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반도체-AI 투자로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 장악'포퓰리즘'에 갇힌 韓, 규제 사슬로 '피터팬 기업'만 양산대만 추격은커녕 '아시아 용'마저 위태…기업 주도 구조개혁 시급
  • ▲ 대만 청천백일기와 대만 해순서(해경) 함정. 231001 ⓒ연합뉴스
    ▲ 대만 청천백일기와 대만 해순서(해경) 함정. 231001 ⓒ연합뉴스
    반도체 수출을 앞세운 대만의 고속 성장에 놀라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22년 만에 역전을 허용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균열 난' 경제 성장판에 대해 반추하고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 경제는 올해 1분기에 역성장을 기록했고, 2분기에는 0.6% 성장하는 데 그쳤다. 정부는 올해와 내년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각각 0.9%, 1.8% 수준으로 대만을 한참 밑돌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AI 시장이 확대되면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보유한 한국도 반도체 분야에서 호재를 맞았지만, 내수 부진 장기화와 미국의 자동차·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에 따른 수출 타격으로 대만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선진국 기준선으로 여겨지는 1인당 GDP 4만달러 진입은커녕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올해 잠재성장률(1.9%)을 지속해서 밑돌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선은 노동, 세금 관련 규제가 기업이 성장하고 개인이 부자 되는 의욕을 꺾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동안 긴축 요구를 거부하고 '포퓰리즘'에 기댄 대가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확장 재정을 통해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자신한다. 역대급 확장 재정을 앞세우며 '돈 잔치'로 향하는 우리로서는 프랑스의 몰락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 3개 국제신용평가사가 잇달아 경고음을 울릴 정도로 재정위기가 악화일로다.

    지난해 기준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GDP의 5.8%로, 유로존 평균인 3.1%의 두 배에 육박했다. 국가부채는 GDP의 114%에 달해 유로존에서 그리스, 이탈리아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성장 둔화와 경제여건 악화 속에서 재정적자 축소가 쉽지 않은 처지인데도 정치권이 복지 확대와 감세 등 포퓰리즘 정책에 매달려 온 탓이 크다. 일각에서는 포퓰리즘적 '재정중독'이라고까지 지적한다.

    대만의 길을 따를 것인지, 포퓰리즘에 빠져 재정중독으로 몰락할 것인지 갈림길에 섰다는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고, 대만의 고속 성장을 타산지석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만연해 있는 '피터팬 증후군'에 대해서도 곱씹어봐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미국 포브스의 '글로벌 2000' 통계를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최근 10년간 세계 2000대 기업에 포함된 한국 회사는 66개에서 62개로 감소했지만, 중국은 180개에서 275개로 52.7% 늘어났다. 기업 수와 증가율, 이들의 합산 매출액 모두 한국을 압도했다.

    대한상의는 규제를 원인으로 꼽았다. 자산 5000억원 미만이면 적용되지 않는 규제가 2조원 이상이면 128개, 5조원 이상이면 329개로 늘어난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한국은 기업이 성장할수록 지원은 줄고, 규제는 늘어나는 역전적 구조"라며 "기업 규모별 규제가 존재하는 한 기업 입장에서는 성장 유인이 없는 만큼 현재에 머무르는 것이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작은 기업이 더 크게 성장하려는 의지를 막는 '피터팬 증후군'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최근 4년간(2020~2023년) 비율을 보면 중소기업 1만개 가운데 고작 4개만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 1000개 중 14개만 대기업이 되는 실정이다. 이래서야 '글로벌 2000'에 한국기업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것이 낫다.
  • ▲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AI 웨이브쇼'에서 한 여성이 AI 기술을 활용한 안내 로봇을 바라보고 있다. 250801 AP/뉴시스. ⓒ뉴시스
    ▲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AI 웨이브쇼'에서 한 여성이 AI 기술을 활용한 안내 로봇을 바라보고 있다. 250801 AP/뉴시스. ⓒ뉴시스
    뒤처진 국내 업계의 위기 원인은 이뿐만이 아니다. 의대가 '인재 블랙홀'이 되면서 공학도들의 창업 열기가 식고, 우수 청년들의 해외 유출도 심각하다.

    정부가 AI,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투자할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조성 계획도 내놨지만, 기업들이 온기를 체감하기에는 멀다.

    이렇다 보니 아시아 주요국과의 격차도 뚜렷하다. 싱가포르는 금융허브로서 자본 유입을 확대하며 성장률 전망을 1.6%에서 2.5%로 끌어올렸다.

    베트남은 공급망 재편의 수혜국으로 다국적기업을 대거 유치하면서 6.3%에서 6.7%로 상향됐다. 같은 외부 충격을 맞더라도 구조개혁과 투자유치로 반등의 기회를 잡은 국가는 성장하고 개혁을 미룬 한국은 정체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주력 제조업의 구조개편이나 신성장 산업 육성, 규제 혁파, 인재 유치 등 어느 분야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 사이 경쟁국은 미래 산업과 제도 개혁으로 빠르게 체질을 바꾸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 구조개혁을 가속할 것을 주문했다. OECD 등 국제기구도 여러 차례 해왔던 조언이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냉정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장기적 안목에서 성장동력을 되살릴 전반적 구조개혁에 공을 들여야 한다. 철강·조선·자동차 등 전통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 신사업을 육성하는 한편, 사양산업에 쏠린 자원은 재분배를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복합위기에 직면한 우리 경제에 지금 필요한 것은 '돈 잔치'가 아니라 '기업 주도 성장'이다.

    그리고 구조개혁의 필수조건은 규제 개혁이다. 과도하거나 불합리한 규제를 걷어내야 혁신과 성장이 촉진된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도 만큼 규제 개혁이 시급하다.

    이재명 정부가 AI 3대 강국 도약을 선언했지만, 경제 체질을 바꿀 구조개혁이나 기업 활성화 전략은 뒤따르지 않았다. 혁신 역량을 지닌 기업이 끊임없이 배출돼 AI 대전환을 이끌 수 있도록, 기업들이 뛰어놀 기업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

    행정편의주의에서 벗어난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고민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걷어내는데 정부 역량을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 '아시아의 용'으로 불릴 자격조차 완전히 잃을 위기에 빠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