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9일 LG아트센터 서울 SIGNATURE 홀…14~15일 세종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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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나 바우쉬의 '카네이션' 공연.ⓒOliver Look
수천 송이 핑크색 카네이션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무대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어우러진다. 독일 셰퍼드가 짖어대고, 남자가 여자 드레스를 입고 토끼처럼 뛴다. 군화를 신은 남성이 행진하고, 무용수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유머와 풍자가 공존하는 장면 속에서 억압과 통제의 현실이 드러나고, 공연이 끝날 무렵 꽃밭이 짓밟혀 흩어지는 장면은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LG아트센터가 2000년 개관작으로 선보인 '현대무용의 전설' 피나 바우쉬(1940~2009)의 대표작 '카네이션'이 25년 만에 한국 무대에 다시 오른다. LG아트센터 서울 개관 25주년을 맞아 오는 6~9일 SIGNATURE 홀에서 공연되며, 이어 14~15일 세종예술의전당에서 관객과 만난다.독일 졸링겐에서 태어난 피나 바우쉬는 폐암 선고를 받은 지 불과 5일 만에 2009년 6월 30일 타계했다. 탄츠(춤)와 테아터(연극)가 합쳐진 '탄츠테아터(Tanztheater)'라는 새로운 개념의 무용극을 통해 현대무용의 지평을 바꿔 놓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드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는 그는 기존의 권위와 관습을 깨고 춤을 삶의 영역으로 확장한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는다.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1979년 2월 세종문화회관에서 '봄의 제전'으로 첫 만남을 가진 이래 LG아트센터에서 '카네이션'(2000), '마주르카 포고'(2003), '러프 컷'(2005), '네페스'(2008), '카페 뮐러'와 '봄의 제전'(2010), '풀문'(2014), '스위트 맘보'(2017)를 잇달아 소개했다. 특히 '도시 시리즈' 중 LG아트센터에서 세계 초연한 '러프 컷'은 바우쉬가 2004년 10월 한국에 머물면서 느낀 다양한 이미지들을 춤으로 옮겼다.1982년 초연된 '카네이션(넬켄)'은 탄츠테아터의 정수를 보여주는 바우쉬의 초기 걸작이다. '넬켄(nelken)'은 독일어로 카네이션을 뜻한다. 9000송이 카네이션으로 뒤덮인 무대는 초연 후 40년이 넘도록 전 세계 관객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널리 사랑받아왔다. 영국 가디언지는 "무대는 시각적으로 압도적이며, 유머와 위협이 동시에 깃든 즐겁고 초현실적인 광경"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
- ▲ 왼쪽부터 다니엘 지크하우스 예술감독, 에드워드 폴 마르티네스 리허설 디렉터, 김나영 리허설 어시스턴트, 이현정 LG아트센터장.ⓒLG아트센터
작품의 영감은 1980년 여름 남아메리카 투어 중 바우쉬가 칠레 안데스 산맥의 한 계곡에서 마주한, 셰퍼드 개가 뛰노는 카네이션 들판에서 출발했다. 이 인상적인 풍경은 무대디자이너 페터 팝스트에 의해 구현됐다. 바우쉬는 2000년 당시 내한을 앞둔 인터뷰에서 "젊음과 아름다움이 상징하는 '희망'과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현실'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이번 내한에는 1980년대부터 활동해온 기존 무용수들과 2019년 이후 합류한 젊은 세대가 출연한다. 바우쉬 생전에 같이 작업했던 안드레이 베진·아이다 바이네리·에디 마르티네즈·김나영·실비아 파리아스가 참여하며, 실비아를 제외한 4명은 '카네이션' 한국 초연에서 활약했던 주역들이다. 베진·바이네리는 무용수로, 마르티네즈·파아스는 리허설 디렉터로, 김나영은 리허설 어시스턴트를 맡는다.한국인 최초이자 유일한 탄츠테아터 부퍼탈 무용단원인 김나영(61)은 4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바우쉬와 오래 작업해 온 무용수들은 각자 경험한 것들을 종합해 젊은 무용수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고 자기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지금의 모습이야말로 바우쉬의 유산을 미래로 이어가는 것"이라고 밝혔다.탄츠테아터 부퍼탈 피나 바우쉬는 1973년 바우쉬가 부퍼탈 시립극장 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하며 시작됐다. 단체명을 '탄츠테아터 부퍼탈'로 바꾼 바우쉬는 무용, 연극, 음악, 무대미술, 일상의 몸짓을 결합한 형식을 제시하며 현대 공연예술의 흐름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이후 36년간 총 44편의 작품을 발표했다.무용단은 바우쉬의 유산을 계승하며 동시대 안무가들과 협업을 통해 창작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현재 다양한 국가 출신의 34명의 무용수가 활동하고 있으며, 2022~2025년 보리스 샤마트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현재 다니엘 지크하우스가 예술감독 직무를 대행하며 단체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2026년 피나 바우쉬 센터 개관과 함께 새로운 예술감독이 선임될 예정이다.다니엘 지크하우스 예술감독은 "'카네이션'에는 폭력적이고 어떻게 보면 권력이 어떻게 작용되는가를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바우쉬는 본인만의 해석을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카네이션'을 포함한 그의 작품들의 본질은 어떤 경계가 없는 무경계성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