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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싱가포르·필리핀 순방 귀국 후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집을 팔고 사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것이 이익이나 손실이 되게 할지는 정부가 정한다."
최근 동남아 순방 중 싱가포르를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의 이 발언은 향후 국내 부동산 정책의 변화 방향을 가늠하게 한다. 부동산을 자산 증식의 수단이 아닌 '사는 곳'으로 바라보고 투기적 보유가 경제적 이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제와 금융 시스템 전반을 손질하겠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싱가포르 주택개발청(HDB)의 공공주택 시스템을 주거 안정의 참고 사례로 높이 평가했지만 한국의 시장 구조와 자산 형성 방식, 토지 여건 등을 감안하면 싱가포르 모델은 세제 몇 가지를 손 보는 수준만으로 구현할 수 있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이 대통령이 주목한 싱가포르 모델의 첫 번째 축은 촘촘하게 짜인 수요 억제책이다. 싱가포르는 다주택자와 외국인에게 고율의 추가 취득세(ABSD)를 부과한다. 외국인은 주택을 취득할 때 60%의 ABSD를 부담해야 하며 싱가포르 국민 역시 두 번째 주택을 살 경우 20%의 세율이 적용된다.
여기에 단기 매매 차익을 억제하기 위한 보유 기간별 매도 인지세(SSD)도 병행된다. 2025년 7월4일 이후 취득한 주택은 △1년 내 매도 시 16% △1~2년 12% △2~3년 8% △3~4년 4%의 SSD가 부과된다.
보유 단계의 과세 체계도 분명하게 갈린다. 싱가포르는 연간임대가치(AV·Annual Value)를 기준으로 실거주 주택에는 낮은 누진 세율을, 비거주 및 임대용 주택에는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한다.
1주택 실거주자는 상대적으로 보호하되 투자 목적의 보유에는 보다 무거운 비용을 지우는 구조다. 이런 점에서 싱가포르식 세제는 향후 한국형 보유세 개편 논의에서 하나의 참고 사례로 거론될 만하다.
다만 제도의 겉모습만 닮는다고 해서 시스템까지 옮겨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 가로막는 구조적 장벽은 생각보다 훨씬 견고하다. 무엇보다 한국과 싱가포르의 토지·공급 구조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싱가포르는 거주 인구의 약 80%가 HDB 공공주택에 살고 있으며 2024년 기준 자가점유 가구 비율은 90%에 달한다. 이러한 성과를 가능케 한 배경에는 강한 토지 공공성을 바탕으로 정부가 공급의 주도권을 쥔 싱가포르 특유의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토지의 공공 보유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민간 소유 비중이 높다. 땅은 공공이 보유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주택을 대규모로 확대하려 해도 민간 토지 확보 과정에서 보상비 부담과 재산권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싱가포르식 공급 체계를 국내에 그대로 이식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원 조달 방식 역시 한국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싱가포르 주거 시스템의 또 다른 축인 중앙적립기금(CPF)은 55세 이하 기준 근로자와 사용자가 합쳐 임금의 37%를 적립하는 구조다.
이 가운데 일반계정(OA) 적립금은 HDB 구입과 각종 주택 관련 비용에 활용할 수 있다. 국가는 집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집을 살 수 있는 자금 형성 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하는 셈이다.
민간 대출과 가계부채에 크게 의존해 온 한국 시장에서 이런 구조를 그대로 도입하는 일은 적지 않은 제도적 저항과 시장 충격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더 큰 장벽은 한국 가계 자산이 실물자산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점이다. 주택 가격의 변동이 가계의 소비 심리와 자산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인 만큼 싱가포르 모델의 핵심인 저렴한 공공주택의 대량 공급은 기존 주택 보유자들에게 자산 가치 하락 우려를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결국 이 대통령이 시사한 정책 기조의 변화가 현실성을 확보하려면 세제 개편이라는 기술적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 주택을 투기 대상이 아닌 거주 수단에 가깝게 다루는 정책 체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이른바 '주거 패러다임의 전환'이 실제 시장의 저항을 넘어 현실화할 수 있을지 이제 시선은 정부가 내놓을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제도 설계의 디테일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