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미식으로 풀어본 인문학 수다괴테, 백석, 발자크 … 음식의 추억이 삶의 전부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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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서 그때가 와서 우리들 흰밥과 고추장과 다 만나서 아침저녁 기뻐하게 되기만 기다린다." 시인 백석이 1936년 9월2일 조선일보에 썼다는 글이다. 여기서 '그때'는 '가재미'가 생선장에 나오는 음력 8월 초순을 말하고 '다 만나서'의 '다'는 흰밥, 고추장, 가자미가 다 모여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애기다. 가자미를 고추장에….
천재연구가 조성관 작가가 천재들의 식탁을 맛있게 기억해 내고 있다. 인문학 포럼 '지니어스 테이블'로 인문학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조성관 작가의 새 책이다. 천재들의 음식에 관한 기록과 자신의 미뢰(味蕾)의 추억을 요리해 근사한 만찬을 차렸다.
에피소드의 첫 장인 '가자미'편으로 가보자. 저자는 첫 요리로 프랑스 음식 솔 뫼니에르(가자미 버터구이)를 소개하며 영화 '줄리 & 줄리아'를 떠올린다. 2차대전 직후 외교관 남편을 따라 파리에서 살게 된 미국 여인과 프랑스 요리, 그리고 메릴 스트립의 연기….
가자미나 금풍생이나 다 넙치과. 50년대 파리의 참가자미 버터향은 이내 임진왜란때 조선으로 넘어간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즐겨먹었다는 그 속살 아쉬운 여수의 금풍생이구이로 순간이동, 꼴깍~ 침을 삼키게 한다.
그러고 보니 미식의 천재는 괴테 아니었던가? 저자는 그 제철 요리에 탐닉한 식도락가가 1800년대에 82세까지 살았음을 상기시키며 천재들의 입맛이 필부들의 인문학 수다로 이어지리라 상상했을 법하다.
괴테의 음식 호기심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 못지않게 미식가였던 '모던뽀이' 시인 백석이야말로 '최애' 음식이 가자미였단 말이지. 저자는 참가자미를 고추장에 찍어 먹어봐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궁금증은 고등어를 따라 '객주'의 소설가 김주영,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본 산울림, 비릿한 훈제향의 베를린, 후추양념의 덴마크 필레, 스페인의 고등어찜 에스카베체, 태국의 깽쏨으로 이어지다 일본의 시메사바동(절인 고등어덮밥)에서 깜짝 멈췄다가 제주의 고등어초회 한 점으로 막을 맺는다!
멸치덮밥으로 일본 가마쿠라를 여행하고, 대구 뽈대기살을 맛보며 서식지인 북대서양과 북태평양 연안, 그러니까 유럽으로 떠나기도 한다. 이탈리아 바칼라, 영국 피시 앤 칩스, 노르웨이 퇴르피스크, 말린 대구로 버티며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면 아~ 밥 먹다가 얻어걸린 동서고금 세계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누끼우동, 문어숙회, 오징어먹물 파스타, 간장게장, 샤또브리앙, 칼솟타다 대파구이…. 조성관의 먹는 이야기는 마들렌이 불러오는 '프루스트의 기억'처럼 사람들의 식탁을 추억과 미뢰의 기대감으로 벅차게 만들 것이다. 요리가 생명의 본능을 일으키고 천재들의 미식이 세계사급 수다로 흩어지면 우리는 저마다 안주 맛집에서 또 즐겁게 한 잔하고 있을 것이다. 반나절이면 단숨에 다 읽히는 '먹방 인문학' 에세이다.





