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 여파 … 중동산 원유 급감에 원유 확보 경쟁 격화"분쟁 길어질수록 러시아산 원유·정제유 의존도 확대"
  • ▲ 러시아 지역에서 원유를 뽑아올리고 있는 장비. ⓒ연합뉴스.
    ▲ 러시아 지역에서 원유를 뽑아올리고 있는 장비. ⓒ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중동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러시아산 석유의 몸값이 급등하고 있다. 국제 시장에서는 한동안 할인 거래되던 러시아산 원유가 오히려 웃돈을 얹어 거래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7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동 전쟁으로 원유 공급 불안이 커지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의외의 수혜자'로 러시아가 부상하고 있다. 저유가 흐름이 뒤집히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에너지 시장에서 자신감을 되찾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인도 시장에서 러시아산 원유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는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 가운데 하나로, 최근 중동산 원유 공급이 줄어들자 러시아산 원유 확보에 적극 나서는 분위기다.

    그동안 러시아산 원유는 미국과 서방의 제재 영향으로 브렌트유 대비 큰 폭 할인된 가격에 거래돼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역전되며 일부 트레이더들이 러시아산 원유를 브렌트유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막히면서 중동산 원유 공급이 급감했고, 에너지 수입국들 사이에서 원유 확보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제유가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 유가 기준인 브렌트유 5월 인도분 선물 가격은 지난 6일 하루 동안 8% 넘게 상승해 배럴당 92.62달러로 마감했다. 주간 상승률도 약 28%에 달했다.

    에너지 공급 불안이 커지자 미국도 러시아산 원유 제재 완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최근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할 수 있도록 일부 제재를 완화한 조치를 언급하며, 유가 안정을 위해 추가 제재 완화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석유 데이터 업체 케이플러의 나빈 다스 선임 애널리스트는 "분쟁이 장기화할수록 세계는 러시아산 원유와 정제유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도 이 같은 상황을 기회로 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이란 공격과 서방의 러시아산 석유 제재가 유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며 "이제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 역시 이란 전쟁 이후 러시아산 에너지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고 확인했다.

    다만 중동 산유국들은 고유가 상황의 수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걸프해역을 통한 원유와 천연가스 수송이 사실상 차단되면서 쿠웨이트 등 일부 중동 국가들은 생산 감축 소식까지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유럽의 에너지 정책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여왔지만, 공급 불안이 지속되면 현실적으로 입장을 재검토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중동 위기로 인해 일부에서 러시아 에너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면서도, 러시아 의존 축소 정책을 되돌리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