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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말처럼 4월 14일은 수용자들에게 일하기 싫은 날이었다. 내일이면 쌀밥 먹는 김일성 생일이기 때문이었다. 2월의 명절은 특식의 의미가 크지 않았다. 출소하는 자들은 나가면 더 잘 먹고, 다시 갇힌 자들은 먹고도 화나기 때문이었다. 날씨까지 일년 중 제일 추울 때라 수용자들 표현을 빌린다면 최고로 재수 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4월의 명절은 달랐다. 밥알도 세어볼 수 있을 만큼 오로지 특식만 생각됐다.
작업장엔 그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더구나 주둥이의 만담 공연이 불 질러놓은 흥에 넘쳤다. 사방에서 멍! 멍! 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홍신영은 그 소리를 외치는 가족세대 여자들의 입을 틀어막느라 진땀을 뺐다. 최종배도 위협을 주다가 돌아서 옷고 말았다.
그러나 그 전체 수용자들 중에서 단 한 사람만은 달랐다. 주둥이 만담 때도 오직 그 한 사람만 웃지 않았다. 남들이 기다리는 내일도 혼자서 거부하고 밀어낼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는 옹헤야였다. 해는 이미 산등성 너머로 넘어갔고 푸르스름한 어둠이 산자락 아래부터 차오르고 있었다.
"작업 중단! 막사 복귀 준비!"
그 외침이 산을 타고 흘렀다. 옹헤야는 장갑을 벗었다. 오른쪽과 왼쪽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던졌다. 바위 아래로 하나, 풀숲 너머로 하나, 산의 침묵 속으로 그가 스스로 남긴 단서들이었다. 이어 목에 감았던 수건도 입에 물었다. 이빨로 찢었다. 그 조각들은 작아도 그 안엔 그가 갇혀 살았던 하루하루가 배어있었다.
그 축적의 시간들을 사방으로 던졌다. 나무 아래, 바위틈, 발아래 흙 위. 그의 체취와 존재는 그렇게 흩어졌다. 수용소를 떠나기 전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정치범의 삐라 같은 것이기도 했다.
작업이 끝나자 수용자들의 발걸음이 줄을 지어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2월 때처럼 역시나 그 시간에 풍차가 어김없이 나타났다. 남들은 환호했지만 옹헤야는 뚫어지게 노려보기만 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취침 준비"라는 구령이 들릴 때까지 옹헤야의 그 눈은 계속 불타고 있었다. 다시 한번 "취침 준비!" 외침이 들리자 옹헤야는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탁하고 힘껏 쥐었다. "우지직." 마른 가지가 부러지는 그 소리가 운동장에 울렸다. 막사로 늦게 들어오는 옹헤야에게 미꾸라지가 물었다.
"어디 갔었어?"
"뒷산 좀 보고 왔어."
"이 시간에? 산은 왜?"
옹헤야는 점검이 끝나자마자 바로 누워 코를 골았다. 그 소리는 다른 날보다 유달리 컸다. 하지만 누구보다 깨어있는 눈이었다. 미꾸라지가 잠꼬대로 신음을 내면 격술가의 잠버릇처럼 돌아누우며 배를 걷어찼다. 자다 깨며 미꾸라지는 온 밤 시달렸다. 끝내 지쳐 새벽 3시경에는 완전히 시체처럼 늘어졌다.
모두가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그 시간에 옹헤야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담요를 젖힐 때나 바닥 위에 발을 가만히 올려놓을 때도 그는 공기를 다루고 굴리듯 했다. 막사 밖을 빠져나와 그의 그림자가 향한 곳은 2작업반 관리실 앞마당이었다. 물자 운반용 5톤 풍차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옹헤야는 먼저 장작 창고 구석으로 갔다. 거기서 미리 준비했던 작은 널빤지와 봉지 하나를 찾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운전병이 차 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 숨어 있었다. 곧바로 시동이 걸렸다. 둔탁한 진동이 트럭 전체를 일으켜 세웠다. 처음엔 깊은 기침 같다가 이내 규칙적인 숨소리로 바뀌었다. 디젤 엔진 특유의 고르지 못한 리듬이 바닥 너머로 울렸다.
뒤이어 술에 절어 흔들리는 그림자 두 개가 어둠을 끌고 나타났다. 후방국 군인과 최종배였다. 군화가 비틀거리며 땅을 찍었다. 옹헤야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트럭 뒤편 밑으로 단 한 번에 몸을 말아 넣었다.
그는 먼저 비닐봉투에서 두꺼운 장갑을 꺼냈다. 이어서 널빤지를 몸에 붙이고 어깨의 끈도 조였다. 그가 몸을 프레임에 고정하기 위해 만든 사람과 기계를 연결하는 가느다란 생명줄이었다.
트럭의 하부는 이미 뜨겁기 시작했다. 시동이 걸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기관의 열기는 금속 구조물을 타고 급속히 퍼졌다. 특히 엔진 뒤쪽에서 이어지는 배기 파이프는 숨 쉴 틈 없이 달아올랐다. 연료탱크 보호판에는 잔열이 차올랐다.
옹헤야는 서스펜션 위에 몸을 끼워 넣었다. 등이 철판에 닿자 소스라쳐 놀랐다. 뜨거운 건 열기만이 아니었다. 트럭 전체가 덜컹하고 한 번 들척일 때마다 그는 마치 화물 중량의 일부가 된 것처럼 철에 맞물려 흔들렸다. 팔로 버티고 복근으로 끌어당겼다. 허벅지를 프레임과 연료탱크 사이에 틀어박았다. 손으로는 어깨끈을 걸고 고정했다. 그 위에 다시 허리띠를 감아 자신을 '기계의 일부'로 묶었다. 숨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는 감시탑과 막사를 번갈아 바라봤다. 자기 침대가 비었다는 걸 눈치챈다면 경비병들은 즉시 막사 주변을 봉쇄할 것이다. 그러면 트럭도 출발을 막을 것이고 수용소 전체가 멈출 것이다. 그때였다. "트드득" 하며 시동이 불안하게 떨더니 뚝 멎었다.
"왜 그래?"
최종배가 물었다.
"또 꺼졌습니다. 잘 걸렸었는데…"
운전병이 시동을 다시 걸었다. 철컥. 철컥. 그 소리는 마치 시간이 헛도는 소리 같았다. 무언가 결정되어야 할 순간이 계속 미끄러지고 있었다.
"오늘 못 가는 거 아니야?"
조수석의 말이 튀어나오자 최종배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럼 더 마시고 가면 되지."
그 사이, 군화가 다시 보였다. 운전병이었다. 범퍼가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가 시동 장치를 점검하더니 소리쳤다.
"중위 동지, 올라가서 좀 밟아주시겠습니까?"
후방국 군인이 조수석에서 운전석 쪽으로 무게를 옮기자 차체도 흔들렸다. 그가 쓸데없이 페달을 밟는 소리도 바닥에 닿았다.
"까먹을 뻔했어. 종배야. 영순이가 너한테 인사 전하랬어."
그 말과 동시에 최종배의 군화가 옹헤야의 눈앞에서 멎었다.
"잘 있대? 보고 싶긴 하다…"
"자식, 그래도 첫사랑인데… 편지 좀 해라. 혹시 알아? 다시 시작할지…"
"그럴 일 없어. 영순이는 그대로인데… 내가 많이 더러워졌어."
최종배의 목소리는 뿌옇게 갈라져 있었다. 운전병이 스타팅 핸들을 엔진 앞에 끼우고 돌렸다. 금속이 갈리는 소리가 차체 안으로 깊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이윽고 '부릉'— 하고 시동이 걸렸다. 철컥. 쇳소리는 이제 범퍼를 닫는 소리로 바뀌었다. 운전석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들렸다.
"갈게."
"잘 가."
5톤짜리 트럭은 짐승이 깊게 숨을 들이쉬는 것처럼 둔탁한 진동으로 차체 아래를 훑고 지나갔다. 그 밑에는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최종배는 풍차가 남기고 간 매연 속에서 흔들거리며 혼자 오래 서 있었다. 태평하게 잠든 막사를 심술궂게 쳐다봤다. 다행히도 독신자 막사 안은 기상 소리가 울리기 전까지 어떤 소음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가 곯아떨어진 그 속에서 미꾸라지는 무심히 눈을 떴다. 자면서도 감시반장다웠다. 주변을 힐끗 보고 눈을 감았다. 그러다 서서히 다시 눈을 떴다. 그 눈이 점점 커졌다. 곧장 몸을 일으키며 담요를 확 젖혔다. 베개 하나만이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막사 문을 빠끔 연 미꾸라지가 캄캄한 운동장에 얼굴을 내밀었다.
"옹헤야!"
대답은 없었다. 달빛이 서늘하게 운동장을 덮고 있었다. 그 빛 아래 아무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먼저 일어난 거지?"
미꾸라지는 밖으로 나와 걸어갔다.
"맞지? 어디서 오줌 싸는 거지?"
그러나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그 속도가 높아지는 만큼 목소리도 커졌다.
"숨어 있지 마! 나 놀리지 마! 내 목소리 들리잖아! …대답해!"
그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막사의 벽을 돌아,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이 새끼야!"
목소리가 갈라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언제부턴가 눈물도 따라오고 있었다.
"이 개새끼야…!"
끝내 그가 가장 원하지 않았던 단어가 그 입에서 흘러나왔다.
"…탈주범이다!!!"
그 외침은 새벽하늘을 찢고 산등성이까지 날아갔다. 잠시 후 사이렌이 울렸다. 그 순간 산등성이가 일어났다. 잠들었던 군인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죽은 듯 조용하던 막사들이 모두 깨어났다. 무기 창고의 자동소총들도 죄다 장전됐다. 철모를 움켜쥔 손들과 발에 감긴 군화끈이 하나씩 고정되고, 사납게 울부짖는 개들이 목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운동장 집합!!"
최종배의 우렁찬 술기운이 막사를 찢고 운동장을 두드리며 뒷산을 뚫고 넘었다. 수용자들은 막사에서 뛰쳐나왔다. 신발도 미처 신지 못한 발에 찢어진 옷자락이 늘어졌다. 밖에서 대기하는 경비병들의 몽둥이가 나오는 순서대로 사정없이 찍어댔다. 작업반장이나 신입이나 서열도 나이도 죄목도 그 순간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가족세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른 리도 마찬가지였다. 요덕의 계곡 전체가 흔들렸다. 운동장에 정렬한 수용자들은 선 자리에 박힌 듯 차렷 자세로 섰다. 그들 앞에는 기관총구들이 정조준하며 누웠다. 눈동자도 굴리는 게 허용되지 않는 엄격한 그 감시 속에서도 속삭임 소리들이 들렸다.
"누가 탈출했어?"
"몇 분조야?"
"우리 작업반 맞아?"
"다른 리 아냐?"
수용자들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이 알고 있었다. 미꾸라지는 경비대 군관 앞에서 손을 길게 뻗었다.
"저 뒷산이요. 이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뒤에서 쫓다가… 숨이 차서… 그만…"
정말로 뒷산에서 옹헤야의 흔적들이 발견됐다. 옹헤야는 미꾸라지의 은인이었다. 만약 수색견들의 입에 물린 것이 없이 내려왔다면 그는 최초 신고자에 수색 혼란 의심이 덧붙어 큰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미꾸라지는 용서가 안 됐다. 운동장에 정렬한 수용자들 앞에서 감시반은 경비대의 군홧발에 몰매를 맞아야 했다. 그걸 본 검은손이 뒷사람을 향해 고개를 반쯤 돌렸다.
"옹헤야다."
그 한마디는 맨 마지막의 김성근까지 이어졌다가 다시 물어보며 앞으로 되돌아왔다.
"그 자식이 우릴 살리려고… 그래서 저 감시반에 자진해서 갔던 거야."
검은손이 울먹이며 한 그 말은 더디게 흘러 마지막 김성근의 가슴에 깊에 스며들며 거기서 멈추었다. 태양이 머리 위에 떠올랐어도 운동장은 오히려 더 얼어붙은 듯 팽팽했다. 모든 분조가 새벽부터 한 자세로 서 있었다.
최종배의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운동장을 긁었다.
"15호 탈주범 관련 규칙!"
그의 말은 목소리가 아니라 법이었고 집행이었다.
"첫째! 탈주범은 체포 즉시 공개처형한다! 둘째! 탈주범이 속한 조는 연대 책임으로 종신형 선고! 셋째! 탈주범이 잡힐 때까지 전체 수용자들에게 음식도 잠도 허용되지 않는다!"
한 마디마다 목숨이 더 조여왔다. 최초 신고자인 미꾸라지만 남고 감시반은 전원 체포되어 구류장으로 끌려갔다. 운동장에 정렬한 분조들에선 하나둘 수용자들이 쓰러졌다. 자기 조원들을 독려하던 분조장들도 해가 기울어지자 끝내 못 버티고 넘어졌다. 그때마다 경비대원들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밤이 깊어지자 독신자 관리소 운동장은 검은 연기로 가득 찬 전장 같았다. 무릎이 꺾이는 자, 어깨가 떨리는 자, 눈이 풀린 자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군인들은 구타했고 수용자들은 묵묵히 견뎠다. 그 와중에 검은손이 2열 종대로 선 9분조를 훑어보았다. 그 한 사람 한 사람 옆을 지나치며 위협조로 말했다.
"만약… 우리 9분조에서 다른 분조보다 먼저 무너지는 놈 있다면 내 주먹에 박살 난다."
검은손은 좀 더 과격하게 말했다.
"우리 9분조는 끝까지 버틴다."
말 한마디가 쇠말뚝처럼 가슴 깊이 박혔다. 시간이 흘렀다. 새벽이었다. 도성진과 가수가 서로의 몸을 붙였다. 떨어지면 무너질까 봐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숨을 나눴다. 주둥이와 도련님도 손을 잡았다. 그날의 손은 서로의 마지막 체온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김성근은 눈을 감고 서 있었다. 꿋꿋이 무게를 견디는 기둥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 뿌리내린 부러지지 않는 장송처럼.
그날 9분조는 그 운동장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았다. 그 버텨준 힘이 어쩌면 작게나마 보탬이 되었던 걸까. 옹헤야는 쉽게 체포되지 않았다. 만약 탈주범을 잡았다면 관리소는 그 처참한 최후를 전시하듯 과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달이 다 되도록 15호는 침묵했다. 그 긴 시간, 신출귀몰의 대남공작원 탈출사건은 15호의 역사 속에 깊이 뿌리 내렸다.※ 다음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