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토트넘 이적 손흥민, 2025년 이별 선택손흥민,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토트넘 이별 선언EPL 득점왕, UEL 우승 등 수많은 역사 만들고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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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흥민이 10년 동안 활약한 토트넘과 이별을 선언했다.ⓒ뉴시스 제공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은 23세의 한국인 소년을 영입했다.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를 거쳐 레버쿠젠에서 빛을 내기 시작한 윙어. 토트넘은 독일에서 검증된 자원을 영입했다. 그렇게 손흥민은 '축구종가'에 발을 내밀었다. 세계 최고의 리그 EPL에 입성했고, EPL에서 '빅6'에 속하는 토트넘 유니폼을 입었다.EPL은 세계 최고 리그.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리그. 가장 냉정한 리그다. EPL은 처음에 손흥민을 두 팔 벌려 환영하지 않았다.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바로 도태되는 정글. 아시아인이라는 한계까지 짊어져야 하는 부담감. 23세 소년은 첫 시즌 방황해야 했다.2015-16시즌 EPL 4골에 그쳤던 손흥민. 독일에서 3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던 손흥민 앞에 놓인 커다란 실망감이었다. 손흥민은 힘들었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EPL을 떠나려 했다. 이때 손흥민의 손을 잡은 이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었다.손흥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손흥민을 영입했던 감독. 토트넘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팀으로 성장시킨 지도자. 손흥민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준 스승을 믿고 다시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다음 시즌부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016-17시즌에 리그 12골, 총 21골. '커리어 하이'를 찍어버린 것이다. 포체티노 감독의 절대적 신뢰 속에 손흥민은 토트넘의 핵심 선수로 자리를 잡았다. 포체티노 감독 시절 그 유명한 'DESK 라인(델레 알리-크리스티안 에릭센-손흥민-해리 케인)'의 주축이었다.'DESK 라인'은 2018-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결승에 진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비록 결승에서 리버풀에 졌지만, 이 시즌은 토트넘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팀이었다는 평가다. 케인의 부상이 없었다면 우승을 할 수 있었던 대회. 또 반대로 케인이 없어 손흥민의 존재감이 더욱 빛났던 대회였기도 했다. 특히 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와 8강은 손흥민이 펩 과르디올라를 압도하며 세계를 경악시킨 전설적인 경기였다.케인과의 호흡은 어땠는가. 세계 최고의 공격진이 득실한 EPL에서 손흥민과 케인의 '손-케 듀오'는 역대 1위의 공격력을 자랑했다. 이 둘은 47골을 쌓으며 EPL 역대 최다 합작골 신기록을 작성했다. 손흥민이 24골 23도움, 케인이 23골 24도움을 기록했다. 이들은 이견이 없는 'EPL의 전설'이다.토트넘에서 최고의 영광은 뭐니 뭐니 해도 2021-22시즌 EPL '득점왕'일 것이다. 손흥민은 EPL 23골을 폭발시키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EPL 득점왕에 이름을 올렸다. EPL 역사도, 아시아 축구 역사도, 한국 축구 역사도 바꿔버린 명장면이다. 손흥민을 진정한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려세운 결정적 순간이기도 하다.손흥민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20년에는 한 해 동안 가장 멋진 골을 넣은 선수에게 수여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푸스카스상도 거머쥐었다. 리오넬 메시에 빙의한 손흥민은 70m를 폭풍 질주하며 번리 선수 6명을 제치고 골을 넣었다.이 밖에도 EPL 이달의 선수 4회(2016년 9월·2017년 4월·2020년 10월·2023년 9월), EPL 올해의 골(2019-20시즌),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PFA) 올해의 팀(2020-21시즌) 등을 달성했다.토트넘의 우승을 위해 마지막까지 남은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하다. 우승 가뭄에 시달리던 토트넘. 그래서 '탈트넘(토트넘을 떠나는 것)'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 케인마저 우승을 위해 저버린 토트넘. 'DESK 라인' 중 마지막까지 남은 유일한 선수. 낭만의 손흥민이다.그리고 손흥민은 케인도 해내지 못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지난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UEL) 정상을 차지했다. 토트넘에게 17년 만에 선물한 우승컵. UEL에서는 41년 만에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손흥민이 토트넘 역대 최고의 전설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는 결정적 이유다.경기력뿐만 아니라 헌신, 투혼, 리더십, 인품 등 모든 면에서 존경을 받았던 손흥민이다. 포체티노 감독은 물론 조제 무리뉴, 안토니오 콘테,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까지 손흥민을 사랑하지 않는 감독은 없었다. 토트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손흥민의 품격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이례적으로 아시아인에게 '캡틴' 완장을 수여했다. 자존심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영국에서. 그런데 그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현지 언론들은 "포스테코글루가 가장 잘한 일이 손흥민을 주장으로 선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손흥민에 토트넘에서 10년 동안 어떤 생활을 했는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
- ▲ 손흥민은 UEL 우승을 이끌며 토트넘에 17년 만에 우승컵을 선물했다.ⓒ연합뉴스 제공
2025년. 손흥민이 이별을 선언했다. 10년을 헌신했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느꼈다. 이제 떠날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23세 소년은 33세 남자가 돼 토트넘 유니폼을 벗는다.손흥민은 "10년 전 런던에 왔을 때는 영어도 잘 못하던 소년이었는데, 이제는 남자가 돼서 떠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밝혔다.10년 동안 통산 454경기 173골 101도움을 기록했다. 토트넘 역대 최다 득점 5위. 최다 출전 7위다. 손흥민은 토트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아름답게 장식한 뒤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했다.손흥민의 10년.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10년이다. 토트넘은 한국 '국민팀'이 됐다. 토트넘이라서가 아니라 손흥민이 있는 토트넘이라서다. 밤잠을 설쳐가며 토트넘 경기를 지켜봤고, 손흥민을 응원했다. 손흥민의 득점에 함께 포효했고, 손흥민의 부진에 함께 침울했다. 그렇게 10년이 훌쩍 지났다. 너무 빨리 지나갔다.손흥민의 경기를 보면서 한국 축구팬들은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경기와는 차원이 다른 내적인 흥분이 있었다. 한국 축구 선수 중 세계 최고 리그에서 이토록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 이가 있었나. 손흥민은 한국의 자랑이었다. 손흥민의 경기는 한 경기를 넘어 한국의 문화적, 사회적, 국가적 신드롬으로 작용했다.지난 10년. 우리는 '손흥민의 시대'에 살았다. 손흥민이 있었기에 감사했고, 또 행복했다. 많은 선물을 받았다. 그렇기에 큰 박수를 쳐주며 그를 보내줄 수 있다. 그리고 다음을 진심으로 응원해줄 수 있다. EPL에서 '손흥민의 시대'는 끝났지만, 그 시대가 선물한 추억과 감동은 영원하다. 굿바이 손흥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