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對中 전선 짜는데 … 통일부는 훈련 흔들어대통령실 "카드 아니다"라는데 통일부는 군불정동영 '조정 가능'에 야외 기동훈련 40건→5건"훈련을 대화 변수로 다룬다면 이중 비용 치러"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40회 국무회의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박수치고 있다. ⓒ뉴시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40회 국무회의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박수치고 있다. ⓒ뉴시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정부 들어 한미 연합훈련을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한 변수로 취급하려는 시도가 감지되면서 '국익 중심 실용 외교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남북 대화가 가장 활발했던 김대중(DJ)·노무현 정부 등 과거 진보·좌파 정부조차 연합훈련만큼은 타협 불가한 '상수'로 뒀던 원칙이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미국 백악관은 지난 5일(현지시각) 국가안보전략(NSS)에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으며 한국과 일본을 사실상 대중(對中) 억제의 최전선인 '제1도련선 방어'의 핵심축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 안에서 연합훈련을 둘러싼 메시지 충돌이 반복되자 북한과 중국 등 적대 세력에 의도치 않은 신호를 주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위성락은 "카드 아니다" 선 긋는데 … 통일부는 '군불'

    10일 정치권과 외교가에 따르면, 국가 안보를 둘러싼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와 주무 부처는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의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을 재현하듯 메시지 충돌을 되풀이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방어적 훈련의 연례 훈련인 한미 연합연습을 의제화하지 않으려 하지만, 통일부가 거듭 선제적으로 의제화하고 나서면서 혼선이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아프리카·중동 4개국 순방 중이던 지난달 24일 전용기 안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긴장 완화 노력의 하나로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 등을 검토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평화 체제가 구축되면 연합훈련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도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남북 대화는 추진하되 "한미 연합훈련의 경우 카드로 직접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처럼 위 실장이 연합훈련을 대북 협상용 카드로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며 진화에 나서게 한 장본인은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재명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으로 재등장한 정동영 장관이다.

    정 장관은 연합훈련 조정이 남북 및 미북 대화 재개의 핵심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오고 있다.

    북한 김정은의 친동생인 김여정이 지난 7월 28일 담화에서 한미 연합연습을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이라고 규정한 당일, 정 장관은 "(김여정의) 담화에도 적시돼 있듯, 한미 연합훈련의 조정이 남북 관계의 가늠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정부의 의지에 따라 조정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정 장관의 발언이 나온 직후 군은 8월 한반도 방어를 위한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에서 애초 계획된 야외기동훈련(FTX) 40여 건 중 20여 건을 폭염 등을 이유로 9월로 연기했다. 실제로 이 가운데 5건만 시행한 것으로 확인됐고, 군 내부에서도 "정 장관의 메시지가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왔다.

    대통령실의 부정에도 정 장관의 기류는 통일부 내에서도 재확인되고 있다. 윤민호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8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미 연합훈련은 군사적 측면뿐 아니라 남북 관계와 한반도 정세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다"면서도 "앞으로도 조건과 환경이 되면 이러한 부분이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부 내 혼선이 연합훈련을 사실상 '협상용 옵션'으로 전락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에 대해 전직 안보 관료는 뉴데일리에 "연합훈련을 중단·축소와 남북 대화를 맞물리기 시작하면 앞으로도 계속 훈련을 대화 조건으로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은 비핵화를 언급조차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데, 그런 '위장 평화'에 훈련을 중단하거나 연기해 주는 건 논리적 모순"이라며 "대북 협상이 진정한 평화를 목표로 한다면 비핵화가 전제돼야 한다. 비핵화 없는 평화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 정동영 통일부 장관. ⓒ이종현 기자
    ▲ 정동영 통일부 장관. ⓒ이종현 기자
    ◆DJ·盧도 훈련은 흥정 대상 아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전례 없는 대북 포용 정책을 펼쳤지만,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거나 축소하지는 않았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6·15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지만, 당시 한미 연합연습인 RSOI·FE(전시증원연습·폴이글)와 UFL(을지포커스렌즈) 등은 모두 계획대로 진행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10·4 선언)과 개성공단 가동 등 성과를 내면서도 한미 연례훈련인 UFL과 RSOI·FE를 예정대로 실시했다.

    당시 청와대는 북한의 강한 중단 요구에도 '대화는 대화, 훈련은 훈련'이라며 안보를 협상 불가한 상수로 분리했다. 정 장관이 노무현 정부의 통일부 장관으로서 과거 진보 좌파 정부가 지켰던 안보의 마지노선까지 허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부가 연합훈련에 유연성을 두려는 시도 자체가 북한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은 헌법 3·4조(영토 조항 및 평화통일 조항) 개정, 국가보안법 및 통일부 폐지, 국가정보원 폐지, NCG(핵협의그룹) 해체, 비핵화 요구 철회 등 대한민국 헌정 질서와 안보 체계 근간을 흔드는 조건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정부가 북한의 조건을 모두 수용한다고 해도 북한이 남북 대화에 나설지는 미지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익명을 요청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은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면 북한 주민들이 현실을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며 "그래서 김정은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주창하고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전술도로와 철책선을 설치하고, 지뢰를 매설하는 등 이른바 '국경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한국의 유화 조치가 교류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요구는 남북 대화 재개가 목적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시험하며 '남남 갈등'을 유발하려는 전술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이 이번 NSS를 통해 한국에 방위비 증액과 제1도련선 방어 역량 강화 등 '동맹의 기여'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내에서 연합훈련을 변수화하려는 듯한 메시지가 나오는 것은 큰 전략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미국은 "동맹국과의 안보 협력을 무기 판매·정보 공유·연합훈련에 이르기까지 강화하겠다"고 연합훈련을 대중 견제의 핵심 수단 중 하나로 명시한 상황에서 정부 내에서 연합훈련을 남북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다루려는 시도가 반복될 경우 한미 간 엇박자는 불가피하다.

    한 안보 전문가는 "한미 연합훈련을 대화를 위한 변수로 다루는 순간, 한미 억제 태세의 근간이 흔들린다"며 "한국이 북한의 전략 프레임 속으로 들어간다면 동맹 신뢰 약화와 억제력 훼손이라는 이중의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이는 평화 프로세스가 아니라 안보 공백이라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선택"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