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시간 만에 풀려난 이진숙…'체포 시기·방식 적절성' 논란이진숙 공소시효도 논란…경찰 "6개월" vs 이진숙 "10년" "경찰 표적수사 우려…무소불위 권력 견제 장치 반드시 필요""정부 눈치보는 정치경찰…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 ▲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체포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체포적부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체포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체포적부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경찰의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체포를 둘러싼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경찰이 체포 명분으로 내세운 공소시효 문제에 대한 잡음이 일면서 경찰의 과잉 대응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이 전 위원장에게 적용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공소시효 만료가 임박해 체포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지만 이 전 위원장 측은 공소시효는 10년으로 경찰 판단이 잘못됐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는 검찰개혁 이후 예상됐던 경찰의 무소불위 권한 남용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라며 경찰 수사권을 견제할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50시간 만에 풀려난 이진숙…'체포 시기·방식 적절성' 논란

    1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체포 뒤 풀려난 이 전 위원장을 조만간 다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 2일 경찰에 체포된 지 50시간 만에 법원 결정으로 풀려났다.

    당시 서울남부지법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이유로 한 인신 구금은 신중해야 하고 이 전 위원장에 대한 체포의 필요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며 경찰의 체포가 부적절했음을 밝혔다. 절차상 적법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았지만 경찰의 과잉 대응을 문제 삼은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경찰의 이 전 위원장 체포 방식이 이례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출석 일정을 이미 약속한 사람을 체포한 것은 수사 관행에 어긋난다"며 "통상 출석 요구는 1주일 정도 간격을 두고 이뤄지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경찰이 이틀 간격으로 출석을 요구하고 '3번 불응 시 체포'라는 형식적 요건만 맞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이 전 위원장 측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달 27일 출석 일정이 잡힌 후에도 경찰이 같은 달 12일과 19일 출석을 반복적으로 요구했고 일부 출석요구서는 통보 시점이 일정 직전이거나 지나서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 시점도 논란이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 제정안이 의결되면서 이달 1일 자동 면직됐다. 이 전 위원장이 면직 처리된 날 경찰은 체포영장을 청구해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았고 하루 뒤인 지난 2일 체포됐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이 전 위원장에게 모두 6차례에 걸쳐 출석을 요구했지만 이응하지 않아 체포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체포영장에는 "피의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수사기관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 전 위원장 측은 "정치적 의도를 가진 과잉 수사"라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이 전 위원장 측 임무영 변호사는 "이미 지난달 27일 출석 일정을 확정했는데 경찰이 '소환 불응'이라는 외형을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영장을 신청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전 위원장은 지난해 8월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유튜브 채널 등에서 "좌파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집단", "민주당 의원들과 이재명 대표가 직무유기 현행범" 등의 발언을 해 사전 선거운동(공직선거법 위반) 및 공무원의 정치중립 의무 위반(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 ▲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체포적부심사에 수갑을 찬 모습으로 출석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체포적부심사에 수갑을 찬 모습으로 출석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공소시효도 논란…경찰 "6개월" vs 이진숙 "10년" 

    이 전 위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의 공소시효를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경찰은 공직선거법상 일반적인 범죄는 공소시효가 6개월이라고 주장한다. 경찰은 이 시효가 곧 끝나가기 때문에 빠르게 조사하기 위해 이 전 위원장 체포가 필요했다는 입장이다.

    이 전 위원장 측은 경찰이 혐의를 입증하려면 이 행위가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행위임을 주장해야 하는데 이 경우 공직선거법 268조 3항이 적용돼 공소시효는 10년이라고 맞서고 있다.

    공직선거법 268조 3항은 '1항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혹은 직위를 이용해 범한 이 법에 규정된 죄의 공소시효는 해당 선거일 후 10년을 경과함으로써 완성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 측 임무영 변호사는 "경찰이 혐의를 설명하며 직위를 이용한 행위(공소시효 10년 적용 행위)라고 주장하면서도, 체포할 때는 6개월 시효 만료가 급하다고 한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장 교수도 "공소시효 6개월 규정의 취지는 후보자의 지위를 신속히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이 전 위원장의 행위는 후보자를 비판한 쪽이므로 그 취지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에는 10년 시효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해석이다.
  • ▲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4일 오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체포적부심사에 출석하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손을 잡고 있다. ⓒ서성진 기자
    ▲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4일 오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체포적부심사에 출석하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손을 잡고 있다. ⓒ서성진 기자
    ◆법조계 "경찰 표적수사 우려…무소불위 권력 견제 장치 반드시 필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검찰개혁 이후 과도하게 비대해질 경찰 권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검찰개혁으로 수사·기소가 분리되고 검찰청 해체가 현실화하면 경찰은 모든 1차 수사권을 사실상 독점하게 된다.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정부의 눈치를 보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동안 '정치검찰'을 비판해 온 여론이 이제는 '정치경찰'을 우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공소청 신설안에서 '보완수사권' 같은 외부 견제 장치가 빠진다면 경찰 수사는 통제를 받지 않는 구조가 된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청 폐지 후 경찰이 수사권을 독점하면 이번 사태와 같은 일들이 더욱 빈번하게 나타날 것"이라며 "권력자의 눈 밖에 난 사람을 괴롭히는 표적 수사가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이 전 위원장 혐의는 구속할 만한 중대 범죄가 아닌데도 체포 영장을 발부받은 것은 이례적"이라며 "경찰이 민주당의 요구에 부응해 실적을 빨리 보여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개혁 이후 경찰 수사에서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거나 일반 서민의 사기·횡령 사건은 수사가 미진해질 위험이 있다"며 "정치적 실세가 피해자인 경우에는 별건 수사까지 진행하는 등 수사 대상에 따른 하명 수사가 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 교수는 "향후 경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체포영장을 남발할 우려가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검찰의 보완 수사권이라도 있어야 경찰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