"아저씨. 옹헤야 아저씨!"
풍차에 실려 온 죄인은 옹헤야였다. 그의 상징이었던 금발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머리 위엔 한 오리의 금빛도 남겨져 있지 않았다. 마치 그의 존재부터 먼저 지워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말뚝에 묶일 때도 한번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두 팔이 기둥 옆으로 단단히 묶이고, 밧줄이 피부를 조일 때도 그는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리고 자기 발아래, 립석강 강둑 위에 가득한 군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따라 바람처럼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9분조에게서 멈췄다.
순간, 9분조는 군중 속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돌아서 있던 검은 손도, 쭈그리고 앉아 몰래 눈물을 훔치던 도련님도, 고개를 숙였던 가수와 주둥이도, 성진이까지 모두가 발뒤꿈치를 들어 올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가락 위로 몸을 올려세웠다. 그 일어섬은 눈물이었다. 쳐드는 손이었다. 무엇보다 기억의 약속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