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법 조문에 따라 구형과 양형 엇갈려'서류 행정' 집중, 안전 예산은 로펌 자문비로 전용반복되는 대형 참사에 "예방 본질 잃었다" 비판"면책에 쏟는 예산, 안전 투자로 전환해야" 지적
  • ▲ 법원. ⓒ뉴데일리DB
    ▲ 법원. ⓒ뉴데일리DB
    도입 당시 실효성 논란이 일었던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시행 4년 만에 부산 지역에서도 첫 실형 선고 사례가 나왔다.

    지난 2023년 1월 부산 중구의 한 생활형 숙박시설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가 타워 크레인에서 떨어진 벽돌 더미에 맞아 숨진 사고와 관련해 원청 건설사 대표가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가 인정돼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된 것이다.

    중처법 도입 취지에 따라 고용인에게 엄격한 근로자 안전조치 책임을 지도록 한 판결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선 현장에서는 사법부의 처벌 의지와 처벌 강화가 실질적인 사고 예방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27일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중처법 기소 건수는 시행 첫 해인 2022년 11건에서 지난해 97건으로 4년 만에 약 9배나 증가했다. 사고 발생 시 경영책임자를 우선 기소 대상으로 삼는 기소 강화 추세가 뚜렷해진 결과다.

    반면 법정에서의 유죄 입증과 양형은 다른 양상을 띤다. 기소 건수는 급증했으나 실제 선고 형량은 검찰 구형에 미치지 못하거나 집행유예에 그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법 조문의 추상성과 사고와 의무 위반 사이의 엄격한 인과관계를 요구하는 사법부의 판단 기준이 기소 내용과 배치되는 결과다.

    이러한 사법적 불확실성은 기업의 자원 배분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영진이 현장의 실질적인 안전 설비 투자보다 사법 리스크 관리를 위한 법률 자문과 서류 체계 구축에 예산을 우선 배정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안전 예산이 사고 예방이 아닌 사후 법적 대응 비용으로 전환되는 구조적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현행 중처법이 예방이라는 본질적 목적보다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부작용에 주목한다. 처벌 기조는 강화됐으나 현장의 실질적 안전 확보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중처법이 도입 취지와 달리 실효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원인이 되고 있다.
  • ▲ 검찰. ⓒ뉴데일리DB
    ▲ 검찰. ⓒ뉴데일리DB
    ◆'서류'에 갇힌 안전 예산 … '대전 안전공업 참사'가 남긴 교훈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중처법 관련 1심 판결 98건 중 무죄는 10건에 달한다.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낮은 형량이 선고되며 증가하는 기소와는 대조적으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학계에서는 근본적인 원인은 '법 자체의 불명확성'이라고 지적한다.

    중처법 제4조(안전보건확보의무)는 경영책임자에게 '체계 구축 및 이행'을 명시한다. 다만 '실질적 구축'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없다. 검찰은 이를 포괄적 의무 위반으로 판단해 제6조에 따른 중형을 구형하는 추세다. 반면 법원은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엄격한 인과관계를 요구하며 기소 내용을 배척한다.

    이러한 괴리는 현장에서 더욱 뚜렷하다. 지난 19일 14명의 사망자를 낸 대전 안전공업 화재 참사와 관련해 유증기와 기름 찌꺼기 등 개선 요구에도 불구하고 위험 요인이 방치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처벌 강화 기조가 기업들의 서류 상 체계 구축에 집중하는 결과로 이어지며 재해 예방으로 직결되지 않는 법안의 한계를 드러냈다.

    지난 1월 선고된 시설관리업체 A사와 건설업체 B사 사건에서 법원은 공통적으로 "형식적 컴플라이언스가 아니라 실질적 작동 여부가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서류상 미비가 있더라도 사고와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봤다.

    기업 총수가 기소된 '1호 사건'인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에게도 지난 2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중처법상 경영책임자는 기본적으로 대표이사"라며 대표이사가 아닌 자를 경영책임자로 인정하려면 의무 이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구체적 지시가 입증돼야 한다고 전했다. 실질적 지배력만으로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취지다.

    명확한 양형 기준의 부재에 따라 유사한 사안을 두고도 실형과 집행유예는 엇갈린다. 이에 중처법은 기업이 '법률 방어'에 치중하게 만들어 '예방'이라는 본질을 놓쳤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현장에 투입될 예산이 대형 로펌의 자문과 서류 작업에 사용되며 기업의 사법 리스크 관리비로 전용된다. 전문가들이 중처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고 '유명무실한 법안'이라 말하는 이유다.
  • ▲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감식반이 25일 오전 대전 대덕구 문평동 안전공업 공장 화재 현장으로 5일차 화재 현장 감식을 위해 진입하고 있다. ⓒ뉴시스
    ▲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감식반이 25일 오전 대전 대덕구 문평동 안전공업 공장 화재 현장으로 5일차 화재 현장 감식을 위해 진입하고 있다. ⓒ뉴시스
    ◆"면책에 쏟는 예산, 안전 투자로 전환해야"… 본질 잃은 중처법

    이런 사법적 혼란과 현장의 안전 공백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처법의 설계와 집행 과정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급증하는 기소와 낮은 형량이 대조를 이루는 현상에 대해 "그간 사법부가 산업 안전 사건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취해 온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법원의 판단 기준이 변화하려면 행정부의 철저한 관리 감독이 선행돼야 한다"며 사법부 역시 노동 안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법 제정 취지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릴 때 중처법의 실질적인 실효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기업들이 안전 설비 투자보다 사법 대응에 재원을 집중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 교수는 "법의 취지는 점점 왜곡되고 기업들은 실질적인 위험 제거보다 경영책임자의 면책을 위한 방안 마련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현장 안전에 쓰여야 할 예산이 사법 리스크 회피 비용으로 쓰이는 것은 명백히 엉뚱한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지금과 같은 구조는 법의 예방 기능을 살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에도 불필요한 타격만 가중 시킨다는 비판이다. 이 교수는 "면책을 위한 서류 작업이 아닌 현장의 실질적인 안전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