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시스
    ▲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시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다. 어느 한쪽이 절대적 권한을 쥐는 순간 견제 장치는 무력화되고, 국정 전반은 소수 지도부의 의중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다.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이러한 우려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여당의 일방적 정책 추진과 권력 집중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정작 이를 견제해야 할 야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조지 오웰의 소설『1984』에서 독재자인 '빅 브라더'는 공포를 통한 순응이라는 목적, 다시 말해 권력 행사 자체에 헌신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빅 브라더는 권력의 지배 욕망 그 자체다. 오늘의 더불어민주당과 모습이 비슷하다.

    집권당이 된 민주당은 선출 권력을 앞세워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어떠한 행위든 명분을 만들어 합리화한다. 국가 권력 중 입법과 행정을 차지한 데 이어 '법 왜곡죄'를 통해 판사를 압박하며 사법부 장악까지 시도하고 있다. 입법·행정·사법의 모든 권력을 손에 넣는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이라 할 만한 삼권귀일(三權歸一)을 목전에 두고 있다.

    통제받지 않는 국가 권력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와 같다. 그래서 헌법은 삼권분립과 삼권균등의 원칙을 보장한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주요 인사들은 '직접 선출 권력'을 내세우며 헌법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폭주를 막는 것이 헌법 조문이 아니라 '실질적 정치적 힘'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앞선 문재인 정부와 현 이재명 정부를 통해 무소불위 권력이 국가의 근간을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 똑똑히 보고 있다. 이 상황에서 민주적 통제 방식은 결국 정치 경쟁자의 존재뿐이다. 그러나 그 힘의 부재는 범여권과 대척점에 있는 국민의힘의 책임이다.

    야당은 본래 권력의 폭주를 막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며 국정 운영의 오류를 바로잡는 정치적 균형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야당은 내부 갈등과 노선 갈등으로 스스로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오랜 세월 동안 의사 결정 과정도 숙의와 합의보다는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모습을 반복했다. 이러한 상태에서 어떻게 여당의 권력 탐욕을 막고 국민을 대신해 '강한 견제자'로 설 수 있겠는가.

    더 큰 문제는 견제를 위한 정치적 체력과 전략이 실종됐다는 점이다. 여당이 대형 정책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여 구조적 변화를 시도할 때, 야당은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내부 정리조차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당의 권력 집중이 심화될수록 야당의 목소리는 힘이 없고, 그 공백은 대중이 아닌 정치적 극단주의나 팬덤 정치가 차지한다. 결국 공론장은 사라지고, 정치의 중심에는 국민이 아닌 정파적 계산만 남는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의 실종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의석 수를 늘리는 야당이 아니다. 원칙과 절차를 지키면서도 집권 세력의 잘못된 선택에 단호히 맞설 수 있는 '강한 야당'이다. 강한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는다. 대신 국민의 관점에서 정책의 타당성을 분석하고, 필요하다면 여당보다 더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신뢰를 얻는다. 동시에 내부 민주주의를 강화해 당원의 참여와 숙의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당 구조와 문화를 정비해야 한다.

    정치는 권력을 얻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본질이 있다. 지금의 여당이 권력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과도하게 집중시키고 있다면, 야당은 이를 제어해야 할 역사적 책임을 지닌다. 그러나 이 역할은 스스로 힘을 갖춘 정치 세력만이 수행할 수 있다. 내부 다툼과 리더십 혼란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정치의 균형은 무너지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정치에는 균형추가 필요하다. 야당이 그 역할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치에 대한 냉소는 깊어지고, 권력은 더욱 폐쇄적으로 움직이며, 자유민주주의는 형해화돼 뼈대만 남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힘은 유권자의 지지에서 나온다. 현재 20%대 박스권 지지율로는 국민의힘이 범여권의 권력 남용과 폭주를 저지할 수 없다. 낮은 지지율은 오히려 여당의 폭주를 용인하는 결과만 초래한다. 그래서 이 혼란한 국가 상황에서 견제를 담당해야 할 야당의 책무는 그만큼 막중하고 엄중하다.

    이제 국민의힘은 선택해야 한다. 무기력한 존재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여당의 권력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진짜 강한 야당'으로 거듭날 것인가. 그 선택의 무게는 단지 정당의 운명뿐 아니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미래를 좌우한다.

    최근 만난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힘이 20% 지지율임에도 당내에서는 긴장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다들 본인의 안위 걱정뿐이지 당을 위한 절실한 목소리는 안 들린다"고 혀를 찼다.

    앞선 2018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경북 지역에서만 이기고 보수·우파의 아성이던 경남, 울산, 부산을 민주당에 내주는 참패를 당했다. 이대로 가면 내년 6월 지방선거는 기시감만 드는 선거로 끝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