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 달러 투자·스와프 놓고 한미 협상 평행선日은 현금·투자권 일임 … 韓은 외환리스크에 반발親 트럼프 아르헨엔 통화스와프·ESF로 우선 지원10월 APEC 앞두고 '4중 트랙' 절충안 도출 분수령
  • ▲ 이재명(왼쪽 세번째)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를 방문해 개장 벨을 타종한 뒤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남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 대통령, 이억원 금융위원장, 김용범 정책실장, 린 마틴 뉴욕 증권거래소 회장. ⓒ뉴시스
    ▲ 이재명(왼쪽 세번째)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를 방문해 개장 벨을 타종한 뒤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남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 대통령, 이억원 금융위원장, 김용범 정책실장, 린 마틴 뉴욕 증권거래소 회장. ⓒ뉴시스

    미국은 한국이 지난 7월 말 구두로 약속한 3500억 달러(약 493조 원) 대미 투자를 둘러싸고 협상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를 두고 워싱턴의 강경 기조가 단순한 경제적 실리 추구를 넘어 이재명 정부에 대한 불신 신호로 읽힌다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 전체 3500억 달러 투자 가운데 지분투자(equity)를 약 5% 수준으로 제한하고, 대부분을 현금 이동이 없는 보증(credit guarantees)으로 충당하며, 나머지는 대출(loans)로 채우려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과 합의에서처럼 사실상 '투자 백지수표'에 가까운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5500억 달러(약 775조 원)를 전액 현금 지분 투자로 집행했고, 투자처 결정권도 사실상 미국에 일임한 전례가 있다.

    문제는 한국의 외환 사정이다. 4163억 달러 규모의 외화보유액과 연간 200~300억 달러 수준의 조달 능력을 고려할 때 대규모 현금 집행은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1997년 금융 위기'에 준하는 충격을 초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은 무제한 통화스와프(두 나라가 자국 통화를 빌려 쓸 수 있는 제도)를 사실상 '필요조건'으로 제시했지만, 미국은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통화스와프는 외환 위기나 금융 불안 상황에서 외화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양측이 직접투자 비중과 투자처 결정권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미국은 투자액 자체를 일본 수준인 5500억 달러에 근접하도록 증액하라고 한국 측에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다시피 일본에서는 5500억 달러, 한국에서는 3500억 달러를 받는다. 이것은 선불(up front)"이라고 강조하며 압박 수위를 한층 높였다.

    이와 달리 미국은 반(反)좌파 기조로 '전기톱 개혁'을 성공리에 진행 중인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대해서는 전폭적 지원에 나섰다. 미국 재무부는 아르헨티나를 "중요 동맹국"으로 규정하며 200억 달러 통화스와프, 직접통화 매입, 환율안정기금(ESF) 채권 매입까지 거론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24일(현지시각) 엑스(X·옛 트위터)에 "미국은 현재 아르헨티나 중앙은행과 200억 달러 규모 스와프 라인 협상을 진행 중"이라며 "우리는 아르헨티나의 달러 표시 채권을 매입할 준비가 돼 있고, 조건이 충족되면 이를 실행할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을 향해 외국 공직자로서는 이례적인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양국 관계의 지정학적,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신뢰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밀레이는 아주 좋은 친구이자 투사이자 승리자"라며 "저는 그의 재선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라고 적었다. 이에 아르헨티나 페소화 환율은 달러 대비 2% 넘게 하락해 가치가 상승했고, 세계은행은 향후 수개월간아르헨티나에 최대 40억 달러(약 5조5000억 원)를 조기 집행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특정 국가의 '국내 정치 현안'을 외교·경제적 지렛대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익명을 요청한 대미 소식통은 뉴데일리에 "현재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 국가안보회의(NSC)의 대외정책 결정 과정은 다른 나라 NSC와 협의하는 구조로 이뤄지지 않는다. 백악관의 의사결정은 공식 NSC 채널 못지않게 대통령 측근 네트워크의 영향이 크다"며 "이들이 각국의 정치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다가 이를 무역·관세·투자 협상에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즉각 트럼프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구조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종교 지도자나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그룹'과 같은 트럼프 지지 기반이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하며 각국 정치 변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이를 관세·투자·무역 협상의 지렛대로 전환하는 '실익 지향' 추세가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르헨티나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각별한 지원은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이 중남미를 사실상 자국의 '전략적 영향권'으로 보는 만큼, 중국이 동남아를 대하는 태도와 유사하게 '반중 친미' 노선을 취하는 아르헨티나를 보호하려는 동기도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밀레이 대통령은 감세·긴축 재정 등 개혁을 단행해 성과를 내면서도 노골적으로 친(親)트럼프 노선을 택했다"며 "좌파 정권이 주류인 중남미에서 예외적으로 미국과 이해를 같이하는 지도자가 성공적인 개혁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더욱 치켜세우고 지원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한국 강공은 경제 실리 극대화라는 협상 문법 위에 이재명 정부를 향한 신뢰와 호혜성 판단이 겹쳐진 결과로 해석된다. 다음 달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전후가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한국은 통화·투자·관세·안보를 망라하는 '4중 협상 트랙'을 유연하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